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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로드리고 세희의 초소형 여행기] 마음이 지칠 때면 산이 그리워진다
글·사진 박 로드리고 세희(촬영감독) 2025-12-25

온갖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잠시 떨어져 고요한 산길을 걷다보면 많은 것들과 결별하게 된다. 근심과 걱정, 불안한 미래, 사회적 가면, 그리고 모든 경쟁을. 낮은 땅에서 만나지 못할 드넓은 풍경이 주는 황홀감은 덤이고. 피톤치드에 둘러싸여 폭신한 흙길을 걷다보면 머리엔 좋은 생각이 차오르고 마음은 위안을 얻는다. 그러니 상처 많은 서울살이를 견디려고 간간이 북한산에 오르고, 인왕산으로 밤 산책을 간다. 그래도 해소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많이 지쳤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멀고 큰 산에 가야 하고. 지리산이나 한라산으로. 그마저도 부족할 때는 히말라야로.

언젠가 히말라야의 쿰중으로 긴 트래킹을 떠났었다. 이름 모를 트래커 여남은 명을 실은 작은 비행기를 타고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루클라 공항에 도착했다. 평지가 없어 완만한 경사길에 만들어진 짧은 활주로는 한쪽 끝이 그냥 낭떠러지였으니,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평범한 풍경을 곡예비행으로 만드는 곳이었다. 하루 평균 두대의 비행기가 다녀간다니 그마저도 귀한 풍경이었고, 12월의 쿰중은 무척 한산했고 맑아서 눈이 시린 풍경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나는 조금 걷다 멈추어 둘러보고, 다시 걷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걷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게, 느림보처럼. 그래도 괜찮았다. 여행은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내가 주인인 시간이니까. 애초에 짜놓은 스케줄이 없었고 정보도 적었다. 한 걸음씩 내딛다보면 어딘가엔 도착하겠지. 세상에 나 하나 재워줄 곳 없으랴. 여행지에 대한 사전 정보가 너무 많으면 그저 그런 여행이 되고 만다. 모두의 피드백을 반영해서 영화를 만든다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영화가 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여행도 창작의 시간이다.

산길을 걷다 드문드문 만나는 마을은 지독하게 평화로워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무엇을 얻으려 평화를 반납하고 그토록 바둥거리며 살아간단 말인가. 평화의 일원이 되어 마을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것이야말로 히말라야에서 누리는 가장 큰 호사이리라. 트래커가 배정받는 방 한칸은 그저 합판으로 벽을 세우고 아무런 마감도 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였다. 나무로 틀을 짠 창문이 하나 있고, 자그마한 침상 하나, 오래되고 무거운 침구 한채, 타다 만 초 두어개가 놓여 있는 게 전부인. 여러 칸 너머 누군가의 알 듯 말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그러나 매일 밤 숙소를 옮겨야 하는 트래커가 하룻밤 묵어가기엔 충분하다. 맥주를 마시지 않아도, 멜라토닌을 먹지 않아도 잠이 잘 올 것 같은 피로를 안은 사람들이니까. 온 방 가득히 채워지는 부드럽고 축축한 숲 냄새 속에서 트래커의 하루가 저물고,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새벽 햇살이 이 아늑한 방에서 떠날 시간이라고 예고하면 트래커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보통은 그렇다.

나의 여정도 보통의 풍경과 함께 열흘 남짓 흘렀을 때였다. 새벽에 잠깐 깼는데 창밖으로 예고에 없던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까만 밤이 하얗게 채워질 정도로. 폭설은 그칠 기색 없이 온종일 내렸다. 전기도 없고, 스마트폰도 안 터지고, 읽을 책도 없는 곳인데. 세상이 온통 뿌연 가스로 가득 차 있었으니 산책조차도 언감생심이었다. 바쁘게 살았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하루 잘 쉬라는 하늘의 뜻일까. 뜨거운 물을 채운 물통을 끌어안고 침낭 속에서 뒹굴거리며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날도 눈이 그치지 않았다는 것. 숙소 주인은 이곳에서 보기 드문 폭설이라고 했다. 아주 잠깐 하늘이 갤 때면 어김없이 헬기가 날아들어 고립된 트래커들을 실어날랐다. 비용을 물어보니 아주 비쌌는데, 서양인 트래커는 대부분 헬기 보험에 가입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보험이 있는 줄도 몰랐다.

다행히 하루가 더 지나자 하늘이 쾌청하게 갰다. 세상은 리셋된 것처럼 눈 이불을 뒤집어쓴 평등한 풍경이었고, 모든 길은 지워져 있었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길 떠날 채비를 했다. 나침반을 들고 눈 위를 더듬어서 가볼 요량이었다. 일단 시도해보자. 너무 위험하면 내가 만든 발자국을 따라 돌아오지 뭐. 마을 어귀에 서서 길이 지워진 둔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었고, 아무것도 가늠되지 않았다. 마치 나의 암울한 미래를 보는 것처럼. 용기를 내어 미지의 세계에 발자국을 남겼다. 한 걸음씩 천천히.

살아서 돌아가려면 걸음 하나하나에 집중해야 했다. 많은 감정들이 내 안에서 요동쳤다. 너무 두렵고 아주 외로웠다. 그 와중에 텅 빈 계곡에선 끊임없이 헬리콥터가 날아드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뒤돌아보니 내가 만든 발자국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작고 위태로웠으나 그것은 길이라 할 만했다. 순전히 내가 만든. 환희가 몰려왔다. 다시금 힘을 얻어 적막한 산속을 홀로 헤쳐나가는데 저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 둘이 보였다. 몇년 만에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다.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나의 방향이 틀리지 않았구나. 고쿄에 고립되었다 내려오는 노련한 가이드와 트래커였다. 그날 내가 길에서 만난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제 그들이 지나온 길을 따라 올라가면 되었다. 그들은 내가 지나온 길을 따라 내려갈 것이었고. 길이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구나. 누군가 다녀간 흔적을 다른 사람이 다시 밟아 다져지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겨 눈 한 덩이를 베어먹었다. 마르고 뜨거운 입속에서 눈보라가 치는 것 같았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맛이었다. 이미 체력이 많이 축나 있어 해가 뉘엿뉘엿할 무렵에야 불 켜진 고쿄 마을이 보였다. 그때쯤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두워지면 큰일이었다. 눈앞에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너무 힘들었지만 숨 돌릴 새 없이 걸음을 재촉했다.

마을에 단 하나 있는 숙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해는 이미 꼴까닥 넘어가고 없었다. 거지꼴을 한 나는 입구에 서서 숨을 고르며 안도감을 만끽했다. 살아서 여기까지 왔구나. 여주인과 아들이 황망하게 달려나와 내 짐을 받아주었다. 오늘 누군가 들어설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 나이가 지긋한 여주인은 미처 준비하지 못한 방을 부리나케 정리해서 내어주며 웰컴 주스를 가져왔다. 멸균 팩에 든 망고주스를 뜨겁게 데운 것이었다. 그 또한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환대의 맛이었다. 아들은 벗어놓은 내 등산화에 아무렇지 않게 손을 쑥 집어넣어 확인하더니 많이 젖었다며 가져가서 말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이 날씨에 정말 너 혼자서 길을 열고 올라온 것이냐고. 나는 우쭐해서 답했다. 그렇다고. 지독하게 길고 힘든 하루였다고. 그리고 미치도록 아름다운 하루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