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즈 엔드>, <전망 좋은 방> 등을 연출한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러브 템테이션>이 극장 개봉을 거치지 않고 비디오로 출시됐다. 헨리 제임스의 소설 <더 골든 볼>이 원작.
이탈리아 귀족의 후손인 아메리고(제임스 폭스)는 미국 최초의 억만장자인 애덤 바버(닉 놀테)의 외동딸 매기(케이트 베킨세일)와 약혼한 사이다. 그는 매기의 친구인 샬로트(우마 서먼)와 뜨거운 사이였으나, 샬로트를 미국으로 보내고 매기와 결혼한다. 아메리고와 매기를 중매한 패기(안젤리카 휴스턴)는 샬로트와 아메리고의 관계를 비밀에 붙이지만, 아메리고를 잊지 못하는 샬로트는 매기의 하객으로 결혼식에 참석한다. 아메리고와 매기가 아이를 낳고 행복에 겨워하는 사이 샬로트는 애덤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하기에 이른다. 장모와 사위 사이가 된 아메리고와 샬로트는 처음엔 지나치다 속삭이는 정도에 그쳤지만 점점 대범해져서 애덤과 매기를 따돌린 뒤 밀회를 즐긴다.
아이보리 감독은 이 작품에서 서로 엇갈려있는 네 남녀의 불안하고 위태로운 심리를 그려내는 데 온 정성을 쏟았다. 영화 첫 장면에서 아메리고가 샬로트에게 들려주는 끔찍한 이야기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열여섯 살 소년은 그 두 배 나이의 계모와 사랑을 나눴지. 소년을 질투하던 형이 현장에 아버지를 데려왔어. 아버지는 계모와 소년을 즉시 처형해버리고는 열한 살짜리와 또 재혼했지.” 살얼음을 밟는 듯한 아메리고와 샬로트의 밀회가 이어지면서 중간중간엔 단두대에 묶인 죄수가 나오는 연극, 쓰러진 큐피드 상, 처형자의 가면을 쓰고 놀이하는 아이 등이 삽화처럼 끼여들어 불안한 운명을 암시한다. 자기 속내를 직접 드러내는 대신 다른 이야기 안에 흉중을 담는 세련된 중의법의 대화도 작품의 매력이다. 가난한 귀족의 허장성세와 비굴함, 고가 예술품 수집으로 소일하는 벼락부자의 속물근성 등, 상류사회의 이중성에 대한 묘사에서 장기를 발휘해온 아이보리의 손맵씨가 여기서도 충분히 발휘됐다.
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