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전반 대학 농구는 고려대와 연세대의 양강 구도였다. 이를 격파한 팀이 중앙대고, 그 주역이 허재다. 그는 기아자동차에 입단해 삼성과 현대의 실업 농구 양강 구도도 무너뜨렸다. 농구에 허재가 있다면 경북 안동에는 ‘한국 녹색당 최초의 당선자’ 허승규가 있다. 시의원 선거에 세번 도전한 끝에, 거대 양당과 문중 정치를 뚫고 36.86% 득표율로 1위를 했다. 허승규는 지난 칼럼 ‘거북이 달린다’(<씨네21> 1559호)의 주인공 장시원 전 울진군의원처럼, 그리고 한때의 나처럼, 경북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귀향해 지역 기득권 세력에 대항해온 정치인이다. 나는 ‘거북이 달린다’에서 허승규를 거명하지 못했다. 그는 현직 후보였다. 공직선거법 저촉을 피하기 위해 그를 익명화하고 간단히 언급했다. 그때 나는 짐짓 그가 처한 선거 구도를 비관했다. “바깥 사람의 관점”이라고 전제하면서 말이다. 은근슬쩍 깔아놓은 역전극의 복선이었다.
6·3 선거 스무날 뒤 허승규와 통화했다. 그는 4월 말쯤 당선을 직감했지만, 낙관론의 전파를 막았다고 한다. “구도는 좋았어요.” 밖에서는 잘 모르는 지역 사정을 들려줬다. 지역 국민의힘과 국회의원은 공천 논란으로 큰 비난을 받았고, 현역 시의원 둘도 평판이 좋지 않았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한 부정 여론도 그를 도왔다. 민주당 후보도 지역 활동에 소홀한 기간이 있었다. 그 후보가 ‘힘 있는 여당’에 기댄 반면, 허승규는 ‘준비된 동네 일꾼’을 내세웠다. “12·3 내란 사태 여파로 표가 민주당으로 쏠릴까봐 걱정했는데 어떻게 대처했어요?” “저는 안동 지역 집회의 사회자 셋 중 하나였습니다. 민주당보다 제가 시민사회와 훨씬 유대가 깊었죠.” 2018년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못했을 때 첫 출마했던 것, 2022년에 민주당 후보를 앞지른 것이 승리를 불러왔다. 이번에 새삼 허승규의 운이 트인 게 아니다. 그에게 좋았다는 그 ‘구도’는 그가 세번 도전했기에 주어진 것이다.
가장 힘겨운 승부는 자신과의 승부였을 것이다. 선거와 선거 사이 4년은 길다. 30대 청년에게는 더더욱. “8년을 뭘로 견뎠어요? 달관이나 낙관? 아니면 악과 깡?” “오기와 독기입니다. 거대 양당에 지기 싫어 이를 갈았습니다.” 오기와 독기는 스스로를 해치기 쉽다. 나는 그가 중간에 전국 활동을 병행하며 바람을 쐰 것에 주목했다. 녹색당 부대표와 총선 비례대표 후보를 지냈고, 독일 연수의 기회를 받아 그 나라 녹색 정치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하면서도 “전국 활동 중에도 지역 일정을 다 챙기느라 힘들었다”고 털어놓았고, 지역 활동만 했으면 득표를 극대화했을 거라 아쉬워했다. 이게 바로 허승규식 ‘독기’인가. 그는 어디에 있든 안동을 품고 살아왔다. 허승규는 역전의 명수이기 이전에 지역 정치 덕후였다.
나는 정치 덕후 허승규를 2014년 봄 처음 만났다. 기초의원 재선에 도전하는 나를 만나러 그가 구미에 찾아왔다. 2010년 6월, 대구·경북에서 당선된 진보적 기초의원들을 보며 지방 정치를 결심했다고 했다. 나 역시 어릴 적 목격한 진보정당 후보들의 영향을 받았었다. 어디로 날아가 언제 피어날지 모를 뿐, 민들레 홀씨의 역전극은 계속된다. 부디 다음 사람은 8년이나 걸리지 않기를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