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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연의 해상도를 높이면] 앉으라고! 사랑하러 왔잖아! <불량 연애>
이자연 2026-01-01

<불량 연애>

남매가 서로의 연애를 지켜보는 <연애남매>, MZ 무당들이 자신의 연애운을 직접 점쳐보는 <신들린 연애>까지 끊임없이 변주하는 연애 프로그램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일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불량 연애>는 말 그대로 불량배의 ‘순애’를 중심 소재로 선택한, 다소 골 때리는 연애 프로그램이다. 독특한 기획만큼이나 출연자들의 전적도 화려하다. 전직 폭주족 리더, 전 인텔리 야쿠자, 유흥업소 운영자 등 한때 마음껏 삐뚤어져봤거나 비행(非行)을 일삼았던 이들이 어른이 되어 진정한 사랑을 찾아보겠다는 취지다. 순응보다는 반항, 이성보다는 본능, 인내 아닌 발악. 집단생활 속 튀는 행동에 더 가까웠던, 그래서 사회의 주변인으로 존재해온 11명의 남녀는 14일간 학교라는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감정적 소용돌이를 마주한다. 불량배들의 사랑을 관찰하기 위해 곳곳에 배치한 예능 요소도 인상적이다. 폭력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경비원이 시종일관 대기하고 있거나,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싸움부터 하는 남자 출연자들의 모습은 좀처럼 연애나 사랑, 로맨스 같은 단어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심지어 교실 앞에 새겨진 규칙 내용도 이렇다. (1) 폭력 금지, (2) 기물 파손 금지, (3) 협박 및 공갈 금지, (4) 마지막까지 고백 금지(여기서부터 진짜 연애 프로그램이 맞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억눌린 감정을 포효 속에 폭발시켜버리는 이들을 잠재우기 위해 프로그램은 충동적인 고백마저 저지해버리지만, 모순적이게도 이 ‘억눌림’이 예측 불가함을 높이며 프로그램을 생명력 있게 만든다.

국내 리얼리티 예능을 기준으로 <불량 연애>를 구분해보자면, <솔로지옥>이나 <하트 시그널><환승연애>보다는 <나는 SOLO><돌싱글즈>에 가깝고 조금 더 폭넓게 적용하면 (비록 연애는 아니지만) <이혼숙려캠프>도 유사한 무드라 말할 수 있겠다. 이들은 아름답게 드라마타이즈된 예능으로서 대중의 선망이나 환상을 불러일으키기보다 적나라한 현실을 도화지 삼아 시청자들이 쉽게 조소하고 조롱할 장면을 채색한다. 좋게 말하면 출연자를 친근하거나 인간적으로 비추고, 나쁘게 말하면 계급적으로 열등해 보이도록 만든다. 연애 프로그램의 취지는 출연자의 연애 열망을 순수하게 충족하는 데 있지만 드라마적 렌즈가 빠지면서 출연자의 과실은 아슬아슬한 조롱의 대상이 된다. 그간 많은 사람들은 이 지점을 ‘도파민 자극’이라는 한마디로 뭉뚱그려왔다. 하지만 이 말 안에는 보다 길고 복잡한 욕구가 있다. 출연진이 인간관계에서 더 실수하고 결례하기를 내내 기다리다가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본격적으로 우월감을 느끼며 기꺼이 절대적 심판자가 되는 것. 연애 프로그램에 드러나는 출연자의 결핍이 보편적으로 이해받기보다 일방적으로 비난받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시청자에게 중요한 건 더 이상 연애 성공 여부가 아니다.

<불량 연애>도 일면 그렇다. 양키(‘양아치’를 뜻하는 일본말) 생활을 전전했던 이들의 무데뽀 사랑은 순정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촌스럽고 막무가내다. 관심 있는 남자와 사우나 데이트를 하게 된 오토하가 “사실은 외로웠다. 사람들 앞에서는 솔직하게 말도 못하고” 하면서 다짜고짜 울어버리거나, 베이비와 데이트를 나가는 니세이에게 밀크가 무작정 몸싸움을 건다거나. ‘사회적 상식’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 나란히 열거되면서 시청자는 저도 모르게 이들을 우악스럽게 바라본다. 공감 섞인 몰입이 아니라 ‘타자화’를 하며 선을 긋는다. 내 이야기가 아닌 것에 아늑한 안심을 한다. 제목도 컨셉도 마침 ‘불량’이라 그렇게 받아들이기 더더욱 쉽다. 하지만 <불량 연애>는 함부로 던져지는 무례한 연민을 극구 사양한다. 그보다 프로그램은 출연진 전체에게 예상치 못한 공통 미션을 준다. 모두가 마음 놓고 식사할 수 있는 어린이 식당을 만드는 것. 졸업식 전날 어린이들에게 추억이 될 이벤트를 열어주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자신의 아픔도, 타인의 아픔도 잘 이해한 이들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이면서. 그러니까 <불량 연애>는 짝짓기 프로그램이라는 명확한 지향점을 갖고 있지만 도리어 그것과 상관없는 미션을 통해 ‘불량아로서’ 켜켜이 쌓아온 고독감과 외로움을 녹여버린다. 공격과 싸움에 익숙한 출연진이 어린이들을 위한 메뉴를 생각하고 공간을 꾸미는 행위를 실천하면서 제 안에 멈춰 있는 유년 시절을 회상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전교회장을 역임하고 고등학교 입학 당시 장학금을 받았던 모범생 오토상이 17살에 성폭행을 당한 후 삐뚤어지기 시작했다고 고백하던 장면은 <불량 연애>의 복합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에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 괜한 연기가 아니다. 그는 진실로 차분하다. 자신의 직업을 공개하는 것만으로 “왜 이렇게 떨리지?” “왜 눈물 날 것 같지?” 하고 수선스러운 반응을 보이던 기존 연애 프로그램과 달리 자전적 상처를 되짚는 과정에서 <불량 연애>는 오히려 담담하다. 오직 그 이야기를 들은 주변 사람들의 놀란 표정만이 그 상처의 깊이를 가늠해줄 뿐이다. 그러니 더더욱 본격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왜 이들은 불량이, 양키가, 아웃캐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나. 무엇이 이들을 주변인으로 몰아세웠나. 보육원에서 달팽이를 끓여 마시며 배를 불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도 도움 청할 어른이 없고, 부모의 과잉보호 속에서 어긋나면서 이들은 고독함 끝에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그리고 모든 출연진이 공통되게 말한다. 자신을 ‘받아줄 사랑’을 찾고 싶다고. 물론 연애가 능사는 아니다. 연애가 근원적 문제를 해결해줄 리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너무 잘 안다. 다만 그럼에도 <불량 연애>가 선택한 태도가 의미 있는 건 누군가의 구애하는 간절한 마음을 볼모 삼아 일면식 없는 이들에게 무례한 연민을 받지 않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이들이 출연자의 역사를 토대로 ‘불량의 사회적 원인’을 점검하게 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은 정말 불량을 개선할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 세계관의 믿음은 확신에 차 있다. “앉으라고! 사랑하러 왔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