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을 모았던 영화 <죽어도 좋아>가 끝내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 지난 23일 1명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영화등급위원회의 영화등급분류소위원회(위원장 유수열) 회의에서 위원들은 18살 이상 관람가와 제한상영가를 놓고 4:4로 팽팽히 맞섰다. 결국 규정에 따라 위원장이 제한상영가쪽으로 표를 던져 이렇게 결론이 났다.
<죽어도 좋아>는 73살 할아버지와 71살 할머니의 실제 성생활을 담은 박진표 감독의 작품이다. 솔직히 직접 영화를 보기 전 선입견도 가졌다. 혹시나 노인들의 성생활이 상업적으로 이용된 것은 아닐까 하는. 하지만 기우였다. 대리석 욕조가 아니더라도 ‘고무 다라이’ 속에서 늘어진 가슴과 앙상한 등을 씻어주는 두 노인의 사랑은 어느 신혼부부 못지않게 살가웠다. 서로 질투하며 알콩달콩 다투는 모습이나, 기분이 들떠 국민체조를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 등 따뜻한 웃음을 잊지않는 작품이기도 했다.
유수열 위원장도 전화통화에서 “소외된 노인들의 삶을 다큐적으로 진지하게 접근한 점은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개별투표로 끝나던 평소와 달리 이날은 위원들이 함께 모여 열띤 토론도 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구강성교와 성기노출이 나오는 롱테이크 신은 18살 관람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작품에 대한 평가를 논외로 하더라도 제한상영가는 현실적으로 ‘상영불가’에 가까운 처분이다. 지난해 등급보류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후, 올 1월26일 발표된 영화진흥법 시행령에는 제한상영관 설치가 포함됐다. 문제는 제한상영관이 다른 일반 상영관과 한 건물에 들어설 수도 없고 일반 비디오 출시도 금지되기 때문에 아무도 ‘돈 안되는’ 이 일에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영화사는 극장에 걸기 위해 문제가 되는 장면을 스스로 가위질하거나 모자이크 처리해 재심의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제한상영관 문제가 영등위의 소관은 아니다. 다른 영화와의 형평성이나 “국민정서가 이를 받아들이겠냐”는 이들의 심정을 모를 바도 아니다. 하지만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포르노를 본 뒤의 야릇함이나 불쾌한 감정을 느낄 것 같진 않다. 더구나 헌재의 위헌판결 취지가 보다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라 할 때, 이번 판정은 아쉬운 점이 많다. 현재 영화사쪽은 재심의를 청구할 예정이며, 영화인회의 등 몇몇 단체도 강력히 대응할 태세다.
이번 심사 결과를 둘러싼 논란이 단관개봉하는 작품과 전국 몇백개 스크린에 걸리는 대중영화를 똑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지금의 심의기준이나, 족쇄만 많은 제한상영관 시행령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계기가 되길 영화인들은 기대하고 있다. 제작사쪽은 “결혼한지 얼마 안된 70대 부부의 사랑을 가감없이 전달되도록 하려 했다”면서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달라”고 말했다.
김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