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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르누아르 회고전 상영작 17편 프리뷰(1)
2002-07-19

오슨웰스가 `무인도에 가져갈` 영화들

<나나> Nana, 1926년, 120분, 흑백 / 출연 카트린 에슬링, 베르너 크라우스

르누아르 자신이

자기 영화들 가운데에서 최초로 논의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말한 <나나>는 저명한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다. 르누아르가

이 영화를 만들면서 특히 영향받은 것은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의 <어리석은 부인들>(1921)이었다고 한다. 한 극장의 간판 여배우와 그녀를

둘러싼 상류사회 남자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나나 역을 맡은 것은 당시 르누아르의 부인이었던 카트린 에슬링이고,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20)에서 칼리가리 박사를 연기한 베르너 크라우스가 무파 백작 역을 맡았다. 노엘 버치는 이 영화를 특히 높이 평가한 비평가였는데,

여기서 그는 오프 스크린의 구조적 사용을 지적해냈다.

<암캐> La Chienne, 1931년, 100분, 흑백 / 출연 미셸 시몽, 자니 마레즈

혼자서 그림 그리는 것을 빼고는 낙이라고 할 게 없는 지극히 건조한 인생을 살고 있는 중년의 회사원 모리스 르그랑, 어느 날 그의 눈에 들어온 젊은 여인 룰루, 그리고 룰루의 사랑을 받지만 그녀를 ‘착취’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건달 데데, 이 세 사람의 꼬인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그려가는 영화. 르누아르 자신은 이 영화에서 그가 이른바 ‘시적 리얼리즘’이라는 스타일에 근접했다고 말한다. 실제의 장소를 촬영한 것이나 현장음을 담아 시각적으로만이 아니라 청각적으로도 리얼리즘의 감각을 제공한다. 인형극의 막을 열면서 영화를 시작하고 또 인형극의 막을 닫으면서 영화를 끝맺는 프레이밍 장치도 눈여겨볼 만하다.

<보봐리 부인> Madame Bovary, 1933년, 120분, 흑백

-------------출연 발랑틴

테시에, 피에르 르누아르

프랑스의 저명한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시골 소녀 엠마 루오는 최근 상처(喪妻)한 의사 샤를르 보봐리와 결혼한다. 그렇다고 그녀가 샤를르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샤를르가 평범한 지방 의사로 비교적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데 반해 엠마는 무언가 더 나은 것을 갈망하고 있다. 남편이 발수술을 엉망으로 망쳐버린 뒤 엠마는 남편에 대한 존경심을 모두 잃고 부자 바람둥이 로돌프와 외도를 시작한다. 공개 당시 흥행에는 실패한 작품. <보봐리 부인>에 대해 에릭 로메르는 이 영화에서 르누아르가 소설의 대사와 장면을 잘 살려내면서도 플로베르의 수려한 필체에 위협당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잘 지켜냈다고 썼다. 엠마 역을 맡은 발랑틴 테시에의 훌륭한 연기가 빛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샤를르를 연기한 피에르 르누아르는 실제로 장 르누아르와 형제 사이이다.

<토니> Toni, 1934년, 85분, 흑백 / 출연 샤를

블라베트, 제니 엘리야

프랑스 국경 근처 마을에 온 이탈리아 출신 노동자 토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랑과 질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토니는 어느 날 조세파라는 여성과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조세파는 공장의 작업 감독 알베르의 유혹에 넘어가 그와 결혼한다. 그래도 여전히 토니가 조세파에게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마리는 질투의 감정에 휩싸인다. 프로방스 지역에서 비전문 배우를 기용해 촬영한 <토니>는 10년 정도 앞서 네오리얼리즘을 예견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영화평론가 리처드 라우드는 이 영화의 외적인 리얼리즘이 심리적, 사회적, 극적 리얼리즘에 의해 보완되기에 <토니>가 훌륭한 영화라고 말한다.

<랑주씨의 범죄> Le Crime de Monsieur Lange, 1936년,

85분, 흑백

---------------출연

르네 르페브르, 쥘 베리

거의 파산할 위기를 맞은 소규모 출판사의 사장 바탈라가 회사의 돈을 갖고 사라지자, 이 회사의 직원인 랑주는 다른 직원들과 함께 회사를 공동으로 운영한다. 이제 회사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갈 무렵, 바탈라가 갑자기 나타나 출판사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결국 랑주는 이 문제를 원만히 처리하기 위해서는 바탈라를 처리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장 르누아르의 30년대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랑주씨의 범죄>는 인민전선의 대의에 대해 그가 공감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영화다. 여기서 르누아르는 평범한 노동자들이 연대를 통해 파시즘의 폭정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르누아르의 이 걸작은 그런 정치적 메시지만을 전파하는 프로파간다에 그치지 않는다. 자크 프레베르의 위트 넘치는 대사와 유려하게 흘러가는 롱테이크 같은 것들이 서로 협화음을 이뤄 <랑주씨의 범죄>는 세대를 초월해서도 살아 있는 예술로 남아 있다.

<라 마르세예즈> La Marsellaise, 1937년, 135분,

흑백

프랑스 혁명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라 마르세예즈>는 인민전선의 입장에 동조해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에 대해 특기할 만한 것들

중 하나는 공적 기부의 방식으로 제작비를 마련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방식이 충분히 제작비를 끌어모으지 못하자 보통의 관습적인

방식으로 제작비를 모았다. 전체적으로는 혁명의 대의에 공감하는 영화이지만 그 반대편에 해당하는 인물들, 즉 왕이나 귀족들에게도 인간의 성격을

불어넣은 것이 과연 르누아르답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라 마르세예즈>가 마침내 프랑스 혁명에 대해 제대로 된

몽타주를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거대한 환상> La Grande illusion, 1937년, 113분, 흑백

실제로 1차대전에 참전해 부상을 입은 경험이 있었던 장 르누아르가 만든 전쟁영화. 1차대전 무렵, 프랑스 공군의 장교 부알디외와 마레샬은 그만 자신들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독일군 포로로 잡히고 만다. 영화는 그들의 수용소 생활과 탈출 기도를 그려나간다. <거대한 환상>은 전쟁이 한창일 무렵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적군과 아군말고도 여전히 사람들을 갈라놓는 여러 경계선에 대해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해 오슨 웰스는 “만약 내가 무인도에 꼭 한편의 영화만 가져가야 한다면 그건 <거대한 환상>일 것이다”라며 말했다. 한편 나치의 괴펠스 같은 이는 이 반전영화를 “영화 공적(公敵) 1호”라며 비난을 퍼부은 적이 있었다.

<인간야수> La B te humaine, 1938년, 105분, 흑백

에밀 졸라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주연을 맡은 장 가뱅이나 르누아르나 무엇보다도 기차를 다뤄보고 싶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장 가뱅이 연기하는 자크 랑티에는 기관사이다. 부역장인 루보는 자신의 젊은 아내 세브린느가 그녀의 대부인 그랑모랭과 통정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기차 안에서 그랑모랭을 살해한다. 이때 랑티에는 우연히도 같은 기차에 있었다. 그렇게 랑티에는 세브린느를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남편으로부터 폭행당하던 세브린느는 랑티에에게 남편을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광포한 속도로 질주하는 기차장면들이 특히 인상적인 이 영화는 랑티에-세브린느-루보로 연결되는 운명의 사슬을 어둡지만 시적인 터치로 그렸다. 뒤에 프리츠 랑이 <인간의 욕망>(Human Desire, 1954)이란 제목으로 리메이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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