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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아이스 에이지
2002-08-06

■ Story

이만년 전의 빙하시대. 동물들은 줄을 지어 피난행렬을 이룬다. 그들의 무리를 거꾸로 오르던 매머드 맨프레드는, 위기에 처해 있는 나무늘보 시드를 구해주는 것을 계기로 그와 동행하게 된다. 한편 인간과 검치호랑이 사이에는 전쟁이 벌어지고, 검치호랑이의 재물이 되는 것을 피해 아기 하나가 우연히 그들에게 맡겨진다. 맨프레드와 시드는 아기를 다시 인간들에게 데려다주기로 결심한다. 아기를 산 채로 잡아오라는 명령을 받은 검치호랑이 디에고가 이들과 거짓 동행길에 오르고, 이들 앞에는 위험 천만의 빙하계곡이 놓여져 있다.

■ Review

현실의 교훈과 행복을 가르치기 위해 판타지 세계의 모험을 통과의례로 제시해왔던 디즈니식 ‘교육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아니면 비꼬기의 놀라운 경지를 보여주고자 함이었는지), 드림웍스의 <슈렉>은 디즈니랜드를 엉망진창 쑥밭으로 뒤바꿔놓는 괴물 하나를 새로운 안티 히어로로 재설정했다. 그러나 2002년 이십세기 폭스가 제작한 <아이스 에이지>는 기술적으로 <슈렉>과 같은 3D애니메이션이면서도, 그 의미적에서는 ‘전형성과 전복성 둘 모두를 취하려 한다’. 아이는 배우고, 어른은 웃는다.

캐릭터들은 비교가 가능하다. 끈질기게 슈렉을 쫓아다니면서 지껄여대는 <슈렉>의 당나귀와 사사건건 맨프레드에게 의지하며 귀가 따갑도록 수다를 떠는 <아이스 에이지>의 나무늘보 시드. 당나귀와 시드는 같은 ‘역할’이다. 또한 동화 주인공들의 어려움을 거뜬히 해결해주는 괴력의 슈렉처럼, 아이를 부모에게 데려다줄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진 캐릭터는 맘모스 맨프레드이다. 둘은 ‘능력’이 같다. 하지만 독설과 반골기질, 삐침(?)으로 성격화되어 있는 슈렉과 다르게, 맨프레드는 휴머니티(?)를 겸비한 인자한 아버지상이 되어간다. 슈렉이 당나귀 못지않은 유머감각의 소유자라면, 아니 그보다 피오나 공주를 포함하여 <슈렉>의 모든 캐릭터가 한 가닥 사람 웃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아이스 에이지>에서 그런 역할을 전담하고 있는 것은 나무늘보 시드와 송곳니 다람쥐이다. 나머지 맨프레드와 디에고는 온화함 대 사악함이라는 대치를 이루며 영화 중반까지 경계를 유지해야 하고, 이내 그 선이 무너지는 순간,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지만 언제나 믿도록 되어 있는 우정의 형제들이 되어야 한다. 그 우정으로 진지함을 표시하면서, 함부로 농담할 수 없는 부모의 치환된 자리에 놓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빙하시대’는 이 영화에서 단지 배경의 구실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들은 동물의 위치와 같아지고, 동물들은 인간성을 대신 회복하면서 의인화된다. 아들에서 아버지로 성장해가는 맨프레드, 인간의 진화과정을 빗대 유머를 주는 시드의 동굴탐사 에피소드(이 영화에서 가장 웃기는 장면이다), 악에서 선으로의 필연적 전환을 증명하는 디에고. 빙하시대로 거슬러올라가면서 동물들은 채 언어를 발화하지 못하는 인간과 다르게 우월한 도덕을 발휘한다. 그리고 인간의 덕목을 대신 역설한다.

♣ <아이스 에이지>의 모험은 우연히 떠맡은 아기를 인간들에게 데려다주기 위한 여정이다. 아직 언어를 갖지 못한 인간들은 동물들과 동등한 위치이며, 의인화된 동물들이 오히려 인간성과 재치를 발휘한다.

♣ 믿음직한 메머드 맨프레드가 인자한 아버지 역할이라면, 수다쟁이 나무늘보 시드는 유쾌한 보모다. 도토리 한알에 목숨거는 다람쥐의 에피소드는, 잊어버릴 만하면 불쑥불쑥 등장해 관객을 웃긴다.

빙하시대라는 설정은 절묘하다. 일행의 모험(거대한 빙산 조각들과 끓는 용암, 그 사이를 헤치고 지나가야 하는)을 스릴있게 창조해내고, 관객을 사로잡는 시드의 유머(넘어지고! 부딪치고! 깨지고! 미끌어지는!)에 멍석을 깔아주는 것 역시 빙하시대라는 선택적 조건 덕분인 셈이다. 말하자면 역동적인 3D애니메이션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기설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이스 랜드가 아니었다면 이걸 모두 움켜쥘 수 없었을 것이다.

<슈렉>이 디즈니의 품안에서 커온 어른들을 상대로 더 큰 호소력을 발휘하는 애니메이션이라면, <아이스 에이지>는 아이들의 눈높이와 부모의 따분함을 동시에 만족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연인의 동화는 비틀면서 풍부해지지만, 부모의 동화는 부연함으로써 따뜻해진다는 사실을 <아이스 에이지>는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는 아이들에 대한 배려와 부모들에 대한 서비스가 각각의 코드로 배정되어 있다. 양적으로 매우 제한되어 있는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어드벤처와 버디, 코미디 등의 장르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이 영화에는 재미있고 싶은 장면에만 재미있어하면 되는 자유가 있다. 하지만, 혼자 가는 어른들에은, ‘절대’ 한국어 더빙판은 보지 말 것. 정사헌/ 영화평론가 taogi@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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