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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막지 못해 널 사랑하기 때문에
복길(칼럼니스트) 2026-01-01

(STAYC, 2022)

4년 가까이 병을 돌봐주던 주치의가 바뀌었다. 꽤 오래 암을 겪은 그는 자신의 투병 경험에서 비롯된 염세적인 태도와 직설적인 어조로 환자를 대했고, 때문에 병원 내에서 괴팍한 의사로 명성이 자자했다. 나 역시 진료 초기에는 그의 말에 자주 상처를 받았었다. “병이란 것이 원래 통증의 고통보다 인내의 고통이 더 큰 것”이라며 약 증량 요구를 거부하거나, 투약으로 인한 외형 변화에 대한 걱정에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관에 들어갈 때 뭐 입을지 걱정하는 꼴”이라며 혀를 차는 식이었다.

더 나빠지거나 덜 나빠지는 지겨운 순간들이 교차하며 하나의 세월을 만들었다. 멱살 한번 잡아 흔들고 병원을 옮길까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의사의 그 한결같은 괴팍함에 많은 것을 의지했다. “저는 ‘건강이 최고’란 말이 싫어요. 그걸 평범한 인사말로 쓰는 건 더더욱 참을 수가 없어.” 세상사의 모든 근심을 ‘건강’이라는 다소 공평한 자원으로 메워주는 그 상투적인 표현. 목에 박힌 생선 가시가 쌀밥 한 숟갈에 넘어가듯, 지난날 그 인사에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았던가? 하지만 의사가 아닌, 환자로서 그가 종종 드러내던 분노는 무척 정당한 것들이었다. 맞아요, 선생님. 건강이 최고라는 말 뒤엔 꼭 건강 잃으면 다 소용없다는 말이 따라오잖아요? 그렇다면 이미 건강을 잃어버린 우리는요? 우린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며 소용없는 세월을 보내란 건가요?

젊은 환자들은 병을 알게 되면 자신의 끝을 쉴 새 없이 가늠한다. 나의 경우엔 그것이 사랑이었다.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환자인 내 모습을 누가 사랑해주지’ 하는 거울 속 슬픔보다 더 크게 밀려오는 감정은 배신감이었다. 사랑은 보통 ‘두 사람이 함께 정착한다’라는 내러티브를 갖고 있다. 그런데 아프다는 건 이미 홀로 정착한 하나의 결말이다. 욕창으로 썩어가는 피부와 피가 담긴 주머니를 내보이며 하는 제안은 상대에겐 부당하기에, 나는 나의 결말에서 누군가의 잘못된 선택을 기다려야만 한다. 아마 누구도 오지 않을 것이다. 아직 결말이 없는 이들에게 느끼는 배신감, 그것이 나의 ‘끝’이 됐다.

아프기 전엔 늘 사랑을 ‘질주’에 비유했다. 진부하지만 달린다는 것보다 강렬한 사랑의 심상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DJ DOC를 가장 대중적인 힙합 그룹으로 만들어준 불후의 명곡 <Run To You>와 지금의 BTS를 있게 한 ‘화양연화’ 시리즈의 서막 <RUN>을 떠올려보라. 곡 속에서 그들은 무언가가 나를 가로막고 있어도, 두발에 상처가 가득해져도 ‘너’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2022년 발매된 STAYC의 <RUN2U>는 그런 ‘질주의 사랑관’에 정점을 찍은 곡이다. 이 곡은 내가 불타도 좋으니, 네가 있는 곳이라면 태양 속이라도 달려가겠다는 무서운 선전포고이며,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잃어도 너를 원망하지 않겠다는 무모한 맹세다. 바이크로 요란한 튜브 속을 달리는 사이버펑크적인 뮤직비디오를 보면 도통 어디로 가는 건지 알 수 없어 그 공포는 배가된다.

하지만 달리기의 본질을 ‘어딘가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곳을 벗어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그저 ‘널 사랑하기 때문에’ 달린다는 이에게 ‘사랑’이란 곧 탈출의 명분이자 엔진이 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달리기를 사랑에 비유한 노래들이 드러내는 아픔은 대부분 ‘이탈’의 통증이다. 다시 한번 DOC와 BTS의 노래를 떠올려보라. 왜 그들이 드러내는 상처와 고통을 상대가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들은 사랑을 위해 자신이 자학적인 헌신을 하고 있다고 호소하지만 실은 그냥 달려야만 하고, 달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건강하지 않고, 정상적이지 않으며, 자신의 상태에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끝끝내 ‘너’라는 목적에 닿아서 이 노래가 끝나더라도 그들은 자신이 향할 사랑의 위치를 끊임없이 갱신하면서 계속해서 달릴 것이다.

이런 노래들은 ‘건강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다’는 내 사랑의 종말론을 비웃는 폭주족 같다. 야, 사랑이란 말이야 최선을 다해 ‘나’를 벗어나려는 의지야. 피 주머니가 터지고, 고름이 사방에 튀더라도 그냥 달려야 되는 거야. 그렇게 쟁취한 사랑이 삶의 증거라니까? 식사 시간이 끝난 후 병원에는 링거 대를 끌고 정처 없이 떠도는 환자들로 가득하다. 수액을 실은 바퀴는 어떤 궤적도 만들지 않는다. 나는 목적도 방향도 없는 그 증거로서의 산책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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