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모자라는 남자가 뇌성마비 장애인을 사랑을 한다. 그 설정이 힘들고 슬프다. 영화 자체가 영화를 끌고 가기보다는 ‘내용’이 영화를 끌고 간다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의 변방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삶 자체가 희생이며 그것이 보통 사람들의 속물적인 삶의 보속이라는 점을 알려주는 일은 누가 보더라도 진지하고 투철한 작가정신의 산물이다. 그러나 결코 무겁지도 않다. 모자라는 남자도, 뇌성마비 장애인도 때로는 자연스러운 개그맨들이 된다. 그들의 삶에 위트와 유머가 있다.
음악을 맡은 이재진은 버클리 음대에서 영화음악을 전공했다. <박하사탕>에서 단아한 멜로디 라인을 선보임으로써 일약 주목받는 영화음악 작곡가의 대열에 올랐다. 또 <파이란>에서도 그의 멜로디는 순진하면서도 잘 정돈된 매력을 발산했다. 이번 음악도 그 음악들의 연장선상에서 음미할 수 있는 편안하고도 일상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메인 타이틀의 경우 좀더 리듬이 강화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타악기와 피아노의 반주, 그리고 바이올린 선율이 목관악기의 따뜻함과 섞인다. <겨울> 같은 트랙에서 보여주는 스트링 편곡 실력이나 저음의 멜로디 라인은 그가 재능있는 작곡가라는 것을 잘 알려준다. 코끼리와 붉은 옷을 입은 인도 여인과 방 안에서 그들만의 축제를 벌일 때 나오는 민속음악은 그가 직접 고른 것으로 되어 있다. 선곡 솜씨도 좋다. 그러나 어딘지 영화 색깔보다 조금은 지나치게 세련되지 않았나 하는 점은 약간 아쉽다. <파이란>에서의 단아함은 한 깡패의 비루한 일상과 교차되는 장백지의 깨끗함이나 바다의 느낌 때문에라도 잘 어울렸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약간 더 거칠었어야 영화를 더욱 살릴 수 있었을 것 같다. 어쨌든 그의 톤은 깨끗하고 단정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깨끗하고 단정한 느낌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것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일상의 비천함을 넘어서는 어떤 힘 같은 것을 영화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진지하고 투철한 작가정신… 이창동의 작가정신은 ‘리얼리즘’적이다. 현실의 핵심사항들을 진지하고 투철하게 바라보겠다는 것이 그의 뜻이다. 물론 이번에는 ‘오아시스’라는 환상지대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존재방식은 환상적이지 않고 현실적이다. 귀여운 새끼 코끼리가 그저 방 안에서 뛰어논다. 사운드의 전체적인 톤 역시, 뭐랄까, 리얼리즘적이다. 음악도 우선은 그 관점에서 쓰인다. 음악이 많지 않다. 대신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 다시 말해 ‘소리의 환경’을 이루는 그런 소리들을 별 관심이나 의도함 없이 슬쩍 잡아두는 척하면서 잡아둔다. 그 소리들은, 한마디로 진부하다. 그런데 이 진부함은 그냥 진부함은 아니다. 진부한 것을 그리겠다는 마음의 발로로서 진부하게 된 그런 진부함이다. 하나도 어려운 게 없다. 아니, 사실은 의도된 어려움이 거의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굉장히 의도된, 어떤 의미로는 매우 세련된 사운드들이다. 그래서 그건 일종의 모더니즘이 된다. 브레히트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모든 리얼리즘은 그런 방식으로 거의 모든 모더니즘이 되는데, 이창동의 리얼리즘적 작가정신도 어느 면으로는 그런 맥락 속에 존재한다. 그래서 ‘표현’이라는 것에 대해서 더 생각할 필요가 생긴다. 현실 속에 가만히 살지를 않고 그걸 ‘표현’하면서 산다. 어디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할까.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