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도가니인데요.”
“눈물의 바다였다!”
최근 영화월간지에 <챔피언>의 제작진의 대담 기사에서, 내부 모니터 시사 뒤 반응을 그들은 그렇게 표현했다. 영화제작에 직접 관여한 사람들이라면 그런 말이 왜 나오는지, 어떻게 해서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누가 봐도 참혹해할 완성도의 영화가 아니라면, 만드는 사람들은 그 길고, 지난한 영화제작 과정을 겪으면서 ‘주관적’으로 빠져버린다. 그리고 대부분은 ‘주관적’으로 사랑에 빠져버린다. 흥행을 보장해주는 스타나, 감독이나, 이미 칭찬받은 시나리오가 있다면 그 도는 점점 더 올라간다.
수년간의 시나리오 작업 과정, 수개월의 촬영, 밤을 새가며 이루어지는 후반작업을 거치면서 자신들이 만드는 영화와 열애에 빠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참여한 영화에 침을 뱉을 만큼 냉정한 시각을 유지하고 있는 자라면, 속된 말로 무엇에도 애정이 없는 사람이거나, 냉혈인간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제작의 최종 의사 결정권자들뿐만 아니라, 저 막내 말단 스탭들까지 무지막지한 애정을 가지고 만든 영화라면, 그리고 영화가 완성되어 첫 기술시사회장에서 모두 ‘감동의 도가니’를 경험했다면,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이다. 자부해야 할 일이다.
물론, 투입된 만큼 뽑아내야 하는 경제적 비즈니스와 영화사에 희미하든, 뚜렷하든 족적을 남기냐 마냐의 일은 그뒤에도 계속되어야 하는 필연의 숙제이긴 하지만.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완성된 영화는 만드는 이들의 손을 떠나 시장에 던져질 때부터 그 운명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자신감에 충만했던 영화가 철저히 외면받는 경우도 있고, 내심 불안했던 영화가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심한 경우엔, 제작사나 투자사가 마음속에서 버린 영화가 ‘걸작’이 되는 놀라운 반전도 아주 가끔 존재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어떤 영화에 참여한 수십명, 수백명의 관계자 중에서, 그 영화의 가치를 가장 정확히 예측하고, 운명을 뒤바꿀 만큼의 용단을 가지고 있는 자가 존재하는 영화는 이른바 ‘행복한’ 영화이다. 자만과 교만이 뒤통수를 맞을 때, 지나친 폄하가 기우로 판명되었을 때의 ‘반전’의 맛은 기막힌 자극을 준다. 영화일은 그런 ‘역전’의 드라마가 존재하므로, 짜릿짜릿한 스릴이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인디안 썸머> 기자시사회에서, 노효정 감독은 “이 영화에서 잘된 부분, 칭찬받을 구석이 있다면, 제작진과 스탭들의 덕이요, 못난 부분이 보인다면 그건 나, 감독 탓이요”라는 인상깊은 멘트를 했다. 저 말이 교만일까, 겸손일까, 냉정한 평상심일까? 궁금했었다.
몇년 전, 모 잡지에 내 인생의 영화 10편 중에 내가 제작한 영화를 두편이나 끼워넣은 무지한 교만(?)을 부린 나는, 그 감독의 냉정한 시선이 일면 부러웠다. 지금도 그 잡지를 보면, 낯이 뜨겁다.
그러나 어쩌랴. 내일 하늘이 무너져도, 오늘 자신들의 영화에 ‘뻑’이 가는 그 뜨거운 착각이, 이 일의 매력임을… 아는 이들은 안다.심재명/ 명필름 대표 shim@myungfil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