지난 21일 동국대 소강당 안은 열기로 가득했다. 270석의 좌석은 물론 통로에 의자를 가져다 놓았는데도 입구 앞에서 자리가 없어 돌아서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동국대 학보사가 주최한 영화 <죽어도 좋아>(감독 박진표) 상영회 자리였다. 학보사 쪽은 “18살 이상 관람가가 안 된다는데 가장 어린 성인층이라 할 수 있는 학생들의 생각은 어떤가 생각을 나누고 싶어 영화사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4벌의 프린트는 모두 국제영화제와 영화진흥위원회 등에 들어가 있어 프로젝션을 이용해 비디오로 상영한 데다, 관객이 많아 돌아가는 냉방기가 무색할 정도로 공기가 텁텁한 열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자막이 올라갈 때 학생들의 얼굴엔 따뜻함이 퍼져 있었다. “정사장면 7분이 문제가 됐다는데 어디가 문제장면인지 솔직히 찾을 수가 없었다”는 소감도 적잖이 나왔다. 그때, 나이 마흔에 대학원 석사과정에 뒤늦게 입학했다는 늦깎이 주부학생이 무대에 올랐다. 마이크를 쥔 그는 조금씩 울음을 삼키는 듯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부모님은 각자 공무원 생활을 하며 30년 넘게 떨어져 살았다고 했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그네들의 시대에선 흔히 있던 일 아닌가. 가끔 한 쪽이 서울에 올라와 만나면 ‘두분이 아직도 부부생활을 하실까’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1년 전 그의 어머니가 치매로 쓰러지셨다. 아버지와 몇십 년을 헤어져 있어도 “여장부처럼 씩씩하고 이웃들 일을 도와주는” 그런 분이셨다. 그런 분이기에 한번도 자식들에게 남편에 대한 그리움 같은 걸 토로하실 리는 만무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 일흔이 다 되어 병석에 누운 뒤에야 그는 어머니의 속내를 알게 되었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면서도 어머니는 아침에 눈을 뜨면 아버지보고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그는 두 노인 부부가 ‘고무 다라이’에서 벗은 몸을 씻겨주는 장면을 보다가 자신의 부모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우리는 몰랐지만 나이드신 분들 또한 저렇게 순수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며 그는 “정말 어머니가 깨어나면 우리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육체에서 육체만을 보지 마세요. 그 이면의 그네들의 순수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나요.”
설문지의 응답에서도 많은 관객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두 주인공의 성관계 장면보다 아픈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가 닭을 잡아주는 장면을 꼽았다. 20대의 그들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육체 그 깊은 곳의 사랑을 읽고 있었다. <죽어도 좋아>의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 재심의 일자는 오는 27일이다.
김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