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의 시작을 알려온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한다. 무더운 계절을 발판 삼아 호러, 고어, 오컬트, 액션 등 장르영화를 종횡해온 영화제는 기념비적인 해를 맞아 더 풍성한 작품과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 올해의 개막작은 위안허핑 감독과 이연걸 배우의 만남이 돋보이는 무협영화 <표인: 풍기 대막>이다. 하드보일드 성인 무협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비주얼 작업을 내세우는 최근 트렌드를 과감히 탈피하고 배우들의 땀방울과 숨소리, 초 단위로 결합되는 액션과 타격의 아날로그적 힘을 고스란히 복원했다. 30회로 새로운 챕터를 여는 영화제와 무협의 부활을 의미하는 개막작의 퍼즐이 운명처럼 맞아떨어진다.
역사적인 해를 기념하는 다양한 기획전도 마련됐다. 먼저 올해부터 2028년까지 이어지는 3개년 프로젝트 ‘아시아 장르영화 99’는 매년 권역별로 장르영화 33편을 선정하여 장르영화의 계보와 역사를 다시금 재정의한다. 영화 선정은 1997년부터 2026년까지, 최근 30년 동안 극장에서 관객을 만난 작품으로 선별된다. 올해는 한국영화가 그 주인공이다. 아시아 장르영화 99를 통하여 관객들은 긴 시간 동안 장르영화의 법칙이 변모한 과정은 물론, 사회적·문화적 분위기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맞물려왔는지 그 확장성을 거시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 이번 부천영화제 특집에서도 김영진 영화평론가가 한국 영화산업 내에서 태동하고 발전된 장르영화의 역사를 되짚었다. 부천영화제의 시간을 함께 가늠해보기 좋은 글이다.
이 과정에서 특히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영화제가 아시아 장르영화를 선별하고 큐레이션하는 것에만 의미를 두지 않고, 프로젝트가 미처 채우지 못한 틈새까지 면밀하게 살폈다는 점이다. 장르영화 대부분을 남성감독이 연출해온 역사 속에서 부천영화제는 여성영화인모임과 함께 여성감독이 만든 장르영화 11편의 리스트를 따로 기획했다. 이 의미를 확장하여 <씨네21>은 이경미, 장유정 감독, 이현정 쇼박스 영화사업본부장(상무)과 여성 장르영화를 논하는 긴 대담을 마련했다.
가장 빠르게 AI의 혁신을 주목해왔던 부천영화제는 장편 극영화를 통해 현실적인 가능성을 체감해보고자 한다. 국제경쟁부문인 ‘부천 초이스: AI 영화’에서는 15편을, 비경쟁 ‘AI 프론티어’ 부문에서는 23편을 상영한다. 여기에 올해 처음으로 ‘부천 AI 콘텐츠 서밋’도 출범해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창작자 교육, 제작, 유통, 산업으로 확장되는 AI 영화 생태계의 초석을 적극적으로 마련했다. AI 영화의 오랜 문제로 여겨졌던 어색함과 이질감이 이번에 상영되는 장편영화 속에서 어떻게 개선되고 있는지 2026년 시점의 단계를 간파할 기회이기도 하다. 그동안 위화감의 보완점으로 애니메이션이 각광받던 분위기와 달리 이번 영화들은 극영화까지 넓게 포진해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 AI 영화는 어디까지 왔는가. 이 질문에 관한 답은 영화제 한가운데에 있다.
제30회 부천영화제 특집에서는 영화제에서 드러나는 경향들도 소상히 분해했다. 먼저 인도네시아에서 부상 중인 호러영화는 어떤 장악력을 가졌는지, 한국 영화산업과 인도네시아 사이에는 어떤 유기적 관계가 형성되고 있는지 에이드리언 조너선 파사리부 영화평론가의 눈으로 정리했고, 일본을 장악한 호러 영화계 거장과 신진의 바통터치 또한 면밀히 들여다보았다. 역시 여름엔 호러가 제맛인 듯하다. ‘NEW ERA NEW SKIN.’ 이제 부천영화제는 새로운 피부와 얼굴로 관객을 맞이할 채비를 마쳤다. 오늘 7월2일부터 12일까지 열흘 동안 오싹하고 유쾌한, 신기하고 기묘한 여름이 우리 모두를 기다린다.
*이어지는 글에서 여성영화인 장르영화 대담, 한국영화 장르의 흐름과 변화 정리, 인도네시아 호러 경향, 일본 장르물 장인, 신진 감독 비교가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