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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초크의 <피츠카랄도>촬영과정 담은 다큐 감독 레스 블랭크
2002-07-31

˝왜 일부러 위험한 일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존 유역에 오페라 하우스를 지어 그곳에 성악가 카루소를 초청하기를 꿈꾸는 몽상가 피츠카랄도.

이 광기어린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베르너 헤어초크의 영화 <피츠카랄도>는 그야말로 악전고투 속에서 완성되었다. 피츠카랄도가 수많은 원주민들의

힘을 빌려 배를 끌고 산을 넘어가는 과정을 거의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낸 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영화는 2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 올해 부천에서 상영된 <버든 오브 드림스>는 바로 이 악전고투의 현장을 생생히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여기서 헤어초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단지 나의 꿈만은 아니다. 이 모든 꿈들에 대한 나의 믿음은…. 또한 당신의 것이기도 하다. 당신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한 차이는 나는 그것들을 실현했다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감독 레스 블랭크는 미국의 독립영화감독으로 미국 문화 특히 음악에 관한 일련의

다큐멘터리를 다수 제작한 인물이다. 붉은색 셔츠를 단정하게 차려입고 인터뷰장에 나타난 레스 블랭크는 낮고 굵직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인터뷰가 끝나고 찾아간 상영관, 그는 독립영화감독답게 입구 옆에 간단한 부스를 마련해 놓고 자신의 영화가 담긴 비디오테이프들과 관련 책자

및 티셔츠를 판매하고 있었다. 상영 뒤 김홍준 집행위원장의 통역으로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시간에서도, 그는 관객의 질문 하나하나에 성실히

답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자신의 판매부스에 들러줄 것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당신은 독립영화감독으로서 많은 다큐멘터리들을 제작했을 뿐 아니라, 장 피에르 고랭이나 두상 마카베예프 같은 감독들의 영화에서 촬영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들에 대한 인상은.

장 피에르 고랭은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친구다. 그는 담배를 지독하게 피워대는 사람인데, 영화촬영이 끝난 뒤엔 스탭들에게 자신이 손수 만든 요리를 대접하기도 하며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즐긴다. 때론 식사가 끝나고 그의 낡은 차를 타고 도로를 고속으로 질주하며 계속해서 영화얘기를 해댄다. 그러다 타이어에 불이 난 적도 있다. 마카베예프가 일하는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그는 의욕이 넘치는 인물로 함께 일하는 동안 매우 즐거웠다.

헤어초크 감독은 어떻게 알게 되었으며, <피츠카랄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는.

평소 친분이 있던 퍼시픽필름 아카이브(Pacific Film Archive)의 프로그래머 톰 루디를 통해 알게 되었다. 헤어초크를 처음 만난 것은 1975년이다. 그와 나는 곧 친해졌다. 이후 나는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고 헤어초크도 동의했다. 그래서 만들게 된 것이 <버든 오브 드림스>다. <피츠카랄도>는 1979년에 제작에 들어갔는데 나는 좀 나중에 제작현장에 도착했다(블랭크가 관객과의 대화시간에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피츠카랄도 역이 제이슨 로바즈에서 클라우스 킨스키로 교체된 이후부터 작업에 임했다)

당신은 <버든 오브 드림스>를 영화 <피츠카랄도>에 관한 다큐멘터리임과 동시에 원주민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관찰기처럼 만들었다.

<버든 오브 드림스>가 한 영화에 대한 다큐멘터리인가 인류학적 관찰기인가 하는 것은 말하기 나름일 게다. 물론 그러한 이중적인 구성을 분명히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분명 한 영화에 대한 다큐멘터리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원주민들의 삶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으므로, 그들의 실제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버든 오브 드림스>는 어떤 점에서는 <피츠카랄도>에 관한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그 영화의 또 다른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헤어초크의 작업이 어떤 식으로 끝나게 될지 알지 못했다. 헤어초크가 만든 영화와 달리 나의 영화는 이야기가 있는 드라마로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비록 <피츠카랄도>에 원주민들이 다수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그의 영화를 위해 다소간 변형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나는 촬영 당시 현재 있는 그대로의 원주민 문화를 담고자 했다. <피츠카랄도> 작업 초기에 세워졌던 첫 번째 캠프는 원주민들에 의해 불타버렸다. 그런 일이 있기도 했지만 나는 작업하면서 점점 원주민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가능한 카메라 앞에서 보여지는 모든 것을 찍고자 했으며 그들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카메라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당신은 원주민들이 유카 열매로 그들 고유의 음료인 ‘마사토’(masato)를 만드는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피츠카랄도>에는 클라우스 킨스키가 그것을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를 보면 킨스키는 감염이 두려워 실제로는 그걸 마시지 않으려 했다.

촬영 당시 킨스키는 자기만의 물병을 가지고 다니며 물만 마셨다. 원주민들이 마사토를 만들 때 그들은 발효를 위해 유카를 입으로 씹어 침과 섞은 뒤 다시 뱉어내 용기에 담는다. 마사토는 익숙한 원주민들이야 곧잘 먹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좀 역겨운 것이다. 나도 맛을 본 적이 있는데 오줌과 토사물을 섞은 것 같은 맛이 난다. 하지만 그건 한국인들이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듯 원주민들이 손님에게 내놓은 음료인 까닭에, 마시기를 거부하는 것은 접대를 무시하는 게 되어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당신의 영화에는 <피츠카랄도> 촬영 당시 언론에 게재되었던 몇몇 악의적인 기사들이 삽입되어 있다.

헤어초크는 주위로부터 많은 압력을 받았다. 그가 원시림과 원주민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들 대부분은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고 오보 또한 많았다.

다큐멘터리 초반부에 내레이터는 아마존 유역의 황폐화에 관해 말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진정한 원주민 문화를 영화 속에 담아내고자 한 헤어초크 자신의 작업마저도 결국 그러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셈이었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버든 오브 드림스>는 암시적으로 그러한 딜레마를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의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잘 지적했다. 거기엔 당연히 딜레마가 있다. 나는 분명 그러한 딜레마를 관객에게 전달시키고자 의도했다. 그러나 알아두어야 할 것은 개발회사들에 의해 저질러진 다른 훼손들에 비하면 헤어초크에 의한 것은 극히 미미하다는 점이다. 숱한 목재회사, 석유회사 등에 의한 개발작업이 그냥 용인되었다. 이 영화의 공개는 개발을 저지하는 효과를 낳았다. 이후 개발산업의 수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나는 <버든 오브 드림스>를 페루 대통령에게도 보여준 적이 있는데 이 영화는 그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헤어초크와 킨스키간의 불화, 촬영현장에서의 킨스키의 광란은 악명높다. 헤어초크는 다큐멘터리 <나의 친애하는 적>에서 이를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의 영화에서 그런 부분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킨스키가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을 대중에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내 영화에 삽입하기 위해서는 킨스키의 허가가 있어야만 했다. 물론 그는 허락해주질 않았다. <나의 친애하는 적>에서 헤어초크가 킨스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그 영화가 킨스키 사후에 제작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의 친애하는 적>의 10% 정도는 내가 <피츠카랄도> 작업 당시 찍었던 필름들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찍었던 필름에는 킨스키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이 담겨 있는 것도 많았다. <나의 친애하는 적>의 마지막 부분, 킨스키가 나비와 함께 평화롭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 또한 내가 찍은 것이다. 그건 <버든 오브 드림스> 편집 당시에 마땅히 삽입할 곳이 없어 삭제했던 장면이다.

촬영 당시 헤어초크의 작업을 지켜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왜 그렇게 일부러 어려운 작업만 골라서 하는지, 스스로에게 과중한 압력을 부과하는지를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쉬운 방법도 많은데 왜 위험을 감수하는 걸까. 나는 그가 그 큰 배를 가지고 정말로 산을 완전히 넘어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운도 좋았다. 영화촬영에 참가한 원주민들 가운데 단 한명이라도 촬영 중 목숨을 잃었다면, 거기 있던 모든 스탭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 빠져나갈 데도 없었으니까.

<피츠카랄도> 작업 중 배가 바위에 심하게 부딪혀 촬영감독 토머스 마우흐의 손이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신은 괜찮았는지.

나 또한 난간에 부딪혀 등뼈를 심하게 다쳤다. <버든 오브 드림스>에는 내가 뒤로 엎어지면서 프레임 안에 나의 발이 불쑥 들어오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처음에는 계속해서 촬영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카메라를 내려놓고 말았다. 너무 위험했으니까.

부천에서 <버든 오브 드림스>와 함께 상영된 <헤어초크, 구두를 먹다>의 제작동기는 무엇인가. 그리고 혹 헤어초크로 하여금 ‘구두를 먹게’ 만든 다큐멘터리 감독 에롤 모리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지.

나는 다큐멘터리스트이고 헤어초크는 내게 흥미로운 필름메이커다. 그게 다다. 그가 구두를 먹는 모습을 보고 같이 있던 나도 한번 그 삶은 구두를 씹어먹어 보았는데 내겐 영 별로였다. 에롤 모리스는 그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만났을 뿐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다.

당신의 홈페이지(www.lesblank.com)에 올려진 한 글에서 당신은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 특히 <제7의 봉인>이 스스로의 삶을 영화로 향하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언뜻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당신의 경력과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는 잘 연결되지 않는데.

베리만의 영화는 무엇보다 인간관계와 인간적 삶에 관한 것이다. 인생은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때로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 베리만의 영화 속에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관심이 담겨져 있다. 나는 바로 이런 것들을 베리만에게서 배웠다.

글 유운성/ 영화평론가 akeldama@hanmail.net 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