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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습기를 머금은 몸들에 관해, 김연우 평론가의 <물의 연대기>
김연우 2026-02-11

<물의 연대기>

영화 <물의 연대기>를 말하기 전 원작을, 정확히는 이 회고록이 ‘아닌 것’을 언급하는 편이 좋겠다. 극복과 성공으로 귀결되는 전기가 아니다. 고백이나 고발, ‘친족성폭력 트라우마를 지닌 여성 A의 사례’가 아니다. 통상적인 연대기와도 거리가 멀다. 당사자이자 화자인 리디아 유크나비치는 장면(이 글에서 일컫는 ‘장면’은 기억 속 상을 의미한다)들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지 않았고, 주인공인 자신을 보편적으로 수용될 만한 인물로 다듬지 않았다. 유크나비치의 글은 몸과 밀착한, 몸의 리듬을 따르는 글이다. 이러한 원작의 속성을 일부 공유하는 영화는 사건을 재현하기보단 기억 소화 과정을 육화한다.

16mm 필름에 촬영한 이유를 설명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문장 가운데에는 “영화가 조각나야 했기 때문”(2025년 5월18일, <인디와이어>)이라는 표현이 있다. 필름을 물리적으로 쪼개 다시 붙이고 포갠 결과물은 이음새를 드러내는 유동성을 지닌다. 자르고 기운 부위는 신체처럼 움직인다. 그 움직임은 이를테면 눈을 감았다 뜨는 리듬, 들숨과 날숨의 리듬과 닮았다. 수영장으로 뛰어내리는 몸과 흘러내리는 피, 자전거 손잡이와 운전대를 놓는 순간, 돌멩이와 아기 옷의 상이 맞물리고, 리디아의 등을 감싼 클라우디아와 클라우디아의 등을 감싼 어린 리디아가 교차된다. 장면들은 낮과 밤으로 깜박이고, 여러 색감과 질감으로 호흡한다. 내레이션과 사운드트랙, 마찰음과 타격음은 상을 잇거나 달리 끊는다. 물에 둘러싸인 듯 먹먹한 소리가 들리고 멎는 리듬은 잠수했다가 솟아오르는 동작을 연상하게 한다.

그 흐름은 먼저 감각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수영 대회에서 승리한 장면의 기쁨은 보존되지 않는다. 부분 장학금 제안이 담긴 편지를 읽으며 리디아를 깎아내리는 부친, 그를 지켜보는 리디아와 엄마의 긴장된 얼굴, 종이를 찢고 내려놓는 충격음이 틈입한다. 기억들은 서랍에 분리/보관되어 있지 않다. 서로 침범하며 들러붙는다. 가해자와 폭력을 과거에서 도려낼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영화는 장면들이 의지와 무관하게 홈비디오와 꿈, 환각을 넘나드는 거친 질감들로 뒤섞이는 느낌만이 아니라, 그것들을 의식적으로 쪼개고 포개고 나란히 두는 행위 역시도 체현한다. 물건들을 던지고 베갯잇을 물어뜯는 리디아의 모습, 부친의 음성이 등 뒤에서 솟아나듯 들려온다. 수영복을 입은 여성 선수들의 뒤에서 체벌하는 코치의 얼굴 없는 신체와 음성이, 불안한 현악기 연주와 더불어 거기 끼어들고 엉킨다. 이후 설거지하는 리디아 뒤에 서 있는 부친의 신체도 머리가 잘린 채 보인다. ‘그것들은 자주 뒤에 있었다’고 리디아의 몸은 복기하고, 부친을 증오하기 전 사랑했다고 그의 목소리는 서술한다. 감각과 감정들을 모으고 되돌아보며, 리디아는 또한 글쓰기를 숨쉬기와 겹쳐 떠올렸던 것 같다. 어린 리디아는 입을 벌리지만 노래는 나오지 않는다. 그가 연필로 글을 쓸 때, 시간이 흐른 후 소설집의 목차를 타이핑할 때, 규칙적으로 숨을 토하는 소리가 겹친다. 리디아의 입에서 나오지 않는 그 호흡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기억은 몸을 초월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장면들을 창작으로 소화하는 일은, 기억이 새겨진 몸과 동떨어져 있지 않은 “또 다른 몸”(-리디아)을 빚어낼지도 모른다.

<물의 연대기>

<물의 연대기>가 몸이라면 균열과 봉합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며, 사람의 몸처럼 습기를 머금고 있을 것이다. (일종의) 신을 하나 살펴보자. 리디아가 약에 취해 정신을 잃어가던 날의 장면에, 수면제를 과다 복용한 엄마를 (리디아가) 본 날의 장면이 교차된다. 리디아의 목소리- 글- 는 어두운 물에 잠기고, 손에 묻은 파란 페인트가 벽 가득 찍힌다. 스튜어트가 연출한, 그룹 보이지니어스의 뮤직비디오이자 옴니버스 단편영화인 <더 필름>(2023)의 한 신이 연상된다. 세 여성이 옷과 몸에 페인트를 묻혀가며 벽을 파랗게 칠하는 모습. 리디아가 감지하는 블루와 이들이 노래하는 블루가 뜻하는 바는 서로 다를 터이나, 연결해볼 지점이 있다. 그 블루들은 보디페인트이자 보디의 페인트, 피부에 묻고 피부에서 묻어난다는 점이다.

그 ‘묻고 묻어나는 것들’은, 감각과 상태의 초현실적 시각화로서만이 아니라 실제의 분비물로도 (더 자주) 등장한다. 리디아의 몸은 물을 뿜는 몸, 물에 잠기는 몸이다. 부친에게 욕설을 내뱉는 찰나의 해방감은 자위로 인한 액체의 방출로 복기된다. 어느 날의 리디아는 필립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에 눈물 대신 침을 떨어뜨린다. 음주운전 사고를 낸 직후의 그는 (맞은편 차에 타 있었을) 임신한 이의 눈물을 보(지 못하)고, 정신이 든 다음 유치장 변기에서 배설한다. 헤나, 클레어, 리디아의 베드신에서 맞닿는 살갗은 바닷가 곳곳과 포개진다. 화면은 붉게 타고, 세 여자는 물을 흘리고 웃고 바다를 향해 달린다. 사진작가를 바라보는 리디아의 입에는 침이, 묶여 채찍을 맞는 피부엔 땀이 고인다. “고통을 어딘가로 보내는” 이 행위는 목욕으로 마무리된다. 흰 타일에 흐른 덩어리진 피는 수돗물과 섞여 배수구로 내려간다. 리디아의 육체에서 나온 축축한 분비물은 육체를 둘러싼 물과 섞이되 거기 완전히 동화되지는 않는다. 물은 정확히 한 가지를 뜻하지 않는다. 은유가 아니고, 은유이기도 하다. 순수하고 단일한 물질이 아닌, 온갖 이물로 오염된 물은 수많은 갈래로 나뉘어 흐르고 교차되며 물을 품은 몸들을 받쳐주거나 가라앉힌다.

리디아의 스토리텔링은 기승전결을 따르지 않지만, 흘러 머무르는 장소는 있다. 어린 리디아가 친족에게서 잠시 벗어나 강물에 뛰어든다. 이어 어른 리디아가 수면으로 올라온다. 그는 앤디, 마일스와 함께 있다. 이성애 핵가족보단- 여자들과 나눈 사랑을 피부에 간직한- 리디아가 우연히 만나 선택한 가족의 상에 가깝다. 물속에서 감각을 차단하거나 호흡을 조절해왔던 그는, 이제 물 위에서 숨 쉬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고 말한다. 몸에 닿은 물‘들’과 더불어, 그러나 아주 잠긴 것은 아닌 채로. 이것은 해피 엔딩이 아니다. 미완결의 이야기가 다다른 하나의 장면이다.

리디아가 살던 집의 구석에 피어 있던 곰팡이를 생각한다.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면 아마 과해석이겠으나, 화면 테두리에 남은 자국에서 자꾸만 그 검은 얼룩이 연상됐다. 리디아의 아픔 자체에 대한 은유가 아닌, 아픔을 인식한 그의 몸이 내보낸 물의 흔적. 몸에서 나와 쌓인 습기를 먹고 자라난 그 생물을 리디아는 응시한다. 낭만화를 경계하며, 어쩌면 그 유독한 몸은, 뿌리내린 아버지의 집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는 단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적어본다. 견고한 집에 번지는 축축한 몸, 수속성이고 비-수용성인 크리처. <물의 연대기>는 내게, 그런 곰팡이의 포자를 품은 육체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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