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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풍 영화에 ‘옥에 티’ 를 찾아라
2002-07-16

<친구> 열풍 이후 80년을 전후한 복고풍 영화가 유행하자 이른바 `옥에 티' 시비가 잦아지면서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구한 말 이전을 배경으로 한 사극은 역사학자 사이에서나 고증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말지만 가까운 과거를 담은 영화는 꼼꼼하고 총기 있는 관객들의 눈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편 「81,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를 중-고교 교복제도가 없어진 84년에 맞춰 장편으로 버전 업한 <해적, 디스코왕되다>에는 큰형님 역의 이대근이 빨대를 4홉들이 서울우유 병에 들이대고 우유를 마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나 서울우유의 용기는 79년에 이미 병에서 종이 팩으로 바뀌었다. 이 영화에는 요즘 유행하는 현대적 소품도 등장해 네티즌들의 따가운 지적을 받았다. 주인공 해적(이정진)이나 룸살롱 야시의 웨이터들이 디스코를 연습하기 위해 녹음기에 넣는 음악 테이프는 지난해 출시된 이미연의 「연가」. 봉자(한채영)가 야시 앞에서 비를 흠뻑 맞은 채 떨고 있는 장면에서는 운동화의 `All★Star' 상표가 비친다.

비운의 복서 김득구의 일대기를 담은 <챔피언>에서도 잘못된 고증이 눈에 띈다. 남산공원길에서 로드워크를 하던 김득구 역의 유오성이 버스에 탄 채민서를 발견하고 달리기 경주를 하는 장면에서는 83번 진화운수 버스가 등장한다. 그러나 81년 당시에는 남산교통이 이 노선을 운행하고 있었다. 그 뒤 남산교통은 신진운수에 흡수 합병됐다가 신진운수마저 2000년 4월 진화운수로 넘어갔다. 현재는 83번 진화운수 버스가 수서에서 남산길을 거쳐 광화문을 운행하는데, 기점과 종점은 말죽거리에서 광화문으로 20년 전에 맞게 교체했지만 운수회사의 이름까지 바로잡지는 못했다. 곽경택 감독이 이 때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살았던 탓일까.

옴니버스 영화 <묻지마 패밀리>의 첫번째 단편 `내 나이키'도 `시대 고증'에 강한 관객의 예리한 눈초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이키를 좋아하는 주인공 역의 류덕환이 칼 루이스가 나이키를 신고 뛰어 금메달을 땄다는 대사를 읊는데 칼 루이스가 처음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은 1984년 여름. 그러나 시대 배경은 검은 색 교복이 없어지기 전이고 영화 기획안에도 나이키가 국내에 들어와(81년) 청소년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른 80년대 초반으로 적혀 있다.

이러한 `옥에 티'는 단순한 부주의에서 비롯된 `애교섞인 실수' 수준이 대부분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잘못된 줄 알면서도 복고적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시대배경과 다소 차이가 나는 소품이나 의상을 일부러 쓰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려 몰입을 방해한다는 따끔한 지적이 우세해 제작진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소품담당은 50년 전 배경의 영화보다 10년이나 20년 전 영화가 훨씬 어렵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