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김세원)는 자꾸 숨는다. 한때 단짝이던 두 친구가 거리에 등장하면 몸을 감추고, 엄마 대신 자신을 양육 중인 이모 정혜(김예은)와는 대화가 끊긴 지 오래다. 그런 미나는 꿈의 정령 요섭(이하랑)을 찾아 나설 때만 유일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꿈에서 본 풍경이 현실의 삶을 괴롭혀도, 꿈속의 현실과 현실 속의 꿈이 상실을 극대화해도 미나는 차라리 꿈속에 살길 바란다. 헤드 랜턴에 의지해 자발적으로 긴 터널 속에 몸을 던져 홀로 걷던 미나는 문득 읊조린다. “나 이제 뭐가 진짜고 가짜인지 모르겠어.”
- 꿈을 많이 꾸는 편인가.
자주 꾼다. 자고 일어나면 간밤의 꿈이 선명하게 기억날 때도 많고, 기분 좋은 꿈을 꾸면 기록도 곧잘 한다. 그런데 <리틀 드리머즈>를 찍는 동안엔 꿈을 거의 안 꿨다. 촬영을 마친 날은 잠을 푹 잤나보다. (웃음) 워낙 꿈 이야기를 좋아한다. <리틀 드리머즈>는 꿈에 관한 영화인 데다가 작품 자체가 그야말로 꿈결 같아서 끌렸다. 계속 상상하며 읽게 되는 이야기였다.
- <리틀 드리머즈>엔 묘한 연극성이 있다. 특히 꿈 장면은 연극이나 콘서트 무대처럼 설정된 세트에서 배우들이 특정 인물, 직군으로 분장해 등장한다. 실내 로케이션이 많다는 점 또한 작품의 실내극적 속성을 부각한다. 연극무대에도 종종 서다 보니 이같은 특성이 유독 눈에 들어왔을 것 같다.
세트에서 꿈 장면을 찍을 땐 정말 연극무대에서 연기하는 것 같았다. 그 인공성 속에서 최대한 큰 액션과 리액션을 선보였다. 마침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연극 <아르카디아>를 준비하던 때라 모드 전환도 어렵지 않았다. 영화 후반 한참 미나가 꿈속을 헤맬 때 프로레슬러처럼 링 위에서 싸우는 신이 있다. 방태원 배우와 대치하는 중에 주변 친구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는데 그 순간이 기묘하다가도 내 앞에 다가오는 모든 장면이 그저 믿어졌다. 다만 현실의 장면들, 미나의 내밀한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땐 최대한 사실적으로 몰입해 연기하려고 했다. 숲에서 촬영할 때였나, 리허설 도중 감독님에게 지금 찍는 장면이 꿈인지 현실인지 물어본 적 있다. 현실인데 곧 꿈으로 들어간다고 설명을 들었던 것 같다. 어떤 장면을 찍을 땐 미나에겐 현실이지만 건우에겐 꿈인 때도 있었다. 이따금 김세원이 느끼는 혼란이 미나에게 고스란히 반영됐다.
- 꿈이 중의적으로 쓰이지 않나. 수면 중 현상을 의미할 때도, 목표와 이상을 지칭할 때도 있는데 미나에겐 두 가지 꿈 모두 중요해 보인다.
오히려 꿈을 꿀 수 있어 다행이다. 악몽이든 길몽이든 바라는 바든 일단 살아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미나는 요섭에게 계속 매달린다. 나는 요섭이 근원적 에너지를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왜 무서운 꿈을 꿀 때면 그곳으로부터 달아나고 싶다가도 발이 묶인 듯한 감각이 들지 않나. 미나는 여러모로 그런 감정을 느끼며 살았을 텐데, 요섭이 미나의 족쇄를 풀어주고 부스터를 달아 뛸 수 있도록 만드는 존재 같았다. 그래서 미나는 거듭 요섭을 찾아 나선다. 그 힘을 복구하고자 계속 요섭을 추적한다.
- 마음을 표현하고 의사를 표명하는 것도 다 연습이 필요한 일인데 미나는 이를 학습할 기회 자체가 오랫동안 박탈된 청소년이다.
맞다. 미나는 소통의 기술을 배우지 못했다. 기회가 없어 미숙했고 그 점이 미나를 계속 세상을 미워하고 회피하도록 만들었다. 미나가 섬처럼 느껴졌다. 미나를 연기하는 내내 이 친구가 느끼는 외로움의 정서에 골몰해 있었다. 밀려나는 동시에 발버둥치는 사람, 주어진 상황 앞에서 열렬하게 도망치지만 그래도 잘 살아보려고 탈출구를 향해 싸워가는 사람이 바로 미나다.
- <유림> <울며 여짜오되> <적정선의 파이> <리틀 드리머즈>…. 근래 한국 독립영화 진영이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해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여성 청소년 역할에 배우 김세원을 독점하다시피 활용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장편 주연작 <낮은 곳으로부터>도 시놉시스만 읽었을 때 위 감상을 강화하는데.
감독님들이 유독 내 얼굴에서 어둠을 읽어낸다. 언젠가 한창 방황하는 청춘을 몇몇 작품에서 연기한 후 고민해봤다. 소외되고 어둠에 갇힌, 빛을 잃은 인물을 보고 어떤 관객은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 내 배역과 유사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작품과 인물이 힘을 실어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8월 말, 9월 초쯤 새 작품 촬영에 들어간다. 섬마을에서 벌어지는 19살 미정이의 이야기고 실제로 섬에 들어가 촬영한다. 거기서는 빛을 잔뜩 머금은 채 스크린에 등장할 예정이니 기대해달라.
- 지지난해엔 전주국제단편영화제,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등에서 배우상을 연이어 받고, 지난해엔 썸머프라이드시네마 2025에서 ‘김세원 배우 특별전’이 열렸다.
꾸고 싶던 꿈을 다 꾼 기분이 들었다. 더 잘하라고, 잘되라고 응원하듯 나를 밀어주는 일들이 이어졌다. 사실 부끄럽기도 했다. 내 이름 석자를 걸고 배우전을 열 만큼의 책임감을 갖춘 배우인지, 큰 기회를 누릴 준비가 되었는지 고민했다. 지난 몇년간 만난 모든 작품에 감사하다. 그래서 앞으로 진짜 잘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