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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영화 ‘형식파괴’ 어디까지
2002-08-16

디지털 기술이 자극하는 영화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일까.

사단법인 서울넷페스티벌이 23일부터 1주일 간 서울 정동 A&C 극장과 문화일보 홀에서 여는 제3회 세네프(SeNef) 영화제는 세계 디지털 영화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편수(장단편 포함 185편)는 많지 않지만, 올해 주제인 ‘형식의 파괴’에 걸맞은 작품들로 알차게 프로그램을 꾸렸다.

개막작인 에릭 로메르의 근작 <영국여인과 공작>은 프랑스 대혁명시기에 실제 살았던 영국 귀부인 그레이스 조지 엘리엇의 저서 <프랑스 혁명 중의 나의 생활일기>를 바탕으로 한 ‘디지털 사극’이다. 자코뱅파가 휩쓸던 18세기 파리의 ‘공포’와 인간군상의 모습을 왕당파 엘리엇과, 혁명의 편에 섰지만 결국 처형당한 오를레앙 필립공의 이야기를 통해 담았다. 내용보다 눈길을 끄는 건 영화제작방식이다. 인간의 심리에 탁월했던 로메르의 이전 작품과 달리 이 영화는 철저히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실제 37장의 그림을 스튜디오에서 블루스크린에 투영시킨 뒤 그 안에서 배우들을 연기시킨 이 작품의 영상은 진짜 붓 터치의 그림에서 사람들이 빠져나온 듯 하다. 필름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이질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 디지털 기술의 새 영역을 보여주는, 나이 80대의 누벨바그의 거장의 실험이 흥미진진하다.

공식경쟁부문인 ‘디지털 익스프레스’에는 헝가리 졸탄 카몬디의 <유혹>, 터키 우미트 우날의 , 한국 박기용의 <낙타(들)>등 7편의 작품이 선보인다. 그 가운데 일본 오쿠 슈타로의 <괴음>은 74분 동안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이미지만으로 이어가는 특이한 작품이다. 사춘기 학생들의 방황하는 모습 끝에 무너져 내리는 낡은 학교건물은 이들의 미래에 대한 절망감의 극점으로 보인다.

비경쟁부문엔 화제작들이 적지 않다. 야구치 시노부와 스즈키 다구치가 파르코백화점의 의뢰를 받아 공동감독한 <파르코 픽션>은 세계 최초로 HD 영사방식으로 공개된다. 6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파르코…>는 <원피스 프로젝트> 이래 많은 공동작업을 해온 두 감독의 절묘한 호흡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특히 스즈키의 <올려다 보렴>이나 <하루코>같은 작품은 따뜻한 감성 속에서도 즐거운 유머감각이 돋보인다. 프랑스의 사상가 자크 데리다가 직접 등장하는 다큐멘타리 <데리다>나, 특별전으로 상영될 프랑스 프로듀서 파울로 브랑코의 4개 작품도 놓치기 아깝다. 상영시간표와 지난달 3일부터 시작됐던 온라인 영화제의 출품작들은 www.senef.net에서29일까지 볼 수 있다. (02)325-4095.

김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