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심사가 참 묘하지. 일껏 사람 얘기 빼고 문학 얘기만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심사가 제목에 배어 있건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욱 황현산이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내가 알기로 황현산은 대학 재학 시절 ‘너무도 눈부신’ 글솜씨로 같은 대학 동기며 ‘문청’이었던 김인환(평론가·고려대 교수)을 상당 기간 동안 ‘절망적으로 절필’케 만들었고(이건 김인환이 지난해에 김환태 문학상을 받으면서 쓴 ‘자전적 소감’에서 밝힌 얘기다), 그래놓고나서는 무슨 심사였는지 스스로 절필, 소설가 김원우가 쓴 장문의 편지를 받고서야 평단에 뛰어들었다(이 얘기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김현이 살아 있었다면 황현산과 김인환은 ‘분지’ 편집진에 합류하고, 사태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이건 내 추측이다).
어쨌거나 ‘등단’ 12년 뒤 첫 평론집. 480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분량의 시인-작품론 모음집이지만 그는 분명 프랑스 문학에 대해 한권 이상, 폭넓은 문학평론 한권 이상, 그리고 잡문 한권 이상을 썼다. 그런데도 가장 순결하고 정치한 대목만을 골라 ‘말과 시간의 깊이’라…. 나 같은 ‘글의 잡놈’이 보면 환장할 ‘순수’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책머리에’의 ‘나는 아마도 내가 쓴 글들이 남이 쓴 글처럼 보일 때까지 기다려왔던 것 같다’는 거짓말이다. 그는 스스로 순결해지기를,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좌파성’이 순결과 동의어가 될 때까지 기다려왔다. 속세의 이른바 ‘사회적 좌파’들은 질과 진위에 관계없이 참으로 소란하고 번잡스럽지만, 그럴밖에 없지만, 다음의 ‘예술의 좌파’(본인 말을 빌리자면, 황현산은 ‘좌파라고 주장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경우다)다운 문장은 얼마나 ‘역사-변증법이 단아’한가.
기억을 내장하지 않은 말은 없으며, 기억을 현재화하지 않은 시는 없다. 현재가 어느 깊이까지 과거를 확보할 수 있으냐에 인간의 미래가 걸려 있다….
좌파 미학적이고 ‘좌파=미학’적인 그의 감식안을 통해 한국 현대시사상 가장 ‘명민한 서정’의 소유자들이 가장 섬세-정교하게 분석되는 동시에, 서정주로 대표되는, 문학과 정치의 제문제들이 치열하게 구분되고 또 결합되는, 한국사회의 성격과 상황상 참으로 힘들고 드문 장이 이 책이다. 시-문학 분석의 모범과 문학인‘다운’ 선언문 혹은 성명서 작성의 모범이 이 책에 펼쳐져 있다. 그것은 김수영-김현-서정주 등 작고한 대가들은 물론 ‘쉬운 시’의 원로대가 신경림에서부터 ‘해괴한 아름다움’의 신예 이수명까지 아우르는, 참으로 아름다운 비평 ‘세계’다.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