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은호(구교환)는 고속버스에서 실수로 자기 자리에 앉은 정원(문가영)과 나란히 앉아 고향으로 향한다. 예기치 못한 일로 운행이 중단된 버스에서 내리게 된 정원은 은호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서울로 돌아가면서 헤어지지만 은호가 우연을 가장해 정원이 아르바이트하는 곳을 찾아가면서 둘은 점차 가까워진다. 오래도록 친구로 남고 싶어 하는 정원과 영원히 친구이고 싶지만은 않은 은호의 날이 서서히 쌓여가며 새해를 맞이한 두 사람은 어렵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이 된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난 뒤 2024년, 베트남 호찌민발 인천행 비행기 안에서 마주친 은호와 정원은 태풍으로 이륙이 취소되면서 여유로운 해후의 시간을 갖는다. 이제는 웃는 얼굴로 마주 앉아 추억으로 남은 지난날을 떠올리는 은호와 정원. 첫 만남에서부터 사랑하게 되기까지의 기억은 어렵지 않게 떠오르는데 정작 헤어지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쉽사리 생각나지 않는다.
배우이자 연출자인 김도영 감독의 <만약에 우리>는 류뤄잉의 소설 <춘절, 귀가>를 원안으로 삼은 유약영 감독의 중국영화 <먼 훗날 우리>를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작이다. 게임 개발을 하고 싶어 하는 은호와 건축사가 되어 집을 짓고자 하는 정원의 꿈이 아직 멀기만 했던 과거는 컬러로, 현재는 흑백으로 교차하는 설정은 원작과 동일하지만 <만약에 우리>의 각색이 두 연인의 이야기를 조금 더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점은 보다 자연스럽게 맞물려 이어지도록 다듬어졌고 실현되지 못하는 꿈과 생활고, 취업난이라는 현실의 벽에 맞부딪힌 연인의 마음이 어떻게 서로에게 소홀해지고 멀어져가는지가 구체화된 에피소드와 대사를 통해 현실감 있게 드러난다. 영화는 전반에서 로맨틱코미디, 후반에서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뚜렷하게 나누어 드러내는데 두 주연배우인 구교환과 문가영의 연기가 세월을 아우르기도 하는 이 전환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무엇보다 로맨틱코미디 구간에서 과하지 않은 슬랩스틱과 애드리브를 허용하며 멜로드라마 구간에서 넘치지 않는 무게감의 균형을 일궈낸 김도영 감독의 세심한 연기 연출과 자연스러운 언어의 대사는 <만약에 우리>에서 가장 돋보이는 지점이다.
연인이란 완전한 우연으로 시작되었던 만남을 한 생애의 운명적 사건으로 키울 수 있는 특권을 가졌던 사람들을 이르는 말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진정으로 사랑을 완성할 수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듯 어렸던 은호와 정원 또한 현실이 사랑으로 침범해올 때 나약하고 예뻤던 사랑을 지켜내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우연히 재회하게 된 은호와 정원이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만약에 우리>는 세월과 함께 지나가버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대의 유물을 이들의 과거와 나란히 한다. 싸이월드 미니 홈페이지, 콤팩트 디지털카메라, MP3 플레이어와 피처폰은 사랑했었던 그때를 마주하고 싶은 어떤 이의 의지만으로 되살릴 수 없는 지난 시간의 흔적들로 이제 추억 저편에 자리한다.
close-up
재회한 연인은 한참을 망설이다 묻는다. ‘그때 우리 만약 그랬더라면.’ 헤어지게 된 이유가 자신의 부족함이나 잘못 때문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필생의 사랑을 놓쳐버렸던 건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 안다고 한들 지금이 달라지지 않을 이들의 헤어짐에서 누구도 나쁘지 않고 누구도 불행하지 않다. 대체로 원작에 충실한 <만약에 우리>는 이 장면에서 원작과 다른 길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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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감독 도이 노부히로, 2021
대학생 무기와 키누는 막차를 놓치고 첫차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다 누구보다 닮은 서로를 발견한다. 프리터로 지내며 동거하게 된 두 사람의 연애는 점차 생활과 현실 속으로 들어서면서 매일의 피로와 방황과 동상이몽 사이에 방치된다. 이들이 찾아낸 한 떨기 꽃 같은 사랑은 홀로 자생하는 것이 아니라 끈질기게 지켜내야 하는 것이었음을 두 사람은 뒤늦게 깨닫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