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연(문학평론가)은 시쳇말로 ‘더럽게’ 유식하다. 성석제(소설가)가 동서문학상 탈 때니까 한 2년쯤 전인가, 시상식 뒤풀이 자리란 게 유쾌하면서도 초상집 못지않게 ‘모종의 깽판’을 반은 우려하고 반은 예상 혹은 기대하는 어설픈 긴장이 감돌게 마련이라서 농담 겸 아는 척 몇 마디 하려다가 문장 서너줄에 결정적인 ‘용어 부정확’을 세건이나 지적받고 난감하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하다.
그는 시대가 가난했던 시절 ‘행복과 영양’의 상징이었던 ‘원기소’ 혹은 ‘비락’ 모델로 나왔다는 소문을 입증하듯 지금도 얼굴이 ‘부유’하지만, 평론 문장 하나는 또래 평론가 중 단연 ‘다이어트’에 성공, 날씬하고 미끈해졌을 뿐 아니라, 학문이 깊고 시각이 날카로울수록 문장이 오히려 아름다워지는 경지를 바야흐로 이루고 있다 하겠는데, 약 3년 전 출간된 이 사전은 그 경지의 ‘더 찬란한’ 전야제(前夜祭)격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합리의 전통과 그것을 뒤집는 ‘포스트 모던’을 두 사상간 공간적 투쟁이 아니라 (탈)시간의 연속성으로 한데 아우르는 원저자들의 편집솜씨랄까 ‘서양적’ 여유는 분명 부럽고 놀랍지만 황종연의 ‘경지’는 ‘아우름의 솜씨’를 포괄의 ‘미학-총체’로까지 상승시킨다.
문학-예술이 장르끼리 살을 섞고 대중문화에 (대체로) 몸을 팔며, 인터넷 (가상)현실에 (대체로) 넋을 빼앗기는 21세기 세계자본주의 추세에서 비평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예술장르‘간’ 공통언어가 되어 장르들의 특성을 흡수-종합, 드높아진 자신의 ‘공통성’을 각 장르에 맞대는 방식으로 그것들을 자극 혹은 고양하는 것일 텐데 그 역할에 이 책만큼 적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경우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80년대 사회의 격동 이래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 여러 층위에서 여러 경우로 ‘연착륙’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 ‘현실주의적’인 연착륙 아닐 것인가. 이 모든 ‘썰’을 정작 황종연은 ‘너무 무거운 당신’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browser’가 아니라)‘browsing’용으로도 최적(조셉 칠더스-게리 헨치 엮음·황종연 옮김).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