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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굿 닥터> 출연한 한국계 미국 배우 윌 윤 리 스토리
김성훈 2026-08-20

샌드라 오, 대니얼 대 킴, 양자경…그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촉발된 시위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인종의 다양성은 미국 사회의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존 조, 샌드라 오, 켄 정 등 아시아계 할리우드 배우들이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가운데, 배우 윌 윤 리또한 자신의 SNS를 통해 동참했다.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두렵다. 가끔은 이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것을 언젠가 내 아들에게 설명해야 돼.” 미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윌 윤 리라는 이름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는 존 조, 대니얼 대 킴, 샌드라 오같이 누구나다 아는 스타배우는 아니지만 얼굴을 보면 누구나 익숙하게 느낄 정도로 뚜렷한 존재감을 가진 한국계 미국 배우다. 윌 윤 리는 <하와이 파이브-오>, 넷플릭스 오리지널 <얼터드 카본> 등 여러 드라마와 <토탈 리콜> <더 울버린> <스파이> <램페이지> 등 다양한 할리우드영화에 출연했다. 오랫동안 할리우드에서 액션배우로 활동하던 그는 <ABC>의 간판 드라마 <굿 닥터>에서 의사 알렉스 박을 맡아 연기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굿 닥터> 시즌3가 종영되자마자 서너 차례 진행된 서면 인터뷰와 화상통화를 통해 그의 연기 인생에 대해 들었다.

“몇살입니까.”(숀 머피) “45살.” (알렉스 박) “멜렌데스 선생님보다 많습니다.” (숀 머피) “난 대기만성형이야.” (알렉스 박) “겸손 떠는 거야. 경찰 생활을 15년 동안 하다가 뒤늦게 의대에 진학해서 그래.”(레즈닉) 인기 미국 드라마 <굿 닥터> 시즌1 15화에서 새레지던트인 알렉스 박이 처음 등장하자 주인공 숀 머피(프레디 하이모어)와 그의 동료 레지던트가 알렉스 박에게 나이를 확인한다. 40대 중반의 늦깎이 레지던트가 병원에 합류해 동료 레지던트들과 인사를 나누는 평범한 장면이지만,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배우 윌 윤 리에게는 매우 특별한 순간이다.

힘깨나 쓸 것 같은 체격의 소유자인 윌 윤 리가 전투복이나 운동복이 아닌 의사 가운을 입은 건 처음이다. 오래전부터 아시아계 배우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이 한정된 할리 우드에서 악당이나 형사를 주로 맡아 액션 연기를 해온 그가, 의사라는 평범한 역할을 연기하기까지 무려 20년 가까이 걸렸다. 존 조, 대니얼 대 킴, 샌드라 오 같은 할리우 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배우들이 그렇듯이 강산이 두번이나 바뀌고 나서야 다른 배우들과 비슷한 기회가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윌 윤 리 또한 최근 할리우드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체감하고 있다. “시대는 천천히, 더욱 좋게 변화하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이렇게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주인공들을 TV(드라마 <굿 닥터>)에서 본적이 없었을 것이다. 이 변화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에서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첫 ‘예스’를 위한 수백개의 ‘노’

얼터드 카본

<굿 닥터>를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윌 윤 리는 아무래도 낯선 이름일 수밖에 없다. 미국 밖 관객에게 그는 존 조나 샌드라 오처럼 이름을 들으면 곧바로 얼굴을 떠올릴 수있는 톱스타는 아니다. 할리우드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는 대체로 악당이나 형사로 나왔다. 1997년 데뷔해 <프로파일러> <브림스톤> <내시브리지스> <위치블레이드> 등 여러 TV시리즈에 출연하다 ‘007 시리즈’ 20번째 영화인 <007 어나더 데이>에서 북한군 문 대령(차인표가 연기할 뻔했다)을, <엘렉트라>에서 악의 집단을 이끄는 키리기를 각각 연기해 얼굴을 널리 알렸다. 이후 게임을 영화화한 <킹 오브 파이터>에서 야가미 이오리를, TV시리즈 <하와이 파이브-오>에서 한국계 상민 역을 맡았다. “당시 할리우드 제작자나 감독들이 어떤 배우를 찾았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본 대부분의 오디 션에서는 무술을 할 줄 아는 악역을 원했던 것 같다. 하하.” 어린 시절 갈고닦은 태권 도와 운동이 그가 배역을 따내고, 영화계에서 오랫동안 버티는 데 도움이 된 셈이다.

1971년 미국 버지니아에서 태어난 윌 윤 리는 3살 때부터 태권 소년이었다. 태권도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게 그의 꿈이었다. 그건 태권도 사범으로 유명한 아버지(이수웅)에게서 받은 영향 때문이다. “아버지는 나의 사부였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싸우라고 가르쳐주었지만, 그보다 아버지가 알려준 대부분은 친절에 관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나 역시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다”는 게 그의 회상이다. 그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에 진학해 정치학을 전공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선 로스쿨에 진학하는 게 빠른 길이지만 그럼에도 정치학을 공부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 정치학은 나를 둥글게 만들었고, 지금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하는 데좋은 토대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아버지의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며 안정적인 삶을 선택했다. 영화 <드래곤>(감독 롭 코언, 1993)에서 이소룡을 연기한 배우 제이슨 스콧 리에 매료돼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기 전까지 말이다. “스크린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이 영웅으로 나오는 광경”은 “무척 감동적”이었다. “나도 제이슨 스콧 리처럼 할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배우라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엔 나이가 많았고, 주변 사람들 모두 반대했다. 내가 의사가 되길 원하셨던 부모님 또한 내 결정을 반기지 않았다. 태권도를 처음 배울 때 아버지가 격파를 하지 못하게 한 것도 내가 외과의사가 되길 바라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내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고, 반대로 어머니는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진짜 직업을 가지라고 충고하셨다.” 배우라는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한 결정은 그를 기회의 땅인 LA 로 이끌었다. 그는 몇천달러와 옷 몇벌만 챙긴 채 친구의 아파트에 얹혀살았다. 처음 몇달간은 매일 밤 11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 까지 은행에서 야간 근무를 하고 동네 체육관에서 개인 태권도 수업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러면서 틈틈이 오디션을 보았다. 지금보다 소수인종에게 벽이 훨씬 높았던 할리우드에서 오디션은 이력이 전무한 그에게 “결코 쉽지 않았” 다. “첫 ‘예스’에 도달하기 위해 수백개의 ‘노’를 거쳐야 했다.” 기회를 따내기조차 힘들 었지만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한순간도 없었다”고 한다.

오디션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음에도 그가 할리우드에서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태권도였다. “태권도를 배우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일을 처음 시작한 1998년 당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던 한국계 배우는 존 조, 대니얼 대 킴, 성 강 정도였고, 1년에 아시아계 배우들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은 5개가 될까 말까였으니까. 오디 션을 보지 않는 날에는 태권도 도장에서 거의 살다시피했고, 대련을 많이 하면서 누구도 나를 케이오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디션은 그에 비하면 훨씬 쉬웠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부모님을 잘 모시고, 웨이터 같은 일은 하지 않겠다 등 목표 몇 가지를 세웠고, 배우 말고 다른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퇴로를 만들지 않고 오로지 배역을 따내는 일에 집중한 것이다. “저금통을 털어 하루에 부리토 하나 먹을 만큼 가난”했 지만 당시의 경험은 당시 23살이었던 그가 살면서 “처음으로 느낀 자유”였다.

액션배우에게 찾아온 전환점

007 어나더 데이

배우로서 그의 이름을 알린 작품은 <007 어나더 데이>와 <엘렉트라>다. 두 영화에서 모두 악역을 맡았지만 <프로파일러> <위치블레이드> 등 TV시리즈를 중심으로 간간이 출연하던 그로선 얼굴을 알릴 흔치 않은 기회였다. “그때 출연한 장르영화들은 내가 배우로서 경력을 쌓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 당시에도 돈은 거의 벌지 못했지만 배우 로서 꿈을 추구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이 되었다.” 그렇게 얼굴을 꾸준하게 내비쳤지만 아시아계 액션배우인 그가 보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던 팃에 악당 아니면 형사 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액션배우로 소비되던 그에게 <굿 닥터>의 의사 알렉스 박은 배우로서 전환점이 됐다. 알렉스 박은 경찰 출신인 늦깎이 레지던트다. 그가 알렉스 박에 끌린 이유는 “평범해서”다. “알렉스 박은 강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세상을 차지하려는 ‘빌런’을 주로 연기했던 전작과 달리 알렉스 박은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의사였다. 부모님은 내가 의사가 되기를 원하셨는데 현실에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알렉스 박을 연기하는 것이 부모님에게 차선책이었다. 부모님은 그들의 친구들에게 내가 TV에서 의사라고 얘기하신다. (웃음)”

알렉스 박의 아내, 아들을 다룬 에피소드를 살펴보면 윌 윤 리의 삶과 가족관계가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촬영 전 알렉스 박을 연기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할 필요가 없었던 것도 그래 서다. “아들이 3살 때 많이 아팠다. 아내와 나는 2년 동안 병원에서 살다시피했다. 일주일 중 월·화·수요일은 뉴욕과 토론토를 오가며 일을 했고, 수요일 밤에 비행기를 타고 LA로 돌아와 목· 금·토·일요일 나흘 동안 병원에서 아이를 돌보았다. 아주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고, 6개월 이상 매일 울었다. 물론 아이는 지금 무척 건강하게 잘 지낸다.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 간호사의 현실적인 삶에 눈뜰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알렉스 박이 되기 위해 준비를 많이 할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알렉스 박은 윌 윤 리가 이제껏 연기한 캐릭터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 이라 할 만하다.

공중을 날아다니고, 감정보다 액션이 먼저였던 액션스타 윌 윤 리를 과감하게 병원으로 끌어들인 건 최근 할리우드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지만 그보 다는 이 드라마의 제작자가 한국인(이동훈 엔터미디어 콘텐츠 대표)과 한국계 배우(대니얼 대 킴)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맞다.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주인공 그룹에 포함되는 데 그들이 큰 역할을 했다. 부모님은 내가 한국 뿌리를 가지고 드라마에서 연기한다는 사실에 대해 무척 좋아하신다.” 여느 한국계 배우들이 그렇듯이 그 또한 아시아계 배우로서 할리우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민이 많다. “아시아계 미국 배우로서 할리우드에서 일한다는 것은 피어스 브로스넌, 휴 잭맨, 제니퍼 가너 등 톱스타들과 함께 일할 때 카메라가 그들의 연기를 찍는 동안 옆에서 그걸 지켜보면서 ‘언젠가 우리에게도 저런 기회가 오겠지’라고 바라는 거다. 샌드라 오, 대니얼 대 킴 같은 한국인 들뿐만 아니라 양자경, 제이슨 스콧 리, 러셀 웡, 더스틴 응유엔 같은 아시아계 배우들이 없었다면 우리 중에서 많은 배우들이 지금처럼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출연작 중에서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얼터드 카본>의 에피소드 7화다. “내가 연기한 코바치와 드라마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중요한 에피소드인데, 코바치가 자신의 연인인 흑인 캐릭터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중요하게 묘사된다. 아시아계와 흑인 캐릭터, 두 유색인종의 로맨스는 내 경력에서 매우 중요하고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굿 닥터

윌 윤 리와 화상통화를 한 지난 6월3일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가 점점 확산된 날이었다. 많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그렇듯이 그 또한 ‘Black Lives Matter ’ 시위에 연대하고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은 2020 년인데 1960년대에 만연했던 문제들이 여전하다. 지난 60년 동안 유색인종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변화하긴 했지만 뿌리 깊은 인식의 문제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게 ‘폭력적’이라는 인식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체포된 흑인을 대하는 태도는 다른 인종들과 다르다. 중요한 건 직접 본 많은 운동이나 시위 중에서 인종과 상관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시위를 지지하고 옹호하며 연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할리우드에서 버티며 크고 작은 역할을 꾸준히, 성실하게 맡아온 만큼 그는 앞으로도 배우로서 도전하고 싶은 역할이 많다. 언젠가 기회가 생기면 한국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바람도 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부터 최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까지 한국영화에 경외심을 가진 팬이다. 언젠가 한국에서 좋은 역할을 찾아 부모님 에게 한국영화의 일부가 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게 그의 각오다. 할리우드에서 지금까지 버텨온 끈기와 성실함이라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게 우리가 앞으로 그를 더 주목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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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윌 윤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