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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종합촬영소였던 안양촬영소 건립 당시를 회상하다
2002-07-10

˝김동호씨 말이, 내가 빠진 행사는 왠지 허전하다더구만˝

얼마 전, 홍찬(안양촬영소 초대 사장)씨의 셋째아들에게서 연락이 왔어. 오는 8월쯤 LA에서 아버님을 기리는 행사를 개최하고 싶은데, 사진전을 열 수 있겠냐고 묻더라구. 이미 예전부터 홍찬 사장과 안양촬영소를 기념하는 사진전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두말할 것 없이 오케이했지. 사진전뿐만 아니라 홍찬씨의 기념관 건립건도 현재 안양시와 교섭중이야.

나의 첫 직장이기도 하지만, 안양촬영소는 한국 최초의 종합촬영소임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그 역사적 의의가 크게 과소평가돼왔어. 한국영화계의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장소가 지금은 그 기억조차 희미한 아파트촌이 돼버린 것에 대해 아무도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씁쓸할 뿐야. 당시로선 첨단기술과 자본을 집약한 한국영화의 산실이었지만, 오래 가지 못했어. 많은 영화인들의 무관심도 한몫한 거지. 그래서 더욱 사죄하는 기분으로 안양촬영소를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해. 홍찬씨 관련 기념전시회뿐 아니라 9월에는 영상자료원에서 박구 감독의 작품회고전이 열리는 데, 함께 사진전을 가질 예정이야.

안양촬영소는 각각 400평과 500평 규모의 스테이지 두개와 풀장을 겸한 수중촬영장, 식당, 보일러실, 온실, 다방, 본관, 세트 건조실, 현상소를 갖춘 대규모 촬영소였어. 촬영소 개관 및 제1스테이지 상량식날 군대에 있던 난, 제대하고 난 뒤 미국에 있던 홍찬씨 가족들로부터 사진을 입수해 지금껏 보관하는 중이야. 당시 촬영소 전체를 조망한 사진은 유일하게 내가 가진 게 전부야. 서울신문사에서 헬기로 촬영한 공중 조감도도 어렵게 구해서 가지고 있어. 현장에도 있지 않았던 내가 제1스테이지 상량식 사진을 챙긴 것도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지. 이 박사(이승만 대통령)까지 참석한 당시의 상량식은 국내 굴지의 배우와 제작자, 감독들이 동참하여 성대하게 치러졌어. 제대한 뒤에 열린 제2스테이지 상량식엔 직접 참석하여, 행사의 면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어. 이후 안양촬영소는 일종의 문화명소로서 많은 내외빈을 맞이하는 장소가 됐지. 61년에 이탈리아 영화인 모임에서 선진 장비를 갖춘 한국의 촬영장을 시찰하기 위해 안양을 방문했던 일이 기억나는군. 그때 왔던 이탈리아 감독은 이름은 뚜렷하게 생각나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임권택 감독처럼 자국에서 사랑받는 유명한 감독이었어. 2년 전인 2000년 4월, 이탈리아영화제에서 사진전을 개최할 때 그가 메시지를 보내왔을 땐 깜짝 놀랐지. 무려 40년 전의 일들을 기억해내고, 당시 사진을 찍어줬던 나에게 연락을 준 거야. “지금은 비록 몸이 아파 참석은 못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사진전 개최를 축하한다”는 짤막한 메모 한장이었지만, 감회가 남달랐지. 10년 전, 92년 고희를 기념하여 영상자료원에다 자비를 들여 사진전을 치를 때, 지금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인 김동호씨(당시 문공부 차관)가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는데, 그이가 축하인사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어. “백영호가 빠진 행사는 왠지 이가 빠진 듯 허전하다”고. 어디든 영화에 관련된 행사라면, 불철주야 달려가던 나를 치하하고 위로하는 말이었겠지만, 그것처럼 정확한 표현도 없을 거야. 맞아, 난 그런 사람이었고, 스스로 그렇게 되길 원했어. 내가 없으면 왠지 허전함을 느낄 정도로 역사의 현장마다 카메라를 들고 등장하는 인물이길 바랐지.

안양촬영소가 불안하다는 소리가 들리면서 하나둘씩 직장을 떠났어. 나 역시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충무로로 나왔지. 그때 같이 나와서 동업을 했던 인물이, 안양촬영소 부소장이었던 박구 감독이었어. 그이가 영화 <물망초>(1960, 김승호·도금봉 주연)를 찍는다며 같이 일하자고 손을 내밀었지.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그뒤 <조강지처>(1963, 김희갑·주증녀 주연), <백설공주>(1964, 김지미 주연), <도심의 향가>(1964, 조미령·황해 주연), <피와 살>(1965), <자식들>(1966, 김승호·김지미 주연), <여대생과 노신사>(1967, 김승호·남정임 주연), <못다한 사랑>(1968, 김진규·남정임 주연) 등 13편의 영화를 연달아 같이 찍게 돼. 그이의 아들이 자라서 지금은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일하고 있는 걸 보니 흐뭇한 맘이 앞서더군. 다다음달인 9월23일부터 27일까지 영상자료원에서 13편의 박구 감독의 작품 스틸을 전시하자는 것도 그 아들의 발상이야. 나야 뭐든 도와주고 싶은 심정이지. 그이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내 신조가 이거야. 이 세상에서 온전히 내 힘만으로 되는 일은 없으니까 내 힘의 반을 남에게 주자. 그리고 그의 힘을 반만 빌리자. 그렇게 살아온 게 내 인생 전부야. 내 힘만으론 여기까지 못 왔어. 남의 힘을 빌렸기에 가능했던 일들이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특히 젊은이들에게도 말해주고 싶어. 나의 힘을 나눠주는 데 인색하지 말고, 아낌없이 주고, 아낌없이 받으라고…. 그래야 불가능한 일도 가능해진다고.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 이젠 세상에 남아 있지 않을지라도, 그들로 인해 가능했던 내 인생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그들을 기억하는 일이 당연하지.

구술 백영호/ 스틸작가·54년간 영화현장 사진에 몸담음·<유관순> <생명> <임꺽정> <만다라> <바보사냥> <바보선언> <아다다> 등 100여작품 5만여컷의 스틸작업정리 심지현 simssisi@dreamx.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