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풍경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실제작비 42억원 가운데 세트에 들어간 돈만 5억5천만원. “서울을 비롯해 어디를 가도 높은 건물과 전선줄 때문에 카메라를 뻗혀놓을 수 없었다”는 이우정 PD의 말대로 <YMCA…>의 그럴듯한 풍경은 촬영 8개월 전부터 헌팅단이 구성될 정도로 만만치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결국 스탭들은 3개월의 꽉 짜인 스케줄 속에 안동 하회마을에서 임실로, 거제도로, 전주로, 서산의 해미읍성에서 순천까지 ‘YMCA유랑단’마냥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 팔도를 떠돌아다녔다.
1900년 초의 종로거리를 재현한 오픈세트는 전주 3공단에 만들어졌다. CG의 힘을 빌린다 해도 상가 4채는 새로 지어야 했고 약 1억원을 들여 옛날 방식인 배터리 충전식의 전차를 운행시켰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잠시 해체되었던 YMCA야구단이 1905년의 종로거리에 일렬횡대로 등장하는(맞다 <아마겟돈>의 그 장면!) 진귀한 신이 연출될 수 있었다. 일본팀과의 1, 2차전 경기를 위해서는 임실에 위치한 허허벌판 7천평을 갈아 엎어 그럴듯한 경기장을 만들었고, YMCA야구단의 근거지인 태화관은 새롭게 리노베이션했다.
17일 동안 풀숏만 찍었다?
YMCA야구단에는 단가가 있다. 그러나 영화상영시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촬영장주제가’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바로 ‘한점이 되어라∼’다. 경기장면이 많다보니 늘 한팀이 되어 움직이는데다 뒤에 배경처럼 있다 할지라도 누구하나 빠질 수 없는 것. 이른바 ‘점연기’라고 불리는 연기를 위해 한-일전이 열리는 임실에서 17일간 땡볕에 강행군한 배우들은 “바스트숏 하나라도 들어올 줄 알았는데 끝까지 풀숏이구만. 이럴 줄 알았으면 점연기 대역이라도 마련하는 건데…”라며 후회섞인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송강호도 김혜수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17일 동안 나름대로 ‘점연기’에 재미들린 배우들은 보이지도 않는 연기설정 경쟁을 벌이기도 했고 이것도 시큰둥해질 무렵엔 촬영장 한구석에서 흙에 물을 부어 메주도 만들고 공룡도 만들고 때론 공놀이, 장대높이뛰기 등으로 소일했다는 후문이다.
신구 vs 송강호의 2차전이 벌어진다는데….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은데….”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를 본 심재명 대표는 <조폭 마누라>의 인연을 떠올리게 만드는 박상면과 신은경의 이 대사를 듣고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창과 호창부로 등장하는 송강호와 신구가 첫 등장하는 장면에 썼으면 좋았을 대사였기 때문이다. 구박과 몰매를 서슴치 않았던 <반칙왕>에 이어 <YMCA야구단>에까지 핏줄을 이어가는 신구와 송강호는 때론 엄격함으로 때론 엉뚱한 정겨움으로 조금 더 끈끈한 부자관계를 보여준다. 다음 대화를 보자.
호창: (뜬금없이) 아버지, 저기 학이 있습니다.
호창부: 저건 오리 아니냐 이눔아.
호창: 오리치고는 다리가 너무 깁니다.
호창부: (한심하다는 표정) 그럼, 저 부리는 뭐냐?
호창: (떫어지며) 음, 부리를 보니까 아닌 걸 알겠습니다.
썰렁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부자.
썰렁하기 그지없다고? 그렇다면 배우를 대입시키고 읽어보자. “글공부를 바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상놈이나 하는 야구에 정신팔린 아들이죠. 서로 한복을 입고 만나서 그런지 가면쓰고 만날 때보다는 더욱 정겹던데요” 존재감만으로도 영화를 찍는 내내 큰힘이 되었다고 스탭 모두 입을 모으는 신구. 그가 맡은 보수적인 훈장선생은 아들 앞에서는 “너같이 발칙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놈한테 서당을 물려줄 생각을 했다니,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마라”며 낙향하지만 내심 아들이 ‘조선 최초, 최강의 4번타자’가 되었음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리고 YMCA야구단이 다시 모인다는 소식이 실린 <황성신문>을 슬그머니 아들에게 건넨다. 물론 호창은 이러한 아버지의 진심을 마지막이 돼서야 알게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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