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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성선설을 믿는다, <그 많던 케이크는 누가 다 먹었을까?> 전현지 시민창작자
정재현 사진 오계옥 2025-11-28

영화의 의미는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체험의 교차점에서 발생한다. 이는 관객뿐만 아니라 창작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전현지 연출자가 연출한 <그 많던 케이크는 누가 다 먹었을까?>역시 창작자 개인이 준거집단에서 고민한 내용과 사회 구성원으로서 근심하는 세계의 공통 당면 과제가 합치해 탄생했다. “연년생인 친언니는 수능이 ‘망해서’ 서울대에 간 사람이다. 또 터울이 많이 진 남동생은 남아선호사상이 유독 심한 고향에서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 사이에서 유년기 동안 무작정 관심을 받고자 애썼고, 그때의 상처를 사회생활을 하며 극복했다.” 하지만 전현지 연출자는 어른이 되어 또 한번의 의문을 마주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고통받는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자기에게 위해가 될까봐 최소한의 선의조차 베풀지 않는 모습”을 보고 “군중 속의 개인이 고독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골몰하게 된다. 그렇게 전현지 연출자는 영화의 출발점인 ‘케이크’를 떠올린다. “가족 등 소중한 이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따뜻한 시간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함께 행복을 공유하는 기쁜 날들은 더이상 오지 않는 걸까. 결국 이 영화의 제목인 <그 많던 케이크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사회적 온기를 회복하길 바라는 염원일 수도, 서로에게 애정을 쏟는 성의가 사라진 풍경을 향한 자조일 수도 있다.”

영화엔 극심한 우울증으로 최소한의 인간적 노력마저 방치한 엄마와 그런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막내아들 지우가 등장한다. 자칫 보채는 아이와 무관심한 엄마 모두를 원망하기 쉬운 이야기지만, 전현지 연출자는 “삭막한 세태가 만들어낸 병을 두고 개인을 몰아세우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성선설을 믿는다. 인간은 모두가 선하다. 하지만 세상을 살며 수많은 걸 보고 듣다 보니 누구든 그 선한 본성이 마모될 수밖에 없다.” 또한 전현지 연출자는 관객이 극장 밖을 나서며 “지우처럼 자기 안의 결핍된 아이를 안아주기”를 희망한다. “결국 두 모자는 누운 자세로 서로를 껴안는다. 보통 똑바로 선 두 사람이 상체를 맞댄 포옹을 완벽한 자세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런데 이들은 겨우 자기 몸 하나 누인 불안정한 자세로 끝내 서로를 감싼다. 완벽하지 않은 위치에서도, 몸을 바로 세울 수조차 없는 고단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친절하고 다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다.”

<그 많던 케이크는 누가 다 먹었을까?>

단편 부문 | 전현지 | 11분47초 | 드라마 | 전체관람가

아홉살 소년 지우(민서준)는 늘 배가 고프다. “엄마, 나 배고파”를 외치지만 집 안엔 찬밥뿐이어서 컵라면을 사먹기 일쑤다. 지우는 허기진 배 이상으로 엄마(고경인)의 사랑이 고프다. 우울증으로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엄마는 그저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다. 그런 엄마에게 모처럼 생기가 돈다. 형의 생일이 다가오는 것이다. 엄마는 들뜬 말투와 몸짓으로 케이크를 사오고, 지우는 그런 엄마를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그 많던 케이크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무작정 희망을 낙관하지 않지만, 일상의 작은 노력이 모이면 결국 회복의 가능성만큼은 확실히 담보할 수 있다고 역설하는 영화다. “슬픔의 늪에서 끝내 서로를 구원하길 바라는” 전현지 연출자의 바람이 그 안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