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로 듣고, 보고, 느끼라.” 장이머우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로 데뷔해 <2046> <게이샤의 추억> 등 수많은 영화에서 활약한 배우 장쯔이는 여전히 예술대학에서 배운 가르침을 바탕으로 카메라 앞에 선다. 제19회 아시안필름어워즈에서 아시아 영화 엑설런스상을 수상한 그가 시상식 직전 열린 마스터클래스에서 연기 인생 중 잊을 수 없는 몇 순간을 호쾌한 웃음과 함께 회상했다.
<와호장룡>
“당시 현장은 ‘생고생의 구렁텅이’였다. (웃음) 내가 학교에서 배운 무용의 기초를 총동원해 모든 무술 시퀀스를 소화했다. 수련(양자경)과 교룡(장쯔이)이 결투하는 장면을 찍을 땐 손톱이 통째로 뜯겨나갈 정도였다.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 머릿속엔 온통 다음날 찍을 액션 생각만 가득해서 자다가 몽유병에 걸린 듯 깨어나 연습한 날도 부지기수였다. 당시엔 연기 경험이 적어 캐릭터를 깊이 이해하진 못했다. 어린 나는 교룡을 어른 말 안 듣는 재벌 2세 캐릭터 정도로 분석했던 것 같다. 그러나 <와호장룡>을 보면 볼수록, 교룡 속에 숨어 있는 한 마리 야수가 보인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교룡이 날카롭게 벼려진 보검 같은 인물이란 걸 깨달았다.”
<모리화>
“이 영화를 모르는 분들이 많을 거다. 허우영 감독의 연출 데뷔작으로, 감독님은 내 데뷔작 <집으로 가는 길>의 촬영감독이기도 했다. 3대에 걸쳐 격동의 중국을 살아내는 세 여성 ‘모’, ‘리’, ‘화’를 모두 연기했다. 이중 ‘화’가 빗속에서 누구의 도움 없이 출산하는 장면을 사흘 밤을 새우며 찍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출산 경험이 없던 때라 어머니를 포함해 주변 여성들에게 자문을 구해 극한의 고통과 절규를 연기했다. 그런데 실제로 딸을 낳을 땐 무통주사를 계속 맞아서 <모리화>를 찍던 당시 상상한 고통은 없더라. (웃음) 오늘 다시 보니 이때 연기가 과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감정만큼은 기교나 속임수가 없는 생짜배기여서 좋다. 미련할 정도로 온몸을 던져 날것 그대로 연기한 작품이다.”
<최애>
“구장웨이 감독님은 배우들에게 거창한 연기 이론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최애>를 연기와 프레임이 하나로 완벽히 융합된 작품으로 기억하고, 이 영화가 지닌 압도적인 리얼리즘을 사랑한다. (울컥하며) 에이즈 환자들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곽부성 배우가 연기한 연인과 혼인신고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마을 사람들은 내가 나눠주는 사탕을 불결하다며 거부한다. 대본에는 ‘혼인서류를 받아 들고 기뻐서 눈물을 흘린다’ 정도의 지문이 있었는데, 몰입한 나머지 ‘우리는 합법이다’라는 말을 미친 듯이 되뇌었다. 긴 테이크 속에 숨이 막혀 말을 멈추고 뜸을 들이기도 했는데, 그건 머리로 계산하고 설계한 호흡이 아니었다.”
<일대종사>
“모두가 알다시피 3년간 찍은 영화다. (웃음) 다들 내가 무용 전공자라 액션 연기를 수월하게 해낼 거라고 생각하는데 절반만 아는 거다. 정말 고통스럽다. 나는 근력만 강하고 유연성이 부족해 무용수 시절에도 동작 구현에 애를 먹던 사람이다. <일대종사>를 준비할 때 무술 스승님은 내게 ‘탕니부’를 훈련시켰다. 진흙탕 위를 걸으면서도 진흙물이 튀지 않게 스치듯 걷는 보법이다. 극한의 탕니부 수련을 통해 내 안의 들뜬 기운을 가라앉히고, 절제와 인내를 강제로 체내에 주입했다. 탕니부 때문일까. <와호장룡>을 찍을 때만 해도 어떻게든 리안 감독님께 인정받고 싶었지만, <일대종사>에 오니 캐릭터에 대한 확고한 해석과 조형 능력이 생겨 초연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