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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의 클로징] 단군왕검 연구를 망친 <환단고기>

고대로부터 내려온 전승에는 사람들의 오래된 집단적 기억이 스며 있는 경우들이 많다. 그 전승이 비현실적인 신화나 우화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해도, 거기에는 그러한 집단 전체가 오랜 시간 공유하는 믿음이나 가치관이 스며들어 있을 때가 많다. 따라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전승들을 조각조각 퍼즐처럼 모아 기억의 원형을 찾아내는 연구는 대단히 소중한 일이다. 그리고 단군왕검이라는 존재의 전승은 특히 한국인들의 정체성에 있어서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므로 그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찾아보면 흥미로운 요소들이 여기저기에 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단군신화는 대부분 고려시대의 <삼국유사>혹은 <제왕운기>에 나온 버전에 근거하고 있지만, 그 이외에도 대대로 내려온 단군왕검의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를 추론해볼 수 있는 자료와 편린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단군은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신비적 존재의 이미지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단군을 국조, 즉 정치적 시조로 모시고 제사를 드린 것은 조선왕조이지만 다른 전통에서는 분명히 단군이 선가(仙家)와 연결된 존재로 나타날 때가 많다. 조선시대에 쓰여진 <해동전도록>을 보면 조선시대에 호흡 수련을 하던 선가에서는 단군을 이 땅의 도맥(道脈)을 쥔 중심적 존재로 강조하고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평양을 “선인 왕검의 옛집”이라고 묘사하는 구절이 나오고 있으니 이 또한 단군과 선가의 친화성을 강하게 암시한다. 또 고려 전기에는 구월산에 삼성사라는 사당을 두어 환인, 환웅, 단군을 함께 모셨다는 기록이 있어서 단군이 신비적,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 더하여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민속 설화와 전승 등을 찾아보면 그러한 신비적 숭배의 대상으로서의 단군이 더욱 뚜렷해진다. 단군은 결국 산신이 되었다고 하니, 우리나라 거의 모든 사찰에 함께 있는 산신각에 나타난 산신신앙은 분명히 단군 전승과 밀접하며, 조선 말에 쓰여진 <무당내력>에서도 무속에 있어서 단군이 중요한 존재임을 확인해준다. 평양 근처에는 단군이 또 다른 우리 민족의 시조로 여겨지는 마고할미와 전쟁을 벌여 후자를 복속시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아마도 면면히 내려온 우리나라의 선가 계열에서는 더욱 풍부한 단군의 이야기와 이미지가 묻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환단고기>는 이러한 사료 밖의 단군 전승에 대한 연구에 독을 타버리고 말았다. 이 책의 내용 중에는 선가는 물론 대종교나 단군교 등 20세기 초의 시점에서 존재했던 여러 단군 관련 전설과 전승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요소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면, 그래서 보다 과학적인 연구의 자료로 활용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친일 행적을 가진 이유립이 일본 극우파의 대륙사관에 입각하여 만들어낸 위서의 모습을 뒤집어쓰고 나왔으니, 어떤 것이 순수한 진짜 전승이고 어떤 것이 이유립 등의 조작인지가 마구 뒤섞여버리고 만 것이다. 조상님들 뵐 낯이 없다. 단군 할아버지의 모습은 더욱더 멀어져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