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용어 설명부터 하는 게 독자에 대한 도리리라. 모션캡처(줄임말. 정식 용어는 Virtual Set Motion Capture Simulation System)란 사람 혹은 사물에 센서 역할을 하는 마커(marker)를 부착시키고 동작을 취하게 한 뒤, 특수조명 아래 마커의 반사광을 카메라로 포착, 카메라와 연결된 컴퓨터 화면에서 그 움직임을 재현하는 기법을 말한다. 정리하자면, ‘움직임을 카피(copy)하는 기법’인 셈이다. 컴퓨터로 복사된 움직임은, 인간을 닮은 인형들에게 입혀져 자연스런 동작으로 화면을 뛰어다닐 수 있게 하는가 하면, 실사영화에서 반복되는 리허설의 부담을 덜어주기도 한다. 실제 세트장에서 배우들과 단 몇회의 리허설로 ‘오케이 컷’을 얻어야 하는 부담감 대신, 컴퓨터로 읽혀진 배우들의 움직임을 여러 방식으로 시뮬레이트하면서 최적의 촬영구도를 잡는 모습은 이미 할리우드에선 익숙한 광경.
곽경택 감독이 <챔피언> 촬영에서 새로 도입한 모션캡처는 제작비 절감의 차원에서 엄청난 강점을 발휘한다. 작품 예고와 인터뷰에서도 드러났듯이, 곽 감독은 ‘스타일리시’한 파이트신을 선보이고자 기획단계에서 많은 준비를 해왔다. 그 일환이 모션캡처 시스템의 도입인데, 예컨대 김득구와 그의 오랜 파트너 이상봉과의 스파링신은, 마커를 단 두 배우를 무대에 세우고 호흡을 맞추게 한 뒤, 그 모습을 컴퓨터로 스캔하여, 사이버상에서 각종 각도의 카메라 워킹을 시도해본 뒤 가장 인상적인 장면(시선숏)만을 잡아낸 것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맨시니전은, 한달여의 시뮬레이션 작업을 거쳐, 인력과 제작비의 낭비를 전혀 허용하지 않았다. 별도의 세트와 배우들 없이도, 컴퓨터 안에서 수십번 카메라의 앵글과 동선을 바꿔가며 모의 촬영이 가능하므로 원하는 컨셉에 맞는 화면을 효율적으로 찾아낼 수 있다. 모션캡처 장비를 제대로 갖춘 회사와 인력을 만난 것도 곽 감독의 행운.
90년대 초반 3D애니메이션과 사이버 캐릭터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모션캡처 장비와 인력을 준비해온, 애니메이션·게임개발전문회사 (주)오콘은 국내에서 최고의 인력과 시스템을 자랑한다. (주)오콘의 모션캡처팀 창립 멤버이기도 한 김종문(31)은 자신이 한 일의 결과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 눈치다. “무려 10억원 단위의 제작비가 절감됐다는 소식에, 진작 이런 기술이 영화에 도입되지 않은 게 안타까웠죠. 보람도 느끼고요.” 맨시니전을 위해 배우들의 데이터는 물론, 링의 사각기둥부터 관전하는 군중의 실제 데이터까지 꼼꼼히 체크하여, 실제 세트장을 고스란히 옮기는 데 무려 한달. 컴퓨터 속에 자리잡은 라스베이거스 특설링 위에서 마우스로 카메라를 이동시키며, 앵글을 잡아나갔다. 게임 <리니지2>의 동영상과 애니메이션 <런딤>(극장용)도 그의 손끝에서 완성됐다. 모션캡처 방식의 편리함이 입으로 전해지면서 벌써 다른 영화사에서도 러브콜이 들어오는 중이라고.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 프로필
-→ 1972년생·국내 최초 사이버 뉴스 앵커 ‘나잘란 박사’ 개발(SBS TV 방영)-→ 애니메이션 <런딤>(극장용) 모션캡처 부분을 디지털 드림 스튜디오(본 제작사)로 부터 위탁-→ 게임 <리니지2>의 동영상 제작-→ 영화 <챔피언>의 권투장면에 모션캡처 방식 도입-→ 현재 건축시뮬레이션 작업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