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즐겨보는 편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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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 편인데 실제로 만화를 별로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잘 보지도 않는다.
조금 의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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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거의 중독 수준으로 만화를 보는 편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 만화와 영화는 같은 부분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상당히 다른 것이다. 영화에는 음악이 나오고 살아 있는 인간이 움직이며 그들의 대사가 음성처리가 된다. 그건 상당한 차이다. 또한 만화는 보는 이가 다음 장으로 넘기지 않으면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리는 데 비해 영화는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작업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오히려 애니메이션 세대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컷들이 만화적이라는 느낌이 크다. 뭔가 기가 막힌 상황이 펼쳐졌을 때 아이들이 동시에 입을 쩍 벌리고 멈춰 있는 동작이라든지…. 그렇다면 당신의 상상력과 표현력의 원천은 어디라고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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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이렇게 휙 둘러보기만 해도 재미있는 부분이 들어올 정도다.
예를 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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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기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자아이를 봐라. 난 저 아이가 아까부터 쭉 재밌다고 생각했다. 저 아이는 여기 별로 앉아 있고 싶어하지 않는데 가족들이 억지로 앉혀놓은 것 같다. 그래서 의자를 까딱대면서 냅킨을 폈다가 접었다가 끙끙대고 있는 걸 것이다. 그런데 상상해봐라. 갑자기 아이의 의자가 뒤로 휙 넘어지면서 그릇을 치우던 웨이트리스가 쟁반에 있는 물을 떨어뜨리고 앞에 있는 신사의 서류에 물을 끼얹게 되고… 결국 큰 사건으로 말려버리는 거다. 혼자 앉아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상상하는 것. 그런 습관이 내 상상력의 원천이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현장은 두 부류인 것 같다. 제작진도 배꼽빠질 정도로 웃으면서 만드는 영화 혹은 아주 심각하게 제작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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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워터보이즈>의 촬영현장은 너무 재미있었다. 원래 배우들을 즐겁게 해주고 현장 분위기를 잘 이끌어 나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늘 아주 심각했다. 영화의 스케줄이 잘 가고 있는지 등등 많은 생각이 산적되어 있어서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속은 천둥번개가 치는 나날이었다
일본영화는 재미없다, 라는 게 정설이 되어버릴 정도로 대중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당신은 ‘재미’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감독이다. 혹시 동시대의 심각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에게 위화감 같은 건 느낀 적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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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그들을 싫어한다거나 위화감 같은 걸 느껴본 적은 없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때로는 심각한 영화가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일본에는 심각한 영화가 워낙 많고 재밌는 영화와 심각한 영화의 밸런스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자신과 비슷한 색깔의 일본감독을 꼽으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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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지금은 조금 다르지만. <포스트맨 블루스>의 사부나 이와이 순지 같은 감독은 내가 추구하는 세계와는 다른 것 같다. 그들 역시 영화에 대한 너무나 진지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나는 영화는 단지 관객을 즐겁게 만드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중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꼭 영화만 고집하진 않고 있다. 다른 미디어라도 상관하지 않는 편이다.
비슷한 사람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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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라이벌도 없고 친구도 없다. 그래서 매우 고독하다.
<워터보이즈>는 2001년 영화인데 그 사이 어떤 작업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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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코픽션>이란 영화를 만들었다. 5편의 단편을 묶은 옴니버스영화로, 도쿄에 있는 파르코라는 백화점과 손잡고 만든 영화다. <원피스 프로젝트>의 제작을 함께했고 <비밀의 화원>의 공동각본을 썼던 스즈키 감독과 이번에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지금 일본에서 개봉중이다.
<파르코 픽션>의 에피소드 중 하나만 이야기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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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시험>이란 에피소드는 파르코백화점에 입사시험을 치른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경쟁률이 높은 이 회사에 입사시험을 치르고 불안해하던 한 남자에게 봉투 하나가 배달된다. 그 봉투 겉면에는 “끝까지 열어보지 말 것”이라는 말이 써 있었고 그 남자는 지시대로 봉투를 열지 않는다. 그리고 일주일 뒤 합격통지서를 받게 된다. 그러다가 열심히 회사를 다니던 주인공이 어느 날 집 어디선가 다시 그 봉투를 발견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발전된다. “이미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어때” 하는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는데 그 안에는 어떤 지시사항이 써 있었고 그 지시를 따라가던 주인공이 엄청난 곤경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다.
<비밀의…> <아드레날린…>에는 늘 돈가방이 나왔는데 <워터보이즈>에서는 돈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졌다. 지난 인터뷰에서 “어릴 때 가난하게 자라서 그렇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돈을 많이 벌어서 마음이 바뀐 건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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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미묘한 질문이군…. 사실 <비밀의…> <아드레날린…>을 만들 때보다 돈을 조금 더 모으게 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대 35살 남자들의 평균수입에 비하면 나는 여전히 가난한 영화감독일 뿐이다.
인터뷰 김의찬/ 영화평론가·백은하 luc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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