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린 연출자는 학부에서는 시나리오를, 대학원에서는 도시재생학을 전공했다. 그의 석사 전공은 창작자 본인의 연출 취향과 무관하지 않다. 이채린 연출자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가족이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던 중 도시의 발전 방향에 따라 가족이 기능하는 방향을 고민할 수 있을 것 같아” 대학원행을 결정했다. 이채린 창작자의 선택은 연출작 <행복한 가정>의 집필 의도와 자연히 겹친다. “가족의 형태는 저마다 다양하지만 모든 가족에겐 ‘존속(尊屬)은 바꿀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누구든 시간이 흐르면 위 세대 가족 구성원을 부양해야 하는데, 그 의무를 다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때 파생되는 여러 경우의 수를 영화를 통해 고민하고 싶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부양의 의무는 100%의 행복으로만 정의할 수 없는 고민이다. 영화 속 순일의 사정 또한 행복보다는 근심이 더 알맞아 보인다. 하지만 이채린 연출자는 굳이 영화의 제목을 ‘행복한 가정’이라 붙였다. 제목의 두 명사엔 모두 연출자의 의도가 담겨 있다. “순일은 분명 불행하다. 복직한 지 얼마 안된 상황에서 치매로 투병 중인 아버지를 모셔야 하니까. 하지만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는 숏이 드러내듯, 순일에게 아버지는 존재만으로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다. 또한 가정은 ‘가족’ 이외에도 ‘가정’(假定)까지 중의적으로 포함한다. 유년기의 행복한 날들로 돌아갈 수 있다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돼 아버지를 모실 수 있다면, 그래서 가족을 지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순일의 간절한 바람이 담긴 제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일과 다현이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행복할 수 있겠느냐는 기자의 회의에 이채린 연출자는 재차 강한 확신을 내비치며 본인의 삶을 꺼냈다.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FM 라디오의 사연은 실제 우리 어머니의 일화다. 어린 시절 냉장고가 없어 다 녹은 소프트아이스크림을 가족끼리 부침개로 부쳐 먹었다는 일화를 들으며 가족은 함께 모이면 어떤 상황이든 끝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게 됐다. 지금 우리 집도 2주에 한번은 다 같이 모여 고기를 구워 먹는다. 내가 가족 이야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행복한 가정>
단편 부문 | 이채린 | 8분34초 | 드라마 | 전체관람가
순일(최세나)과 다현(김아율) 모녀는 어느 날 각자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동시에 잃는다. 다현은 수학여행을 앞두고 사둔 새옷을 잃어버리고, 순일은 동생 순현(서문석)으로부터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아버지가 기억을 잃어간다는 소식을 듣는다. 오늘의 청천벽력이 각자의 내일을 망칠 것 같은 우려가 모녀 사이를 감돌자 순일은 목 놓아 외친다. “엄마도 못하는 것 많아. 돌아가고 싶은 옛날이 있어.” 이채린 연출자는 “각자 다른 것을 잃고 방황하지만 결국 한집에서 한곳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혈연의 운명”을 <행복한 가정>에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는 “평생 사랑하는 가족에게 나의 모든 삶과 존경을 담아”라는 엔딩크레딧의 문구와도 겹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