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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유럽 몽상적 영상 <범죄의 요소>
2002-07-26

덴마크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장편 데뷔작 <범죄의 요소>(1984)가 내달 3일 동숭동 하이퍼텍 나다에서 개봉한다. 폰 트리에는 엄숙한 작가주의와 할리우드식 상업성을 모두 거부하는 ‘도그마 95’ 선언을 발표하고 <백치들><어둠속의 댄서> 등이 국제적 성공을 거두며 세계적 감독으로 자리잡았다.

<범죄의…>는 도그마 선언 이전, 빛과 색채·사운드 등 온갖 영화기술을 현란하게 사용하던 ‘화려한 테크니션’으로서의 초기 경향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수렌즈, 합성, 몽타주 등의 기술을 사용한 영상은 실험적이며 누아르의 냄새를 풍기면서도 몽환적이다. <유로파><전염병>과 함께 암울한 유럽사회를 그린 그의 ‘유럽 3부작’ 가운데 첫편이다.

관객들에게 최면을 걸듯 의사가 최면을 걸면, 지독한 두통에 시달리는 형사 피셔의 내레이션이 시작된다. 이집트에서 유럽으로 되돌아온 그는 “범죄의 요소란 범인의 행동방식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스승 오스본의 이론에 따라 연쇄살인을 해결하려 한다. 복권 파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질식사시킨 뒤 난자하고, 주검에 말부적을 남겨놓는 살인범의 용의자는 해리 그레이라는 인물. 자신의 이론을 부정하는 오스본은 해리가 이미 죽었다고 알려주지만 피셔는 믿지 않는다.

카메라는 해리의 행적을 추적하다가 그의 만성두통까지 물려받으며 서서히 해리가 되어가는 피셔의 모습을 어둡고 길게 좇는다. 인간의 범죄를 이론으로 풀 수 있다는 신념의 끝은 자기파멸적 상황이다. 온통 노란색 톤으로 비춰지는 영화속 공간은 그 절망감을 극대화한다. 영화 내내 “유럽”이라 불리는 그곳은, 축축히 젖어있고 금방이라도 시궁창의 물이 넘쳐흐를 듯 보인다. 그런 이미지만으로도 영화는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지닌 악몽처럼 짙은 인상을 남긴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