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2일 금요일 오후 7시30분. 3년 전 개봉한 영화를 보기 위해 이날, 이 시간, 이 동네를 찾은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마음의 여정을 거쳐 극장에 앉아 있을까. ‘필름 블렌딩 카페’ 상영 프로그램의 포문을연 <애프터 양>은 한국계 미국인 감독 코고나다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2022년 당시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백인 아버지, 흑인 어머니, 그리고 입양된 아시아인 딸과 안드로이드 로봇 ‘양’(저스틴 H. 민)으로 구성된 가족이 주인공이다.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비인간 존재와 맺는 관계, 그리고 함께 쌓아 올린 기억의 정체를 추적하며 인간의 조건에 대해 다시금 묻는다. 이 작품을 ‘나를 돌아보는 영화’로 추천한 송경원 <씨네21> 편집장이 모춘 무비랜드 극장주, 그리고 30명의 관객과 마주 앉았다. 유난히 아담한 극장 규모 덕분에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의 거리는 그 어느 GV 때보다도 가깝게 느껴졌다.
‘나를 돌아보는 영화’의 목록에 SF 장르가 놓인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기본적으로 SF란 미래의 기술을 빌려 현재 인간의 조건을 질문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날의 대화는 안드로이드인 양이 가진 특별한 기능, 바로 ‘기억’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양의 메모리 뱅크에는 백과사전식 정보도 담겨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내부 카메라가 포착한 초 단위의 일상의 파편들이었다. 기계적인 데이터의 나열인 ‘기록’과 그것을 유의미한 서사로 엮어낸 ‘기억’의 차이를 곱씹어본 다. 기록이 사실과 경험에 기반한 건조한 재료라면 기억은 그 흩어진 점들을 연결해 하나의 별자리로 만드는 창조적 행위이자 스스로 그려 나가는 인생의 경로다. 양이 단순한 데이터 저장소에 머물지 않고 자 신을 둘러싼 세상을 고유한 ‘기억’으로 재구성했을 때, 그는 의심할 여지없는 인간이자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송경원) 그런 의미에서 <애프터 양>이 이 겨울에 잘 어울리는 이유는 영화의 계절감과는 무관하다. 한국의 시린 겨울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의 겨울까지 데워줄 온기를 품고 있는 이 영화는, 안드로이드와 인간이 함께 꾸는 꿈이자 SF가 도달하고자 하는 유토피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경원 편집장이 꼽은 명장면은 아버지 제이크(콜린 패럴)와 양이 차를 마시는 순간이다. “평생 차를 연구한 제이크 못지않게 양 또한 차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양은 데이터 너머, 차를 마시며 느낄 수 있는 실재적 경험과 그 속에 담긴 풍미를 갈망한 다. 이는 어두운 극장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과도 묘하게 겹친다. 우리는 영화라는 가상을 통해 타인의 삶을 간접 경험한다. 비록 직접 겪은 일이 아닐지라도 간접경험을 통해 획득한 감정과 성찰은 여전히 자신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인간이 오장육부로 느끼는 감각과 안드로이드가 전기 신호로 느끼는 감각. 그 선명함과 해석의 깊이에 차이가 있을까. 무언가를 마시거나 소화할 수 없는 양이 ‘세상의 전부’가 담겨 있다는 차의 맛을 알고 싶어 했듯, 우리는 영화를 통해 결코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마저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려 한다. “<애프터 양>이 찬미하는 ‘인간됨’의 정체는 흩어지는 일상의 순간들, 경험해보지 못한 너머의 세계마저 붙잡아 기억해 고유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지에 있다. 때론 내용물이 아니라 그에 이르는 경로와 과정에 진실이 깃든다.” 한편의 영화에 깊게 몰입하는 시간과 한잔의 커피와 함께 깊은 사유에 잠기는 시간이 얼마나 닮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