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가족이야.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꾸만 전투에 참여하려는 아이들에게 제이크 설리(샘 워딩턴)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제이크의 이 단언은 <아바타: 불과 재>(이하 <불과 재>)가 지닌 철학의 근원이며, 왜 <불과 재>가 <아바타: 물의 길>(이하 <물의 길>)의 단순한 후일담이 아니라 지금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로 읽히는지를 알려준다. 다만 이에 대한 설명을 꺼내기 전에, <불과 재>를 말하며 3D 기술과 각종 시각효과의 신비를 제치고 이 영화의 ‘이야기’를 따지는지부터 적어야 할 것이다. <아바타>가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바타> 시리즈의 핵심을 서사로 여기는 의견은 드물었다. 그보다 <아바타> 시리즈는 온갖 영화적 기술의 최전선으로 논해졌고 서사의 측면에서는 “제임스 캐머런은 이렇게 바보 같은 서사를 진행한 적이 없다”(정성일 영화평론가, <씨네21>738호)라고 박한 평가를 받았다. <불과 재>에 대한 세간의 반응도 크게 다르진 않아 보이며, 실제로도 이야기의 골자는 익숙하다.
<아바타>가 그랬고 <물의 길>이 그랬듯, 인간들이 개발의 야욕으로 판도라 행성을 차지하려 들자, 원주민인 나비족은 이에 항거한다. 저항 세력의 중심엔 인간 해병이었으나 현재 나비족으로 사는 제이크가 있다. 그는 나비족의 우두머리(토루크 막토)로서 지니는 전쟁의 책무와 가족의 안위부터 지켜야 한다는 가장의 의무를 짊어진다. 그러나 과거 제이크의 상관이었던 마일스 쿼리치(스티븐 랭) 대령이 집요하리만치 제이크의 가족을 위협하면서 상황은 단순해진다. 나비족과 함께 싸우는 일이 곧 가족을 지키는 일임을 깨달은 제이크가 전쟁의 전면에 나서고 판도라 행성 대 인간 문명의 대전투가 발발한다.
<불과 재>는 나비족 대 인류라는 이항대립적 선악 구도에 몇 가지의 교란을 계속하여 일으킨다. 우선 쿼리치 대령은 <아바타>에서 인간으로 죽었지만, <물의 길>에서 인간 시절의 기억을 이식한 나비족의 신체로 부활하여 여전히 인간의 편에 서는 모호한 정체성의 소유자다. 더하여 쿼리치 대령은 호전적이고 약탈을 즐기는 나비족, 망콴족(재의 부족)의 우두머리 바랑(우나 채플린)을 설득하여 세력을 키웠다. 인간에게 협력하는 나비족이 생겨나며 이항대립의 구도는 더 희미해진다. 더불어 <불과 재>의 서사를 가장 열렬히 움직이는 자는 인간 소년 스파이더(잭 챔피언)다. <물의 길>에서 등장한 스파이더는 인간 시절 쿼리치 대령이 낳은 아이로, 신생아 때부터 설리 가족의 손에 길러지며 사실상 나비족의 일원으로 살고 있다. 그는 <불과 재>에서 나비족과 인간의 경계를 흩트리는 주요 장치로 다뤄지며, 제이크가 스파이더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고심하는 대목이 작중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불과 재>가 쿼리치 대령, 망콴족, 스파이더 등을 통해 나비족과 인류 사이의 서사적 층위를 확장하고 민족주의에 기댄 선악 구도를 다소 비틀었다고 하여, <불과 재>가 <아바타>나 <물의 길>보다 더 나아간 작품이라고 할 순 없다. 첫째로 앞서 말했듯 <아바타> 시리즈는 서사보다 기술의 영역에서 상찬받아왔고, <불과 재>는 이전 시리즈보다 품질이 높긴 하되 더 독창적이고 특별하다고 할 만한 3D 기술을 선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만큼 서사의 부피를 키웠다고 해서 <불과 재>가 기존 영화보다 진일보한 점을 찾기가 여전히 어렵다는 점이다. <아바타>가 개봉했을 때부터 꾸준히 언급되던 서부극 장르와 비교한다 해도 <불과 재>가 미국의 개척 정신을 비판하는 방식은 근래의 서부극인 <퍼스트 카우><파워 오브 도그>와 같은 일련의 영화를 차치하더라도 20세기 중엽 <아파치 요새>등이 치렀던 면밀한 신화의 해체보다도 뾰족하지 못하다.
요컨대 <불과 재>는 기술적으로나 서사적으로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점이 바로 <불과 재>가 지금 시대에 필요한 영화의 본령임을 증명한다. <불과 재>는 현대 자본주의 상업영화의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서, 일부러 모든 것의 퇴행, 거칠게 말해 영화사의 과거 지향적 복원을 주창하는 영화로 의미화된다. 앙드레 바쟁은 서부극을 두고 영화의 기원과 거의 유일하게 맞닿은 장르라고 말했다. 이를 바꿔 말하면 <불과 재>는 영화의 기원에 다가서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론으로 서부극의 틀을 활용했을 뿐이다.
의도적인 과거 지향으로서의 <아바타>
기술의 측면에서 다시 살펴보자. <아바타>가 취했던 3D영화의 혁명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제임스 캐머런이 야심 차게 도전한 3D영화의 미래는 극장의 현재가 되지 않았고, 외려 3D영화의 형식은 <아바타> 시리즈의 독점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게 됐다. 그럼에도 제임스 캐머런은 <물의 길>과 <불과 재>를 통해 계속하여 3D영화라는 장인의 고집을 놓지 않고 있다. 이는 “<불과 재>에 생성형 AI를 쓰지 않았다”라며 더 진화한 최신 기술을 거부하는 제임스 캐머런의 현재 태도와 기묘한 형용모순을 낳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 애초부터 3D는 1950년대 할리우드에서 성행했던 기술이었다. <아바타> 시리즈는 처음부터 최신 기술을 표방하며 과거로의 지향성을 지닌 모순의 결정체였던 셈이다.
기술에 대한 제임스 캐머런의 욕심은 늘 흥미로운 아이러니를 불러왔다. 일찍이 듀나는 “기계문명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도 그에 대한 매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캐머런 특유의 아이로니컬한 태도”(<씨네21> 734호)를 짚었다. 판도라 행성과 나비족에 대한 진부한 SF적 상상력보다, 지구인들의 기계를 그린 제임스 캐머런의 개성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한 것이다. 3D영화에 대한 제임스 캐머런의 집착도 재차 비슷한 역설을 낳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수록, 지금 우리가 있는 곳과 다른 곳의 모습을 그리려 할수록 애초의 목적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제이크의 아내인 나비족 네이티리(조이 살다나)는 인간 군대의 폭탄을 화살촉에 매달아 싸움에 임하고, 나비족의 삶을 추구하는 스파이더는 인류가 매몰된 유전공학의 귀한 연구 자료가 되어 실험대에 오른다. 나비족이 제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그들이 인류의 기술에 복속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나비족은 대체 이 기술 발전의 예정된 비극 속에서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달리 말해보자, 제임스 캐머런의 말처럼 생성형 AI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영화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순수의 시대로
기술의 발전을 역사의 진보, 혹은 시간의 선형적 진행이라고 바꿔 말한다면 <불과 재>까지 이어진 제임스 캐머런의 연대기는 그 모든 발전, 진보, 진행을 거꾸로 되짚어가는 태초로의 복귀다. 제아무리 최신의 기술을 따라간다 해도, 영화 매체가 최첨단 과학기술의 현주소가 될 수 없음을 <아바타> 시리즈가 (천문학적 돈을 들여) 방증했고 결국 캐머런은 어떤 낡은 것들로의 회귀를 택한 것이다. 즉 <아바타> 시리즈는 지금까지의 영화사를 리부트하여 처음부터 새로 쓰겠다는 야망의 결과물에 가깝다. 당대 최고의 기술을 전시하는 매개로 시작해 점차 이야기에 살을 붙여가며 장르로서 현실 사회를 투영해가는 <아바타> 시리즈의 궤적은, <열차의 도착>으로 시작해 편집을 통한 이야기의 구현 방식을 깨닫고 장르를 발명하여 생명력을 이어오는 영화사와 판박이다. 지금 시점에서 <아바타> 시리즈와 영화사가 그 선형적 발전의 한계를 체감했음도 같다.
이제야 서두에 언급한 제이크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겠다. “이건 가족이야. 민주주의가 아니라”라는 그의 언사는 시대 역행적인 뉘앙스로 <아바타> 시리즈의 지향성을 함축한다. 근현대 정치체제 이전의 다양한 씨족체제를 유지하고, 계약된 사회의 형태를 거부하는 나비족의 원형적 삶은 영화 안팎에서 생성형 AI, 기업형 제국주의의 폐해를 강조하는 제임스 캐머런의 속내와 겹친다. 이 과거 지향의 태도는 빅테크에 종속된 미국 사회와 영화산업의 정세를 부정하려는 충동으로까지 확장된다. <불과 재>의 퇴행은 과거를 향한 혁명이다. 나비족의 정의가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평면적으로 보인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바타> 시리즈가 원하는 바다. 과도하게 복잡해진 현실의 간섭을 거부하는 순수한 공상으로서의 영화적 지대, 그 어떤 체제도 사람을 앞서지 않던 삶의 장소로서 판도라 행성은 존재한다. 이 퇴행들은 끝내, 영화의 미래 역시 우리가 알던 과거에 있음을 말하려는 제임스 캐머런의 거대하고 모순적이며 의도적인 실패다. 그렇게 <불과 재>는 영화의 종막이 쉽사리 거론되는 이 시대에, 앞을 볼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알던 영화로 애써 ‘돌아가자’라는 손길을 관객에게 내밀고 있다.
Key points!
아바타 프로그램
인간과 나비족의 유전자를 배합해 만든 나비족 형태의 아바타에 인간의 정신을 연결해 조종하는 프로그램. 이로써 배양된 나비족 신체는 혼합 유전자인 터라 진짜 나비족과는 손가락 개수 등에서 조금씩 다른 모양을 지닌다.
판도라 행성
폴리페모스 행성의 위성으로 지구와 약 40조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지구와 유사한 환경을 지녔지만, 인간에겐 유독한 가스가 공기 중에 떠돌고 있어 인간은 의무적으로 호흡용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이 법칙을 위반하는 사례가 <불과 재>의 핵심 서사가 된다.
에이와
판도라 행성의 신적 존재로, 온갖 만물에 깃들어 판도라 행성의 생명을 연결하고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신경의 총체이기도 하다. 제이크 설리의 정신을 나비족 아바타에 옮겨주어, 제이크를 온전한 나비족으로 만들기도 했다. 인간인 그레이스 박사(시고니 위버)의 아바타에게서 태어난 제이크의 양딸 키리(시고니 위버)와 특히 강력한 소통을 이룬다.
쿠루
나비족의 뒤통수에 있는 신경다발로, 판도라 행성의 다른 생물들과 물리적으로 접촉하면 직접적인 신경 교류가 일어난다. 이를 통해 비행 생물 이크란과 수중생물 일루 등을 길들이는 장점이 있지만, 외부 공격에 무척 취약한 급소이므로 평소엔 주위에 머리카락을 땋아 보호한다.
툴쿤
고래와 비슷한 생김새에 독자적 언어 체계를 지닌 판도라 행성의 고지능 생명체다. 오래전 동족 내 혈투로 인해 종족 전체가 비폭력주의를 고수하는 상황이다. 이중 파야칸이란 이름의 툴쿤은 제이크의 둘째 아들 로아크(브리튼 돌턴)와 각별한 우정을 유지한다.
암리타
툴쿤의 신체에서 나오는 황금빛 물질로 인간의 노화를 완전히 막는 효능을 지니고 있다. 인류는 판도라 행성을 침탈하고 툴쿤을 포경해 고액의 암리타를 채취하려 혈안이며, 이 탓에 <불과 재> 속 나비족과 인류의 전쟁이 심화한다.
토루크
판도라 행성에서 가장 강력한 힘과 위상을 지닌 비행 생물로, 마지막 그림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토루크를 길들인 자는 토루크 막토로 불리며 나비족의 전적인 구원자로 여겨진다. 제이크 설리는 역사상 6번째 토루크 막토다.
RDA
판도라 행성을 식민지화하려는 인간의 초거대 기업으로, 우주의 자원과 물자를 관리하며 수익을 취하고 있다. 전투, 연구, 광업, 생물 포경 등 다방면에 종사하는 부서로 나뉘어 있다. 나비족의 주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