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시리즈 대서사의 중핵으로 나아가는 <아바타: 불과 재>는 아름다운 해양 생태에 대한 모험과 탐험을 안내하던 전편과 달리 보다 묵직하고 차분한 무게로 이어진다. 네테이얌(제이미 플래터스)의 죽음 이후 설리(샘 워딩턴)의 가족은 운명처럼 짊어져온 갈등과 고통을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이제 판도라 세계는 다층적으로 확장되었다. 우주 행성을 식민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제국주의적 태도, 나비족과 인간으로 분열된 극렬한 전투, 가족 안에서도 온전히 통합하기 어려운 서로 다른 가치관,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흡수되지 못한 스파이더(잭 챔피언)까지 모든 충돌은 결국 질문의 형태를 띠고 관객에게 사유를 자극한다. 판도라는 현실 세계의 무엇을 반영하는가. <아바타> 시리즈의 주축을 현실로 이뤄낸 제임스 캐머런에게 물었다.
- 이번 <아바타: 불과 재>에서는 바람 상인 부족, 재의 부족 등 새로운 부족이 등장한다. 이들을 고안할 때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나. 또 지금까지의 판도라 부족들과 어떤 차이가 있나.
바람 상인들의 가치나 체계는 우리가 이전에 만난 나비족과 매우 유사하지만 정체성 자체가 유목민이기 때문에 생활양식에서 큰 차이가 드러난다. 대부분의 나비족은 특정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 숲속에 전통 영토를 둔 채 그들 고유의 시간과 역사를 이어간다. 반면 바람 상인들은 어디든 간다. 본거지가 없는 셈이다. 이들의 진짜 집은 배다. ‘곤돌라’라고 불리는 이 배에는 두 종류의 생물체가 있다. 화물과 거래품을 실은 곤돌라를 끌어올리는 거대 생명체와 바람의 방향을 제어하는 바람가오리. 이 부족이 수천년에 걸쳐 정교하게 발전시킨 시스템이다. 반면 재의 민족은 완전히 다르다. 화산 폭발로 고향 땅이 재에 묻혀 파괴되면서 그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다. 숲이 파괴되고 스스로 사냥하거나 식량을 재배하는 능력까지 상실했다. 이들은 약탈을 자신들의 생존 방식으로 택한다. 생존을 위해 다른 부족의 영토를 습격하고 물자와 식량을 약탈한다.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노예로 삼기도 하다. 따라서 재의 민족은 판도라 세계관에서 하나의 원칙을 보여준다. 나비족이 선천적으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는 것. 나비족이 어떤 가치관과 신념 체계, 문화에서 자랐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은유한다.
- 선과 악의 경계를 분명히 긋지 않은 것에는 감독의 어떤 선택과 가치관이 반영된 것인가.
일종의 인종차별적인 관념을 깨고 싶었다. 피부색만으로 선악을 판단할 수 있다는 오만함 같은 것. <아바타> 시리즈에서 인간 캐릭터가 모두 선천적으로 악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판도라에 무엇을 하기 위해 왔나, 그게 중요하다. 판도라에서 태어나 나비족과 함께 자란 스파이더는 실제로 나비족의 가치 체계를 지니고 있다. 자연과 야생동물을 보호하고자 했던 해양 생물학자 이안 가빈(저메인 클레멘트) 또한 나비족의 신념에 가깝다. 다만 ‘우리 모두 서로 차별하지 말자’는 순진무구한 메시지를 던지려는 것은 아니다. 하늘 사람들로 인해 아버지와 고향 땅과 아들까지 잃은 네이티리(조이 살다나)를 통해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하늘 사람을 증오할 만한 이유가 충분해 보이는 그는 모든 하늘 사람을 증오할까? 그렇다면 네이티리는 인종차별주의자인가? 네이티리가 증오의 함정에 빠지고 있는 걸까? 그는 이번 영화에서 내레이션을 로아크(브리튼 달튼)가 맡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증오의 불길은 슬픔의 재만 남긴다”고. 궁극적으로 증오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증오는 슬픔을 일으키고, 또 다른 상실을 불러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시리즈는 묘하게도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공명한다.
- 문득 궁금해진다. 제임스 캐머런에게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 정의해달라.
흥미로운 질문이다. 선함이란 미지의 타인에 대한 공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아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돕는 것은 비교적 쉽다. 사랑하는 가족, 자녀, 부모, 친구, 이웃. 이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건 어떤 면에선 놀랍지 않다. 진짜 어려운 건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같은 마음을 건네는 것이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의 가족과 자녀가 평온하길 바라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인류 보편적인 감정과 안위를 상상하는 것이 선함의 근간이다. 따라서 악이란 이와 반대되는 것을 말한다. 의도적으로 공감의 가치를 외면하고 반하고 따르지 않는 것. 내가 말한 선과 악은 상황마다, 기분마다, 시간마다 달라진다. 우리 중 누구도 100% 선하거나 100% 악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 특히 이번 작품은 <아바타> 시리즈 중 최장의 러닝타임을 기록했다.
영화적 경험을 받아들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 함께 실존하고 이해하길 바랐다. 인간의 삶에서 3시간이란 얼마나 짧은가. 하지만 인생에서 낭비되지 않는 3시간이길 바랐다. 행성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그로부터 모든 가치를 추출하려는 식민지 제국주의적 위협부터 인류의 생존과 가족, 다양한 부족의 이해관계와 마찰. 많은 관객들이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아바타: 물의 길>에서는 스파이더의 비밀과 역사가 공개됐다. 많은 팬들은 <아바타: 불과 재>에서 그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하는데.
스파이더는 <아바타: 불과 재>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의 촉매제가 된다. 모든 사건을 움직이는 인물이자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 스파이더는 인간성을 상징한다. 네이티리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고향을 잃는 동안 엄청난 증오를 품는데 그 증오의 상당 부분이 스파이더를 향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파이더를 좋아하지 않나? (웃음) 스파이더는 정말 멋진 캐릭터다. 설리네 아이들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더더욱 갈등의 중심에 선다. 그가 설리 가족에게 공식적으로 입양된 것은 아니지만 설리 가족의 일원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네이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아바타: 불과 재>에서 설리 가족과 스파이더 사이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분명 복잡하고 다층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