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은 빌게 한다. 이곳 아닌 어딘가에서만큼은 부디 행복하기를. <짝사랑 세계>는 그런 염원이 빚어낸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동 합창단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미사키(히로세 스즈), 유카(스기사키 하나), 사쿠라(기요하라 가야)는 죽음 이후 또 다른 층위의 세계로 건너가 그곳에서 삶을 이어간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이후 다시 협업한 도이 노부히로 감독과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는 이번에도 감정의 가장 깊은 곳으로 향한다. 괴롭고 아픈 지점까지도 잔인할 만큼 파고들어, 외면해온 부정적인 마음과 마주하게 한다. 그만큼 <짝사랑 세계>를 보는 일은 때로 고통스럽다. 그러나 슬픔을 직시하고 나면 그것을 품고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된다. 6월24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도이 노부히로 감독과 사카모토 유지 작가에게 일찍이 서면 인터뷰를 청했고, 개봉 전주에 답변이 도착했다. 작품을 관통하는 상실과 삶에 대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전한다.
- 질문지를 쓰는 5월 말의 한국은 여름처럼 덥고, 거리는 선거를 앞둬 유세로 분주하다. 일본의 현재는 어떤가. <짝사랑 세계> 촬영 중에 다친 도이 노부히로 감독의 몸 상태도 궁금하다.
도이 노부히로 일본의 5월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더웠다. 6월에 들어서자마자 태풍이 찾아왔고 이대로 장마철에 접어들 것 같다. 사고가 난 지 만 3년이 지났다. 나이는 들었지만 건강하고, 변함없이 촬영 현장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무엇보다 <짝사랑 세계>가 곧 한국에서 개봉한다는 소식에 조용히 흥분하고 있다.
사카모토 유지 방에서 나가는 일이 거의 없어 날씨 이야기가 늘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 폭염도 혹한도 나와는 거리가 멀다. 답답함이나 산소 부족이 오히려 더 가깝게 느껴진다. 건강하지는 못하다. 한국의 선거 소식은 일본에도 자주 전해진다. 국민주권 의식이 뚜렷하게 자리 잡은 한국의 선거 문화는 이상적으로 보인다.
-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는 <짝사랑 세계>의 아이디어를 언제, 어디서 떠올렸나.
사카모토 유지 지인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접했다. 장례식에 다녀오는 길에 한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어린 시절, 죽음만을 생각하던 나를 구원한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작품으로 남기고 싶어 쓰기 시작했다.
- 도이 노부히로 감독은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나.
도이 노부히로 그의 글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에게 다가가며 그들의 약점을 드러내려 한다. <짝사랑 세계> 역시 부조리한 상황에 놓인 이들의 닿지 못한 마음을 그린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촬영 도중 발생한 사고로 나 또한 그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고, 그러면서 작품을 이해하는 해상도가 높아졌다. 각자의 짝사랑 상대에게 닿고자 애쓰는 세 주인공의 마음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 마음을 전하는 장면들을 정성스레 담고자 했다.
- 주인공들의 세계는 현실과 겹쳐 있지만 인식되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미사키는 매일 출근해 자기 자리에 앉아 일하지만 직장 동료 누구도 그를 보지 못한다.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는 이 세계를 구축할 때 어떤 규칙을 세웠나.
사카모토 유지 규칙을 만들긴 했으나 SF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설정에 다소 느슨한 부분도 있다. 중요한 건 이 세계가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시선을 기준으로 구축된 공간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이들이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이고, 음식을 만든다면 이들 눈에 요리하는 모습이 보일 뿐이다. 인물들 역시 자신들이 처한 세계와 현실의 차이를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20대 여성배우 세 사람이 한 작품에 모였다. 히로세 스즈, 스기사키 하나, 기요하라 가야가 각각 미사키, 유카, 사쿠라를 맡으면서 캐릭터에 새롭게 더해진 면모가 있었나.
도이 노부히로 사카모토씨가 세 배우를 토대로 썼기 때문에 이들의 실제 면면이 캐릭터에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세 배우가 각기 다르게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마치 한 사람처럼 만들어간다는 점이었다. 세 인물 사이에 진짜 같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배우들이 이를 훌륭하게 구현해냈다.
- 도이 노부히로 감독은 판타지적인 세계를 현실과 자연스럽게 겹쳐 보이게 하는 일이 쉽지 않았겠다.
도이 노부히로 그럼에도 아날로그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VFX 사용을 최소화했다. 집과 침실의 구조, 의상과 소품 같은 세부 요소들이 이 세계를 만드는 핵심이었기 때문에 담당 스태프들이 가져온 이미지를 공유하는 것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주인공들이 현실 사람들과 부딪히는 장면을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과제도 있었다. 이때 주인공들만 넘어지는 등의 타격을 입는데, 이들의 존재를 연기(煙氣) 같은 것이라 상정하고 연출했다. 영상 트릭 없이 배우들이 직접 그런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도록 사전에 액션 훈련도 진행했다.
- 이 세계에서 인물들은 나이를 먹고 시련을 겪는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만큼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안식의 공간으로 그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사카모토 유지 세상에는 수많은 유령 이야기가 있다. 대부분의 유령은 죽었을 당시의 모습이며 사람들에게 보일 때만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건 이것이다. 사람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유령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누군가를 놀라게 하려고 계속 대기하는 걸까? 유령에게도 사람과 마주치지 않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 시간 속에는 생활과 성장이 있을지 모른다. 이런 아이 같은 상상이 <짝사랑 세계>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많은 이야기가 비일상을 그리지만 내가 정작 관심 있는 건 그런 비일상 속에 숨겨진 일상과 생활이다. 사람은 비일상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유령 역시 배가 고플 것이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 세계는 전쟁 중이고, 나이가 들수록 죽음을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사카모토 유지 어릴 때부터 죽음을 공포로 여기며 자주 생각했다. 일본인뿐만이 아니겠으나 죽음을 못 본 척하는 것이 삶의 요령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그러나 죽음은 멀든 가깝든 분명히 존재하며 언젠가 주변 사람에게, 나에게 찾아온다. 누구도 그것을 피해갈 수 없다. 죽음을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편이 살아가기에 더 편하지 않을까?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전쟁에서 눈이 돌리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가깝게 여기는 편이 전쟁의 시작과 멀어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