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한 개인의 아픔을 묘사하는 <무국>은 짧지만 강렬한 방식으로 인물의 감정을 전달한다. 말 못하는 아기와 함께 도시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는 엄마의 감정 변화가 인상적이다.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은 진가빈 연출자에게 탈북민 은향의 탄생 과정을 물었다.
-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엄마의 사연을 담고 있다. 어떻게 만들게 됐나.
단편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할 즈음에 탈북민의 고독사와 관련한 기사를 접하게 됐다. 자료 조사를 하는데 제3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국적을 취득하는 과정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고, 현재의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다.
- 엄마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지만 은향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름에 사실 큰 의미는 없다. 어감이 편한 이름을 짓고 싶었다. 제목 역시 처음에는 ‘해피 에버 애프터’로 지었다가 은향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무국’으로 바꾸게 됐다. 탈북민이지만 스테레오타입처럼 묘사하고 싶지는 않았고 엄마라는 정체성에 좀더 집중해서 표현하고 싶었다.
- 2회차 촬영을 했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장면이 알차다.
올해 6월에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7월까지 프리프로덕션 단계를 거친 뒤, 8월 중 이틀에 걸쳐서 촬영을 마쳤다. 그리고 8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후반 포스트를 했다. 2회차이긴 한데 스태프들이 잠을 줄여가면서 도와주었다.
- 현장에서 아역배우들을 컨트롤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은향의 아기는 극 중 의사와 환자의 엄마로 출연한 배우의 실제 아이다. 두 사람이 부부이자 부모이다 보니 현장 이해도가 빨랐고 수월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 은향 역의 김태유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웹드라마 제작할 때 오디션으로 만난 적 있다. 그때 기억해두고 있다가 이번에도 오디션을 보러 왔기에 캐스팅하게 됐다. 워낙 캐릭터와 잘 맞아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프리프로덕션 때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 은향과 닮은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 영화가 은향의 표정 변화에 상당히 주목한다. 영화 전체를 배우의 감정연기로 끌고 가야 하는 면이 부담이 됐을 것 같다.
영화가 은향의 표정 변화에 상당히 주목한다. 영화 전체를 배우의 감정연기로 끌고 가야 하는 면이 부담이 됐을 것 같다.
- 은향의 일상에 개입하는 인물이 두명 있다. 진료를 거부하는 소아과의사는 안경을 벗었을 때와 썼을 때의 얼굴 대비를 통해 악한 얼굴 표정을 부각하려고 한 듯 보이고 가장 극적인 도움을 준 응급실 의사는 아예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다. 두 캐릭터를 대조적으로 표현한 이유가 궁금하다.
영화에서 캐릭터가 지닌 선함과 악함을 명확하게 구분지어 표현하는 걸 선호하지는 않는다. 다만 소아과의사는 처음 캐릭터를 디자인할 때부터 선하고 악하고를 떠나 그저 자기 일을 하는 사람으로 디자인했다. 은향에겐 안 좋을지라도 소아과의사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한 행동일 수 있다. 응급실 의사의 경우에는 얼굴을 보여주는 방법도 고민했지만 촬영을 해보니까 목소리만 등장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일 거라 생각해서 선택했다.
- 은향은 열이 심하게 오른 아기를 치료해줄 병원을 찾지만 어려움을 겪는다. 심지어 도움을 청할 주변 사람도 없는 듯 보여 홀로 고립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의도한 설정이다. 전화로 진료 거부를 당하는 것이 좀 과한 영화적 허용이긴 하지만 은향의 외로움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탈북민과 관련한 문제를 들어보면 금전적인 것보다 이 사회에 완벽하게 섞여 들어가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고립감, 외로움이 더 큰 문제다. 나 역시 비교할 수는 없으나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에 홀로 상경했을 때 느낀 감정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
- 은향의 감정 변화만으로 관객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좀 답답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연출할 때 그 부분을 걱정했다. 어쨌든 러닝타임이 15분 정도로 길지 않고 함축적으로 표현되는 부분이 있으니 원하는 바를 전부 전달하지는 못할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그런데 다른 영화제에서 소개했을 때 어머니 관객들이 보시고는 탈북민이 아니라 엄마라는 정체성에 더 공감해주는 분들이 많았다.
- 은향은 아기 때문에 힘들어할 때 베란다 유리에 붙은 매미를 본다. 매미 소리가 마치 은향의 불안한 내면과 외로움을 대변하는 것처럼 들리는 동시에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관객을 괴롭히기도 한다. 의도한 음향 설계인가.
매미 소리가 짜증을 유발할 때가 있다. 진득한 여름 날씨의 불쾌감을 사운드로도 표현해야겠다는 의도도 있었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부모에게 어떻게 전달될지에 관한 고민도 담고 싶었다. 은향의 신경을 계속해서 건드리는 요소 중 하나로 매미의 울음소리를 집어넣었다.
- 영화 연출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고등학생 때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이후 대학에 진학할 때 극작과에 들어가서 글쓰기를 배우다가 운 좋게 제작사와 연이 닿고 웹드라마 연출까지 맡았다. 처음 연출하게 된 웹드라마는 현재 공개가 미정이고, <무국>을 찍은 후에 영화를 더 배우고 싶어서 내년에 영화과로 재입학할 예정이다.
- 단편영화와 웹드라마 연출 경험을 갖고서 새롭게 영화 공부를 하게 됐다.
극작과에 다닐 때도 사실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계속 전전긍긍했다. 이제는 배우고 싶은 걸 배울 수 있게 됐으니 감사한 마음을 갖고 열심히 다니겠다.
-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지금까지는 서정적인 분위기가 드러나는 작품 위주였던 것 같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B급 감성이 담긴 작품을 만들고 싶다. 사회문제를 다룬 블랙코미디 영화를 재미있게 써보고 싶다. 공룡이 등장하는 이야기도 구상 중이다.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있다.
<무국>
단편 부문 | 진가빈 | 15분 | 드라마 | 12세이상관람가
엄마가 아픈 아기를 간신히 달래고 있다. 여러 병원에 전화를 걸어보지만 진료 허가를 받을 수가 없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았기 때문. 탈북민으로 추정되는 엄마는 자신이 청소 보조로 일하는 소아과의 의사로부터도 진료를 거부당하자 좌절한다. 결국 응급실에 실려간 아기의 진료 등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엄마는 망연자실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