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괴짜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60)는 지난 79년 자기가 신고 다니던 구두를 요리해 먹었다. 로즈메리와 마늘을 듬뿍 넣어 오리기름에 끓인 구두 한 쪽을 먹어치운 사연은 레스 블랭크의 다큐멘터리 <헤어조크, 구두를 먹다>(1979)에 잘 담겨 있다. 블랭크(67) 감독은 <…구두…>와 <버든 오브 드림스>(1982) 등 헤어조크에 관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들고 지난 11일 개막한 제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왔다. <…구두…>는 헤어조크가 친구인 에롤 모리스에게 영화를 만들 용기를 주기 위해 필름을 완성하면 구두를 먹겠다고 호언한 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실제 구두를 요리해 먹는 과정을 찍은 작품이다. <버든…>은 아마존강가 밀림에 오페라 하우스를 세우려는 집념과 광기의 사나이에 관한 영화인 <피츠카랄도>의 제작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버든…>은 헤어조크가 영화 속 주인공 못지 않은 광기와 집념으로 이 영화를 만들어냈음을 보여준다. - 헤어조크와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됐나.1975년 엘에이의 퍼시픽 필름 아카이브즈에서 내가 만든 텍사스 블루스 음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상영했는데, 그 때 헤어조크는 <카스파르 하우저의 수수께끼>란 작품을 들고 왔다. 그 때 처음 만난 이후 각종 영화제에서 자주 만나면서 자연스레 친구가 됐다. - <버든 오브 드림스>는 어떻게 찍게 됐나. 그가 <피츠카랄도>란 영화의 제작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찍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해왔다. 그 전부터 그 사람 자체가 재미있는 영화거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막상 <피츠카랄도>의 시나리오를 받아보니 그건 정말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츠카랄도>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그가 에릴과 약속한 구두를 먹기 위해 버클리에 왔다. 그래서 그걸 먼저 찍었다. - 헤어조크는 어떤 인물이라고 느꼈나.짐작하겠지만 매우 강한 사람이다. 추진력이 남다르고 에너지를 집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지금도 한 해에 두세 편의 오페라를 연출하고, 두세 편의 다큐멘터리와 한 편 정도의 극영화를 만든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친절하고 관대하며 참을성이 강하다. 한번도 성질을 내는 걸 본 적이 없다. (다큐멘터리 찍을 때) 함께 일하기가 참 편한 사람이었다. 내 지시에 잘 따랐고 유머감각도 있고 카메라도 잘 받았다. - 당신에게 다큐멘터리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논픽션은 우리 눈을 뜨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겉보기와 다른 이면, 불투명한 현실을 뚫고 들어가 진상을 보여주는 게 다큐멘터리의 힘이다. 우리가 세상을 볼 수 있고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헤어조크 회고전은 영화제가 끝난 뒤 20∼25일 서울아트시네마(02-720-9782, 아트선재센터 지하1층)로 장소를 옮겨 한번 더 되풀이된다. 부천/글·사진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