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기호(최민식) 주변에는 만년필과 낡은 회중시계, 오란다 과자, 셜록 홈스 전집이 있다. 하나같이 오래됐지만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반면 젊은 CEO 선우(한소희) 주변엔 새로운 것들만 가득하다. 그가 이끄는 패션브랜드 ‘WOO22’(우투투)는 100억원 매출을 달성했지만 3년밖에 되지 않았다. 배송 문제, 모델과의 대립 등 매일 새로운 문제가 펼쳐진다.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우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이 등장한다. 세금 혜택을 위해서 부대표 영환(김준한)이 실버 인턴으로 기호를 뽑아 선우의 전속으로 배치한 것. 3개월만 고용할 인턴이 너무 열심이라 선우는 그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이를테면 기호는 아직 어두운 사무실에 제일 먼저 출근해 선우를 깜짝 놀라게 한다. “쫄따구가 일찍 일찍 다녀야죠”라고 말하는 머리카락 희끗한 인턴이 선우는 “진짜 불편하다”.
김도영 감독의 <인턴>은 동명의 할리우드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로버트 드니로와 앤 해서웨이가 맡았던 실버 인턴과 젊은 여성 CEO는 한국의 최민식, 한소희라는 신선한 조합으로 재탄생했다. <인턴> 속 배우 최민식의 연기는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드니로를 잊게 만든다. 단순히 최민식이 더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다는 뜻이 아니다. 두 배우가 표현하는 캐릭터의 결이 많이 다르다는 의미다. 로버트 드니로의 벤이 70대임에도 여전한 성적 매력으로 뭇 여성들의 관심을 받고 부끄러운 듯 어색하게 미소 짓는다면, 최민식의 기호에겐 그런 코드가 전혀 없다. 때 로버트 드니로는 이미 70대였지만, 지금 최민식의 나이는 60대로 더 젊어서일까. 아내와 사별한 지 오래되지 않은 듯 은근한 슬픔이 묻어 있다. 기호는 혼자라 쓸쓸하고 슬프지만,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고 조용히, 그리고 부단히 애쓴다.
할리우드 서사를 한국화하면서 변한 부분은 또 있다. 어린 딸을 키우는 줄스 부부가 돌봄 공백이 생기지 않게 노력하느라 부부관계가 소원하다면, 선우 부부에겐 자녀가 없다는 점이다. 선우는 우투투를 경영하느라, 남편 민욱(강태오)은 전임교수 임용을 준비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쓰느라 서로를 바라보지 못한다. 연애와 결혼, 출산 자체가 10년 전 원작 영화가 나왔을 때와 판이해졌으므로 이는 자연스러운 각색으로 다가온다. 원작에 없는 모델 루다(한지은)와 부대표 영환의 서사가 추가되면서 선우의 고민은 여러 겹으로 두터워졌다.
다만, 로케이션이 회사, 집, 출장지 등으로 다소 한정적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김도영 감독은 배우 출신으로 로케이션이나 미장센, 카메라 운용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방식보다 배우들의 연기를 더 믿는 듯 보인다. 그는 배우 최민식, 한소희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면서 찬찬히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관객을 이해시키려 한다. 사회의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존재로서 느끼는 고독, 성공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관계들이 무너져가는 걸 목격하는 자의 허탈감 등 복합적인 감정이 배우들의 얼굴에 스치는 순간을 담아내면서. 이런 감독의 선택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지만 참신한 재해석을 기대한 관객에겐 <인턴>은 다소 익숙한 흐름으로 다가올 것이다.
CLOSE-UP
배우 최민식이 피트 닥터 감독의 애니메이션영화 <업>에 버금가는 오프닝 시퀀스를 완성했다. 그가 홀로 떠맡는 오프닝 시퀀스는 37년간 출판사에서 일하고 은퇴한, 아내와 사별한 기호를 효과적으로 소개하면서 관객이 감정적으로 캐릭터와 강하게 연결시킨다. 내레이션과 무언극에 가까운 몸짓으로. 젊은 시절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바쁘게 지냈지만,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은퇴하여 혼자가 된 이가 느끼는 공허함을 최민식은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게 전달한다. 절창은 오프닝 시퀀스의 마지막이다. 꽃병을 내려놓고 아내 사진을 바라보며 “여보 잘 안된다, 아직도 서툴러”라고 할 때 눈물이 맺힌 그의 미소는 <올드보이> 속 오대수의 마지막 클로즈업만큼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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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인턴>은 김도영 감독의 작품보다 약 10년 앞서 만들어졌다. 김도영 감독이 AI를 잘못 활용해 일터에서 벌어지는 실수를 서사에 활용했다면, 마이어스 감독은 SNS와 이메일 등을 비슷한 방식으로 쓴다. 줄곧 줄스(앤 해서웨이)를 돕던 벤(로버트 드니로)은 페이스북 계정을 개설할 때 줄스의 도움을 받는다. 로버트 드니로가 페이스북을 여는 장면이라니. 당시 관객에겐 현실과 밀착된 재밌는 장면으로 다가왔으리라 짐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