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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클래식 각본집>
진영인(번역가) 사진 백종헌 2026-08-18

곽재용 지음 스튜디오오드리 펴냄

우연이 필연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연한 만남이 필연적 인연으로 이어지길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간절한 마음은 휴대전화 같은 빠른 매체보다는 편지처럼 느리고 불확실한 매체에 어울리는 것 같다. 단어 하나마다 고민하며 골라 쓴 편지지가 상대에게 잘 가닿기를, 그리고 편지에 담은 마음에 대한 답장을 받을 수 있기를. 1968년의 준하가 친구를 대신하여 주희에게 공들여 편지를 쓰는 모습이, 2002년의 지혜가 짝사랑하는 선배 상민에게 친구를 대신해서 정성껏 편지를 쓰는 모습과 겹칠 때 영화 <클래식>만의 서정이 느껴진다.

사실 누가 마음을 고백한다고 해서 그걸 곱게 받아줄 이유가 없는 게 당연한 지금 시대에 첫사랑 감성은 심심하고 촌스럽게 다가올 수 있고, 이는 “촌스러워! …음… 좋아, 클래식하다고 해두지 뭐…”라는 지혜의 대사로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지금은 편지가 거의 사라진 2026년이니 까마득할 지경이다. 그렇지만 각본집을 천천히 넘기며 엽서 사진처럼 고운 영화 스틸컷들을 보고 대사를 곱씹다보면 <클래식>이 왜 ‘클래식’인지 다시 확인하게 된다. 한국영화계의 대표 배우가 된 손예진조승우, 조인성의 풋풋한 얼굴과 연기를 담았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영화다. 그리고 1968년 엄마, 아빠 세대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각본집에 실린 감독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듯 멜로드라마 주인공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인물이 흔한 악당이 아니라 착하고 마음 여린 친구여서 결말이 더욱 아프다. 친구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청년이 밝은 미래를 꿈꾸기 힘들었던 시대적 어둠이 이들의 우정과 사랑을 비극으로 몰고 갔으니 그 비극을 다음 세대의 해피엔딩으로 만들고자 하는 간절함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 개봉 당시 조인성이 맡은 상민 역할이 많이 편집되어 논란이 있었는데, 과거의 사랑 이야기가 현재와 연결되는 영화의 구조 때문에 그에 맞춰 현재 이야기가 편집될 수밖에 없었다는 감독의 설명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혜가 사는 집 다락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보관된 준하의 일기장 내용에 지혜가 어느 순간 빠져드는 모습에서 새삼 책과 편지 같은 종이 매체의 힘을 느끼게 된다. 각본집을 펼쳐놓고 넘기면 어느 페이지든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르며 마음이 말랑해진다. 지혜와 상민이 미술관에서 그림과 조각품을 사이에 두고 걸어가는 대목을 읽으면 델리 스파이스의 <고백>이 생각나고, 비를 맞으며 캠퍼스를 뛰어가는 지혜와 상민의 모습에서는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 자동으로 재생된다. 각본집에는 제작 당시의 스토리보드도 자료로 수록되어 있다.

마주 보는 그들의 표정에 기쁨과 슬픔, 먼 옛날부터 이어온 사랑의 감정이 온통 뒤섞여 있다.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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