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새삼 범사에 감사한 마음이 차오른다. (<씨네21> 기준) 설문 대상 범주에 포함되지 않아 2025년 올해의 영화로 꼽진 못했지만, 올겨울 짙은 얼룩을 남긴 영화를 한편만 꼽자면 단연 이가라시 고헤이 감독의 <슈퍼 해피 포에버>였다. 202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난 이 영화는 잔잔한 파도처럼 1년 내내 주변을 서성거리더니 마침내 국내 개봉한 덕분에 관객들과 함께 이 묘한 상실의 회상을 공유할 수 있었다. 감독 스스로 ‘어슬렁거리는 영화’라고 표현하던데, 이상하게 그 단어마저 참 다정한 울림으로 귓가를 맴돈다. 최근 이른바 뉴 제너레이션으로 불리는 일본의 젊은 감독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솔직히 이런 분류가 개별 영화를 감상하는 데 그다지 유효하다고 생각되진 않지만 일련의 흐름이 감지되는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순 없다.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2024년 <슈퍼 해피 포에버>를 소개하면서 “하마구치 류스케는 집요함으로, 미야케 쇼는 생기로움으로, 이가라시 고헤이는 다정함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했는데, 아직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 아무래도 나는 세상의 온도를 살짝 올려주는 영화들에 마음을 뺏기는 것 같다. <슈퍼 해피 포에버>는 누가 뭐라 해도 다정한 영화다. 이 여운과 온기가 좀더 많은 이들과 만나 퍼져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다정이 불러오는 온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잘 아는 상태로서의 온기. 훈훈하고 따뜻하고 익숙한 이야기들은 곧장 마음을 데운다. 다른 하나는 성질로서의 온기가 있다. 온기란 상대적인 감각이다. 성질로서의 온기는 지금 따뜻하다는 상태가 아니라 따뜻하고자 하는 의지와 지향, 결과로서 온기를 부르는 태도에 가깝다. 당장은 쓸쓸하고 서늘해 보일지 몰라도 지나고 나면 어느새 빈자리에 무언가 차올라 마침내 따뜻해진다. <슈퍼 해피 포에버>는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쓸쓸하고 느슨하다고 느껴졌는데, 올해 다시 보니 인물들이 디디고 선 단단한 바닥이 더 눈에 들어온다. 카메라는 강한 의지로 지나간 것들을 응시하는 시간을 붙들고, 그 시간이 다시 오늘의 우리가 버틸 수 있도록 붙잡는다. 그리하여 지나간 것들이 남긴 연결고리를 부여잡은 채, 우리는 내일을 바라보며 오늘을 이어갈 수 있다.새해를 맞아, <슈퍼 해피 포에버>의 삽입곡 <Beyond the Sea>와 함께 2026년 너머를 바라본다. 어쩌면 행복은 발견하는 게 아니라 발명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의지를 가지고 만들어나가는 행복은 결국 움직임과 방향의 문제다. 2025년은 쉽지 않은 한해였고 거의 확실하게 2026년에는 더 엄혹해질 것 같지만, 지치지 않고 거친 파도와 바다를 건너 내일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아니 나아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씨네21>은 이번주부터 해외영화, 한국영화, OTT 시리즈와 드라마까지 2026년을 함께할 신작들을 차례로 소개할 예정이다. 이 기사들이 미래의 나침반이 되길 소망하며. “바다 저편 어딘가/ 나를 기다리는 어딘가/ (중략) 그곳은 별들 너머 멀리 있고/ 달 너머 가까이에 있어요/ 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알아요/ 내 마음이 곧 나를 그곳으로 이끌 거예요/ (중략) 우리는 바다 너머에서 행복할 거예요.”( <Beyond the Sea> 가사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