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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철 리철진><주유소 습격사건><라이터를 켜라>의 유해진(2)
2002-07-26

몸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비결 2 필사정진

“연기에 필이 꽂힌 이후”, 유해진은 한눈을 판 적이 없다. 고등학교 졸업 뒤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려 했던 그는 두 차례 미역국을 먹었는데도 꿈을 꺾지 않았다. 결국 의상학을 전공한 그는 그때의 선택이 “아버지의 강권 때문”이라면서도, “염색만은 무대의상 작업에 도움이 되는 수업이라 완벽하게 배웠다”. 한때 고등학교 친구의 누나가 운영하는 무용학원에 다녔던 것도 언젠가 무대 위에서 풍부한 표현을 내놓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학원이 꼭대기층에 있어 물 사정이 안 좋았거든요. 그래서 물 길어올리고 청소도 하면서 곁눈질해가며 배웠죠. 근데 지금은 그 몸이 다 굳었어요.”

까까머리 열다섯살 때 본 추송웅의 <우리들의 광대>의 환영이 어른거려 대학 시절에도 청주의 극단 청년극장에서 살다시피 한 그는 군대를 다녀온 뒤, 1995년 당시 서울예대 연극과에 편입하면서부터 본격적인 모색을 시작한다. 이때 만난 송혜숙 교수는 그에겐 어머니 같은 존재. 허기진 배로 발성연습 하던 그 시절, 송 교수가 사주던 남산 충남식당의 콩자반 백반을 잊지 못한다. <Seduction>이라는 연극을 들고 오프 브로드웨이로 공연 갈 때 비행기삯 걱정하던 그에게 “좋은 거 많이 보고 오라”며 봉투를 찔러주던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지금도 힘들 때 찾아가면 “연기가 쉬우면 인생이 재미가 있을까”라고 되물음으로 자신을 충전시켜주곤 한단다.

비결 3 몸을 믿으라!

“오디션이 필요없어요.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기나긴 시험 과정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서울예대를 졸업하던 97년, 극단 목화를 찾은 그는 그곳에서 오태석 선생을 만난다. 엄한 아버지 아래서의 혹독한 단련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목화는 유명했어요. 그냥 몸만 굴리는 곳이 아니었거든요. 모든 배우가 자신의 의상, 소품까지 직접 제작하는 시스템이었으니까. 아침에 출근하면 새벽별 보고 나오는 일이 빈번했으니까.” 그는 목화에서의 몸짓을 땀과 숨소리가 빚어낸 조형이라고 믿고 있다. “목화의 연극은 장면전환이 배우들 숨소리로 이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어두컴컴한데, 배우들이 아무리 참으려 해도 고된 숨소리가 터져나오니까.”

항상 ‘무대는 달궈진 프라이팬’이어야 한다는 에너제틱한 오태석 선생 아래서 그는 <천년의 수인> <새들은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는다> 등의 무대에 올랐고, 조금씩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충무로에서 손짓을 하던 때도 이 무렵이다. 아는 형님 소개로 당시 정지영 감독의 조감독이었던 안병기 감독에게서 오디션을 봤고 <블랙잭>에서 최민수와 다투는 덤프트럭 기사 역할로 데뷔했다. 인연의 실타래가 이어져 <간첩 리철진>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등에 출연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뿌리는 여전히 연극에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무사>는 선회를 결심하게 만든 작품. 우연한 기회에 싸이더스 사무실에 갔던 그는 그곳에서 김성수 감독을 만난다. “처음엔 감독인 줄도 몰랐어요. 그냥 영화 잘 봤다기에 어이구, 그러시냐고 웃었죠. 근데 갑자기 끝나고 좀 만나자는 거예요.” 규모도 컸지만, 그가 부담스러웠던 것은 “표면적인 연기의 흐름 이면에 또 다른 사람 냄새를 풍겨내는 캐릭터”였기 때문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그가 색다른 접근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몸이 느끼는 대로 일단 부딪혀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몸은 비논리적이잖아요. 근데 거짓말은 안 해요. 몸을 따르면, 순리대로 가는 셈이지요. 제 연기가 몸으로 시작해서 몸으로 끝난다는 건 그런 뜻이에요.” 그의 ‘몸’ 연기는 계속된다.

★ ★ ★ ★ ★ 설경구가 본 유해진

시키지 않아도 준비한다

해진씨 일단 광고 하나만 할게. 8월15일 개봉하는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볼 만한 영화거든. 2시간이 넘지만 참을 만해. 꼭 보라고. 돈 내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순수한 사람인 것 같아. 해진씨는. 그렇게 몰입하는 거 순수하지 않으면 힘들거든. <해안선> 끝내자마자 <광복절 특사> 세트로 달려오다니,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그런데 좀 제발 살살 해. 난 창피하거든. 난 대사도 못 외워서 고생인데, 해진씬 주위에서 여유부리고 그러면 내가 남들에게 면목이 있겠어? <공공의 적> 때만도 그래. 시골장터까지 가서 싸구려 금박시계까지 사와서 차고 다녔잖아. 칼잽이 간지 낸다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준비하는 배우야. 당신은. 외모에 비해 속은 섬세하고 예민하다니까. 사실 해진씨 외모는 들어오는 역이 한정될 수 있거든. 그런데 똑같은 캐릭터면 정중히 사절할 줄도 알고. 주어진 것을 극복할 줄 아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아. 또 캐릭터를 만들 줄도 알고. 외모가 아니라 마음으로. 아, 마지막으로 제작자들께 부탁 하나. 해진씨가 출연했던 전작들의 코믹한 이미지만 도용하지 마시고, 그를 위한 기가 막힌 배역을 준비하는데 신경 좀 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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