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이라는 ‘생산연도’가 찍혀 있음에도, <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Inside-Out>이 여기 이 땅에 당당히 ‘신보’로 선전되는 건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바로 이 음반이 ‘라이선스’인 탓이다. 모던/인디 록을 주로 발매하는 알레스뮤직이, 미국 인디 레이블의 간판 중 하나인 마타도어와 계약을 맺고 최근에 국내 발매한 음반인 것이다. 이 음반의 주인공인 욜 라 텡고(Yo La Tengo)는 1984년 뉴저지에서 결성된 삼인조 베테랑 밴드로, 미국 인디 록의 대표급 선수다.
<And Then…>은 1997년에 나온 <I Can Hear The Heart Beating As One>과 더불어 욜 라 텡고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그래서인지 두 음반이 함께 라이선스, 그것도 보너스 음반을 포함한 딜럭스 에디션으로 나왔다).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명성 높은 음반이기에 ‘신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돋보일 수 있을까 걱정이 들지만, 국내에선 제대로 접하기 힘든 트랙을 담은 보너스 디스크에다가 ‘원판’에 비해 훨씬 유려한 아트워크로 나름대로 튼실한 장점을 갖춘 듯하다.
<And Then…>의 전체를 비교적 일관되게 관통하는 화두는 ‘정적인 고요함’이다. 전작인 에서 흥겨우면서도 귀가 멍멍할 정도로 격한 노이즈 록을 구사했던 욜 라 텡고는, 이 음반에 와서는 상당 부분 절제된 음악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고요함의 미학은 수록곡마다 각각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Everyday>에서는 괴괴한 음산함이, <Our Way To Fall>에는 신비로움이, <Saturday>에는 명상과 침잠의 표정이 자리잡고 있다. 듣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The Crying Of Lot G>와 <Tears Are In Your Eyes>의 감동은, 적막함의 아우라를 미묘한 감정의 진폭 안으로 사려깊게 끌어당기는 욜 라 텡고의 탁월한 재능 때문에 맛볼 수 있는 것이리라. 물론 이 음반엔 ‘명상곡’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Let’s Save Tony Olando’s House>의 기계적인 비트로부터 ‘그루브’를 느낄 수 있으며, <You Can Have It All>은 어딘지 ‘회고적인’ 정서가 묻어나는 코러스가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17분을 넘기는 <Night Falls On Hoboken>은 곡 중반부터 욜 라 텡고 특유의 노이즈 사운드가 배어나기 시작하는 트랙이다.
이렇듯 몇몇 예외는 있지만 욜 라 텡고가 일관성 있게 추구한 정적과 고요의 뉘앙스는, 필연적으로 ‘밤’을 떠올리게 한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전원주택의 밤 풍경(물론 오른쪽 하단의 ‘불길한’ 이미지는 무심히 봐넘기기 힘들지만)을 담은 이 음반의 재킷은 음악의 분위기와 더없이 어울린다. 늦은 밤 홀로 텅 빈 공간에서 조명을 어둡게 한 뒤 듣거나, 컴컴한 새벽 인적 드문 교외를 드라이브하며(속도를 무리하게 높이지 않도록 한다) 이 음반을 튼다면, 최상의 느낌을 부여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욜 라 텡고가 나긋나긋 상냥한 ‘무드음악단’이라고 오해하지 말기를.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들의 경력에서도 어림짐작할 수 있듯, 욜 라 텡고의 음악 스펙트럼은 무척 광활하다. <And Then…>은 욜 라 텡고의 중독성 깊은 빼어난 음악세계에 몸을 담그기 위한 ‘오리엔테이션’의 기능을 완벽하게 충족시킨다. 짜증나는 장마와 이어질 불볕더위를 우아하게 잊게 해주는, 기분 좋은 서늘함이 어린 음반.(알레스뮤직 발매)오공훈/ 대중음악웹진 <weiv> 편집위원 aura508@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