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와 푸름이는 네살이다. 별이는 산타할아버지에게 목도리 선물하는 게 꿈이고, 푸름이는 119 구조대원 아저씨 되는 게 소원이다. 고양이 날고와 강아지 렁이, 호랑이 타이가 이들의 친구. 매일 함께 몰려다니면서 신기한 세상을 배우는 일행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 친구가 있으니, 바로 능청스럽고 장난기 많은 꾸미다. 마음씨 고운 아이들만 볼 수 있는 꾸미는 강아지도 아니고 곰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상상의 존재. 이 꾸미가 아이들에게 세상의 비밀을 하나씩 가르쳐주는 것이다.
48부작 TV시리즈 <내 친구 꾸미>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을 무렵의 기억을 더듬게 하는 애니메이션이다. 발자국, 달, 돌, 길…. 하나부터 열까지 신기하기만 한 꾸미의 친구들은 밥먹으면서, 뛰어놀면서, 세상의 존재를 하나씩 깨우쳐간다. 순수한 느낌이 기분 좋은 이 작품은 MBC 방영작인 <붐이담이 부릉부릉>의 스탭들이 만들고 있다. 데모 영상부터 일러스트 하나까지 스탭들은 철저히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작업하려고 한다고. 영상 흐름도 마찬가지다. 만드는 사람이 만족하는 설명 위주가 아니라 아이들이 대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과정을 함께 그려간다. 2003년 방영을 준비중인 <내 친구 꾸미>는 길지 않은 10분가량으로 진행된다.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는 길이, 아이들이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그림체…, 이수영 미술감독은 그래서 파스텔 색조와 결 고운 느낌으로 기조를 잡았다.
해와 구름이 평화롭게 떠 있는 어느 날. 심심한 날고는 장난감을 발견한다. 그건 별이가 잃어버린 털실. 별이가 부르는 소리에 날고는 털실을 놓치고 만다. 저만치 굴러가는 털실을 뒤쫓던 일행은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털실 가닥 위를 달리고 있다. “와, 털실이 넓어졌어. 우주인이 만든 건 가봐!” 신나게 털실 위를 달리고 구르다가 일행은 여기가 어딘지 궁금해졌다. “우리, 꾸미에게 물어보자!”
아이들이 부르면 꾸미는 어김없이 나타난다. “여긴 길이야. 길은 계속 이어져 있단다. 길이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지. 산 너머에도, 우주에도, 꿈나라에도, 길이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단다. 내가 길을 안내할게. 얘들아.” 아이들은 꾸미를 따라서 산길을 걷고 들판을 걷고 해변을 걷고 구름과 무지개 사이를 걷는다. 동요 <앞으로 앞으로>를 부르면서 아이들은 ‘길’을 이해하게 된다.
“다빈치의 호기심과 뉴턴의 관찰력, 모차르트의 감수성, 콜럼버스의 발상, 스필버그의 상상력을 한곳에 모았다”는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만이 표현할 수 있는 환상적인 영상을 어김없이 펼쳐낸다. 제작사인 에이알피스튜디오 홈페이지(www.arpstudio.co.kr)에서 데모 영상을 볼 수 있다. 평화를 잃어버리기 전, 복잡한 세상사가 마음을 휘저어놓기 전, 사람을 미워하기 전, 꾸미는 우리 마음속에도 있었는지 모른다. 아마 언젠가는 별이와 푸름이가 불러도 꾸미는 안 나타나겠지. 그때는 꾸미에게 세상의 비밀을 많이 배운 뒤겠지만.
그렇지만 꾸미야, 때때로 생각한단다. 길이 없는 곳도 있다는 것을, 길을 만들면서 가야할 때도 있다는 것을, 길이 있어도 가지 못할 경우도 있다는 것을 말야. 그걸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건 너무 이른걸까? 나는 때때로 꾸미 네가 진작 말해줬으면 좋았을걸, 그랬으면 세상에 대한 환상 따위는 품지 않았을걸, 하는 생각을 해. 휴…, 아니다. 그랬으면 어릴 적 무지개 사이를 걸어다니지 못했을 거야. 그치? 난 어느새 너무 많이 오염됐나봐. 보고 싶다, 꾸미야. 꿈에라도 한번 나와주렴.김일림/ 월간 <뉴타입> 기자 illi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