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쿠데타로 망명길에 오른 칠레 감독 라울 루이즈에게 새로운 영화적 고향을 마련해준 이는 파올로 브랑코였다. 그는 또 포르투갈의 괴짜 노장감독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프랑스의 알랭 타네 그리고 빔 벤더스의 심지깊고, 동력있는 동반자였다. 세네프가 “산업적으로 격심한 변화를 겪고 있는 한국영화가 미래의 좌표를 설정하는 데 유용한 모델케이스가 되기 바란다”면서 올 신설한 섹션 ‘프로듀서의 영화’의 첫 주자로 그를 택한 건 꽤나 적절해 보인다. 포루투갈 태생의 브랑코는 1974년부터 유럽예술영화의 옹호자로 활약하며 150편에 육박하는 작품을 제작해왔다. 자신이 만든 파리의 제미니 필름스, 리스본의 마드라고아 필름스 등이 그의 근거지들. 이번에는 브랑코가 프로듀싱한 영화 4편이 상영된다.
<범죄의 계보>
프랑스/라울 루이즈/1999년/107분/35mm
카트린 드뇌브 주연의 이색 미스터리영화. 여변호사 솔롱주는 어느 날 아들이 죽었다는 사고 소식을 듣는다. 바로 그날, 그녀에게 이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르네라는 청년의 변호의뢰가 들어온다. 르네의 이모 잔은 조카를 15년 동안 관찰하면서 그에게 잠재돼 있는 범죄성향을 연구, 집필해온 아동심리학자. 그 15년 동안 잔이 써내려간 일지를 통해 솔롱주는 잔과 르네의 심리게임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솔롱주 역 카트린 드뇌브의 음울하면서도 지적인 연기, 타이의 설화와 바둑판 이미지 등 프랑스영화로서는 이국적인 요소들이 영화에 신비로운 기운을 뿜어넣는다.---------
<편지>
포르투갈·프랑스·스페인/마뇰 드 올리베이라/1999년/107분/35mm
올리베이라 감독이 마담 드 라파이예트의 소설 <클레브 공주>의 시공간을 현대로 옮겨와 만든 영화. 귀족가문의 딸 카트린은 첫사랑에 실패한 뒤, 구혼자 클레브와 결혼하지만 페드로라는 가수와 사랑에 빠진다. 고민하던 남편은 병사하는데, 카트린은 홀연 사라져버린다. 영화의 후반은 한 수녀가 어릴 적 친구인 카트린에게서 온 긴 편지를 낭독하는데 바쳐진다.---------
<노란 집의 추억>
포르투갈/호아오 세자르 몬테이로/1989년/120분/35mm
포르투갈의 감독 겸 배우 호아오 세자르 몬테이로의 연출 겸 주연작. 리스본 구시가의 싸구려 하숙집에 기거하는 한 병든 중년 남자의 비참한
삶을 건조하게 그려낸다. “모든 것은 너무나 느리고 무겁고 슬프다. 곧 나는 늙고 모든 게 끝날 것이다”라는 오프닝의 자막 그대로, 영화는
느리고 무겁고 슬프게, 어느 늙어가는 남자의 시간을 동행한다. 다소 지루하지만, 소박하면서도 단단한 아름다움을 지닌 영상과 의미심장한 상황
설정 등이 인상적이다. 1989년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 수상작.
---------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