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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담백한 형식에 스며든 젊은이들의 초상, <슈퍼 해피 포에버>
배동미 2025-12-25

큰 창으로 바다가 보이는 호텔. 흰 티셔츠를 걸친 사노(사노 히로키)와 전통복을 입은 미야타(미야타 요시노리)의 뒷모습이 보인다.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은 바닷가 이즈 지역으로 여행을 왔다. 시원한 파도 소리와 함께 매미 울음이 들려오는 여름날의 여행은 누구든 기분을 들뜨게 할 테지만, 사노는 무슨 이유인지 가라앉은 모습이다. 동행한 친구에게 말을 거는 법이 없고 무표정하기만 하다. 주인공을 닮은 카메라는 정적인 태도로 클로즈업을 자제하며 거리를 두고 인물을 담는데도 어느새 아슬아슬한 감정이 들게 한다. 홀로 바닷가를 걷던 사노는 우연히 만난 한 가족에게 불쑥 다가가 “빨간 모자, 아드님 건가요?”라며 무례하게 묻고, 아내 나기(야마모토 나이루)를 찾는 전화를 받고는 휴대전화를 바다에 던져버리기 때문이다.

<슈퍼 해피 포에버>는 사노의 알 수 없는 행동을 설명하길 미루며 관객의 궁금증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특히 그가 잃어버린 빨간 모자에 집착하는 모습은 처음엔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사노는 해안가에서 만난 아이의 빨간 모자를 의심한 데 이어, 호텔 프런트로 찾아가 빨간 모자를 잃어버렸다며 찾아달라고 요구하는데, 모자를 잃어버린 건 무려 5년 전 일이다. 알고 보니 이 남자는 죽은 아내가 5년 전 잃어버린 빨간 모자를 찾고 있었다. 그가 찾고 싶은 건 모자일까, 아내와의 시간일까.

<슈퍼 해피 포에버>는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처럼 어딘가 고장나버려 주변을 고려하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한 남자를 비춘 다음 시간을 거꾸로 돌려 그 원인을 추적한다. 이창동 감독에게 기차가 거꾸로 가는 영화적 트릭이 필요했다면, 이가라시 고헤이 감독은 패닝이란 담백한 카메라 운용법으로 시간의 주름을 통과한다. 베트남인 호텔 직원 안(호앙 느 꾸잉)이 객실들을 청소하며 흥얼거리는 노래 <Beyond the Sea>를 우연히 들은 사노는 문에 털썩 주저앉아 감상에 잠긴다. 이때 카메라가 천천히 패닝하면서 영화는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추억이 얽힌 노래가 종종 우리를 단숨에 과거의 기억과 기분을 되살리듯 영화는 음악과 함께 패닝으로 관객을 사노와 나기가 처음 만난 날로 데려간다.

카메라가 고개 돌리길 멈추면 사노와 미야타의 대화에서 언급될 뿐 끝내 얼굴이 감춰졌던 나기가 건강하고 산뜻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노가 기대어 앉은 체크아웃 무렵의 어둑어둑한 호텔은 나기의 체크인으로 생기를 얻는다. 나기는 동행하기로 한 친구가 할머니 임종 때문에 못 온다는 소식을 듣고도 지도 한장을 펴들고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는 밝은 인물이다. 이즈란 여행지와 그곳에서 마주친 모두에게 마음을 활짝 여는 그는 주파수가 잘 맞는 사노와도 조우한다.

담백한 형식에 스며든 젊은이들의 초상

<슈퍼 해피 포에버>의 미덕은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형식만으로 긴장감을 높이고 시간을 넘나드는 마술을 부린다는 점 외에도 청년세대의 불안을 공기처럼 세세하게 흩뿌려놓았다는 데 있다. 영화는 나기와 사노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낭만적으로만 그리지 않고 두 사람에게 스며들어 있는 경제적 위기감과 불투명한 지위를 은은하게 드러낸다. 첫 식사 자리에서 나기와 사노, 그리고 미야타가 생업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불일치를 털어놓는 신이 있다. 사진작가 나기는 구제 옷가게에 출근해 생활비를 충당한다고 밝히고, 사노는 재활용 업체 직원이지만 요리 일도 하고 있다고 언급된다. 그리고 간호사 미야타는 마음 깊은 곳에 작가의 꿈을 품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래서인지 첫 데이트에서 나기와 사노 두 사람이 자주 내뱉는 말은 “비싸다”와 “안 비싸다”이다. 첫 식사 자리는 맛에 관한 토론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이게 1800엔이야”라는 대화를 나누게 만든다. 사노가 구제 옷가게에서 1천엔을 주고 빨간 모자를 구입하고, “값도 쌌고”라면서 더 잘 어울리는 나기에게 선물하겠다고 말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클럽에서 음악에 몸을 맡긴 채 담배를 피울 때 나기가 300엔을 들여 뽑기로 뽑은 작은 피규어는 “비싸다”, “안 비싸다”란 얘기로 번진다. 클럽을 빠져나온 젊은 남녀는 로맨틱한 키스 대신 편의점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운다. 사랑이 피어나는 첫 순간만큼은 돈과 무관한 걸까. 두 사람은 서로의 컵라면을 바꿔 먹으며 “맛있다. 그저께도 먹었는데”라며 웃음을 짓지만 그 말을 곱씹어보게 된다.

<슈퍼 해피 포에버>는 청년들의 불안을 껴안은 채 두번의 시간 여행을 감행한다. 나기를 상실하고 비틀거리는 사노를, 자신의 죽음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여름날의 나기를, 나기가 세상을 떠난 지 모른 채 그의 모자를 쓰고 자기 삶을 꾸려가는 호텔 직원 안을 고요하게 좇는다. <슈퍼 해피 포에버>는 현재와 과거, 다시 현재를 의식적으로 포개며 과거는 그 순간 끝나버리는 게 아니라 현재에도 다양한 형태로 남아 영향을 미친다는 걸 강조한다. 언젠가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글쓰기의 불멸성을 이야기하며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마음을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죽으면 완전히 사라진다고 여기는 사회는 거의 없습니다”(<글쓰기에 대하여>)라는 비유를 든 적 있다. 비슷하게 나기는 영화 속 인물들에게 슬픔의 감정과 모자라는 물질로 남는다.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 그를 만난 관객에게도 그리움이란 영화적 정동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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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