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액션이! 이런 예술이!
부산경찰서에서 종두 형 종일이 종두를 때리는 장면을 찍을 차례였다. 액션하면 내가 한 가닥 한답시고 종일이 이렇게 치면 종두는 이렇게 어깨를 내밀고… 자, 빨리 찍고 집에 가자, 배우들끼리 그러고 있는데 그가 나타났다. 액션이 아니라 감정을 얘기하는 거였다. “자기 감정으로 표현해라.” 그가 직접 시연을 하는데, 정말로 설경구를 때렸다. 나는 놀라서 억! 하는데 경구 형은 담담했다. “원래 변태야.” 그때 현장 분위기는 약물 복용한 뒤 감정이 순식간에 터지는 듯했다. 순간적으로 이 감독의 눈빛이 돌변했고, 그 공격적인 감정이 엄청나게 뿜어져 나와 현장을 뒤덮었다. 그는 또 순식간에 냉정을 되찾았다. 액션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겠다. <피도 눈물도 없이>를 정두홍과 함께 찍으면서 많이 놀라고 많이 배웠는데, 이것도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다음 신에서 이 감독과 설경구가 언쟁이 붙었다. 경구 형이 역할을 못 받아들이고 감독과 충돌했다. 설경구는 종두가 왜 스스로 강간 안 했다고 말을 못하냐는 거였고, 감독은 종두가 똑똑하게 자기 방어를 할 인물이 아니라는 거였다. 설경구는 촬영이 끝나도 종두 옷 입고 종두처럼 중얼거리면서 종두로 산다. 대단한 배우인데, 의견충돌이 생기니까 클라우스 킨스키가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에게 대드는 식이 아니라 ‘이거 우리 작품이다’, ‘작품 함께 만드는 거다’는 걸 전제로 붙는 거였다. ‘이거 하기 싫어’ 이런 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옆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장면인데, 보고 있으니까 멋있는 풍경이었다. 우리도 한 예술 하는구나, 이게 예술이구나. 보통 같으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한번 찍고, 나하고 싶은 대로 한번 더 찍자 할 수도 있다. 서로 신뢰하니까 작품에 대한 자기 진심을 털어놓고 언쟁을 하는 거였다. 결국 경구 형이 감독을 믿고 따라갔다. 독특한 건 이 감독이 배우에게 져주거나, 아니면 눌러버리거나 하지 않는 거였다. 항상 논쟁하면서 그 긴장을 끝까지 팽팽하게 가지고 갔다. 본인 스스로 그 긴장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을지 모른다. 뒤집어보면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대해 항상 열어놓고 있는 거다. 무술로 따지자면 이소룡의 절권도, 최영의 극진가라테의 개념이다. 자기 공식을 만들어서 그것대로 진행하다보면 언젠가 빈틈이 생기고 틈은 깨지게 마련이다. 모든 공격과 방어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부딪치는 것. 고수다. 영화 마친 뒤에도 경구 형 인터뷰 같은 것 보면 아직도 종두 역에 납득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틀어져 있지는 않다. 촬영 끝나고 함께 술마시고 얼마나 놀았는데. 촬영 때 힘들어하던 것을 옆에서 본 나로서 그가 아쉬움은 있을지 모르지만 후회는 안 할 것 같다. 이 작품을 한 것을 부끄러워 하기에는 현장이 너무 치열했다. 인간 이창동 부산경찰서 촬영 마치고 감독 숙소에 모여 맥주 한잔 했다. 그때 이 감독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왜 <초록물고기> <박하사탕>을 만들었고 지금 <오아시스>를 찍는지 이해가 갔다. 그는 적어도 자기의 삶을 배신하는 일은 안 할 것 같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신뢰한다. 그는 어릴 때 좁은 시장통 골목에 살면서 옆집인지 앞집 형이 틀어놓은 <샌프란시스코>라는 팝송을 매일 들었단다. 그 노래가 10대 시절의 판타지였단다. 샌프란시스코가 어떤 곳이기에, 사람들이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니나. 나중에 출세해서 그곳에 가자마자 제일 먼저 사람들이 머리에 꽃 꽂고 다니나부터 확인했단다.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인데, 항상 자기의 판타지를 어디선가 찾았던 것 같다. 현실도피적인 게 아니라, 자기를 놓치지 않고 가려는 게 있었던 것 같다. 지금 그 판타지가 <오아시스>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그의 영화 세편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장면이 있다. 한 집단이 모여서 잘 놀다가 누구 하나가 들어와서 파투나는 것. <초록물고기>의 가족 야유회, <박하사탕> 첫 장면의 강변 야유회, <오아시스>의 어머니 회갑연이 그렇다. 그런데 누구나 다 그런 기억이 있지 않을까. 또 셋 다 범죄의 요소가 있다. 확실히 이 감독은 자신의 기억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그걸 인정하고 끄집어내 보여주는 걸 꺼리지 않는다. 편집 끝나고 대학로에 모여 술마실 때 내가 그랬다. 90년대 대표감독으로 홍상수, 이창동을 꼽는데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세상보는 시선 같다, 홍상수는 유머러스한 것 같으면서 냉소를 지녔고 이창동은 되게 비열하고 잔인해 보이는 현실을 그리는데도 따듯한 것 같다고. 이 감독 왈 “아, 우린 또 따듯한 거 좋아하지.” 그의 유머는 선생님 티가 나면서 썰렁한 데가 있다. 내가 <초록물고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장르로서의 완성도도 높고 어쩌고 하는 순간 그가 말을 빼앗았다. “아, 우리 또 장르영화 좋아하지.” 그는 현장에서 재미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이거 재밌냐?”, “재미없냐?” 그 재미라는 게 특별한 말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제대로 보이느냐는 것이었다. 만드는 사람이 진정성을 가지면 전달될 거라는 믿음을 가진 것 같았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지켜본 바, 그는 따듯한 사람이고, 유러머스한 사람이었다. 선생님으로 따지면 왜 수업시간에 재미있게 해도 버스에서 만나면 조는 척하며 피하고 싶은 교사가 있고, 수업시간에 무섭게 해도 마주치면 인사하게 되는 사람 있지 않은가. 선생님일 때 그는 후자였을 것 같다. 이 감독은 나이로 치면 장선우, 박광수 감독 연배지만 데뷔를 90년대에 해서인지 박찬욱 이하 아래 세대 감독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것 같다. 영화도 이 감독의 영화는 <초록물고기> 같으면 누아르, <오아시스> 같으면 멜로의 장르적 친근성이 있어서 좋다. 김지운 감독도 <오아시스> 촬영장에 놀러왔고. 물론 나보러 온 것도 있지만. 나만 해도 그렇다. 장선우, 박광수 감독 만나면 언다. “너, 어디 연출부니?”하고 물을 것 같다. 그러나 이 감독은 편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아시스> 이 감독이 찍은 걸 엎고 다시 찍으며 힘들어 하는 걸 보면서 왜 그러는지 묻지는 못했다. 고작 단역배우가 시키는 일이나 잘하면 되지. 또 내가 연출할 때도 남이 자꾸 물으면 짜증난다. 그의 고민은 아마도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것이었던 것 같고, 영화를 보면 알 수 있겠지 했다. 원래 시나리오 읽을 때 나는 우선 종두 캐릭터와 해피엔딩이 좋았지만 역시 이창동 영화라는 느낌은 확실했다. 그 주변사람들 하는 대사나 행동이 사실 살벌한 이야기 아닌가. 막상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엔딩 부분은 생각보다 약했다. 그러나 지하철역에서 공주의 판타지는 시나리오 읽을 때는 썰렁하게 느꼈는데, 영화로 보니까 내가 왜 이러지 싶을 정도로 가슴이 미어졌다. 별것도 아닌데. 코끼리 나오고 비둘기 나는 판타지 장면이 의외였는데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이 감독이 만만치 않은 무게의 작품 두개를 했는데 벗어나고 싶지 않겠는가. 김지운 감독은 나처럼 지하철 장면에서 가슴에 밀물이 쳤다며 이 영화가 “자극적”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공주를 보면서 성욕까지 느꼈다고 했다. 답답하다는 이도 있다. 허진호 감독이 그랬다. 경찰서에 끌려간 종두가 강간 안 했다고 왜 말 못하느냐는 거였다. 답답해 하는 사람은 이 부분과 종두가 형을 대신해서 감옥에 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 둘을 지적하는 것 같았다. <오아시스>는 논란이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전작들보다 열려 있는 것 같다. 감독이 관객의 우위에 서 있는 게 아니라, 관객 틈을 비집고 옆으로 들어오는 영화다.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에 <오아시스>는 이 감독에게 분기점이 되는 것 같다. <박하사탕> <초록물고기>를 보고서 이 감독에 대해 편견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있을 거다.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실제의 이창동과 무관하게, 기대치를 만들어 거기에 박제되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박하사탕>에 비해서 어떻다, 이런 말들 나올 거다. 나는 <오아시스>를 통해서 이 감독이 자유로워지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관객도 <오아시스>를 보고나면 그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질 거다. ‘이럴 거야’ 하는 예단을 허락지 않는 궁금함. 사실 예상치와 맞아떨어지면 재미없지 않은가. 이런 무거운 얘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가는 부분 같은 것들, 그렇게 그가 가볍고 자유로워지면 좋을 것 같다. 류승완 감독, 이창동 출연이창동 감독 영화에 다시 출연할 생각 있냐고? 시사회 때보니까 내가 나오면 “우” 하는 야유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써줄까? 그보다 다음에 내가 필름누아르 찍으면 이 감독이 악당으로 출연하겠다고 했다. <호파>를 보면 노조원이 알 카포네 만나고 와서는 “악수할 때 보니 손이 매우 부드럽더라”고 말한다. 자기들과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감독은 얼굴 표정이나 주름을 보면 엄청난 일을 많이 겪은 것 같은데, 손이 매우 예쁘다. 가늘고 길다. 그 손을 보면서 알 카포네 생각이 나 출연 제의를 했더니 하겠다고 약속했다. 알 카포네 같은 조폭 두목이 아니라 시장통 다니면서 사과 빼앗아먹고 1만∼2만원씩 차비 뜯어가는, 상인들 피빨아 먹고사는 사람을 시키면 아주 어울릴 것 같다. 그때 복수전을 펼쳐야겠다. “감독님, 내일 새벽 6시에 집합입니다.” “다 아시잖아요, 알아서 해 주세요.”구술정리 임범 isman@hani.co.kr·권치욱 dorre@hani.co.kr
▶ <오아시스>에 출연한 류승완 감독이 훔쳐본 감독 이창동,인간 이창동(1)
▶ <오아시스>에 출연한 류승완 감독이 훔쳐본 감독 이창동,인간 이창동(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