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리즈 초반부터 해외로 무대를 확장한 <모범택시3>는 대사의 80% 이상이 일본어와 영어로 이뤄져 있다. 외국어로 합을 맞춰야 하는 과정은 어땠나.
정말 너~무 하기 싫었다. (웃음) 지난 시즌에 김도기 부캐들이 워낙 많은 사랑을 받은 터라 이번에도 새롭게 채색된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나도 대본을 술술 읽었는데 막상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 오니 너무 괴롭더라. 독특한 캐릭터를 강조하면서도 도기의 언어적 능력치를 잘 발휘해야 해서 부담이 컸다. 한 장면도 대충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초반엔 언어와의 싸움이 컸다. 특히 장면이 많이 붙었던 마츠다 역의 가사마쓰 쇼 배우가 현장에서 대사를 많이 변형해주기도 하고, 대사의 끝맺음을 눈빛으로 알려주어서 대화를 자연스럽게 연결해나갈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작품의 게스트인데 모든 것을 섬세하게 살폈다. 감사한 마음이 크다.
- 에피소드마다 도기는 상황에 맞춰 말투, 행동, 호흡을 역동적으로 바꾼다. 이번 시즌에서 선생이 된 도기와 야쿠자와 된 도기, 본래 성격의 도기까지 모두 톤 앤드 매너가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상황별로 캐릭터 차이를 어떤 식으로 파악하나.
대본에 부캐들의 특징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편은 아니다. 상황과 직업 정도의 정보가 주어지면 그 안에서 내가 새롭게 디자인을 한다. 일단 부캐들의 성향이 겹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각자의 도드라지는 이미지가 명확하길 바라서 연기 스타일을 다르게 적용하고 스타일링과 메이크업, 헤어까지도 다르게 접근한다. 그래서 시즌2까지만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털어낸 듯한 느낌이었다. 완전히 소진한 기분이랄까. 근데 또 새 시즌이 시작되니 새로운 게 나온다. (웃음) 연기로 무언가를 거듭 만들어나가는 게 재미있다.
- 자기 안에 있는 것들을 끌어다 쓴다는 것은 결국 평소 주변 사람들이나 일반인들을 많이 관찰한다는 뜻이기도 할까.
맞다. 나만의 라이브러리가 있다. 영상이나 글로 관찰 대상의 내외형적 특징, 인상을 기록해두었다가 그로부터 구체적인 캐릭터를 만든다. 꼭 눈앞에 보이는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기도 한다. 사람들이 어떤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란 걸 알아봐주시면 그게 또 그렇게 반갑다. 일부러 안 들키려고 레이어를 엄청 쌓지만. (웃음)
-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부터 김도기의 화려한 액션이 주요 볼거리로 등장한다. 스모 선수와의 결투, 기차역에서 마츠다와의 주먹다짐, 마지막 료칸에서의 전투까지.
드라마에 심각한 부분과 코믹적인 부분이 있다면 액션은 통쾌함을 터뜨리는 카타르시스가 중요했다. 연출적인 면에서도 그것을 내세워야만 한다고 이해했다. 그렇기에 액션 시퀀스 자체가 길지 않아도 짧은 순간마저 심장을 탁 트이게 해주는 강렬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예를 들어 초반에 일대 다수로 싸우는 장면에서는 펀치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서 액션의 세기를 응축해 보여주고자 했다. 어떤 악당이 나와도 김도기는 쉽게 전복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게 연출 목표였다고 생각했다.
- 대화를 하면서 ‘연출’이라는 말을 여러 번 언급했다. 연출적 시야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렇다. 현장에서 하나의 컷이 모여 신이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때 감독님의 의도대로, 감독님이 현장을 구성하는 대로 작품이 구현될 수 있도록 나 역시 많은 의견을 경청하고 수행한다. 배우로서 그저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보다 연출자의 시선과 관점을 이해하면 한 발짝 앞으로 나서서 할 수 있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현장에 주어지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는 것을 체감하기 때문에 이러한 시선이 더더욱 필요하다.
- 이제훈 안에는 자신이 지향하는 배우의 상이 명확한 듯하다. 반대로 이것만은 원하지 않는다는 모습도 있을까.
배우로서 오랜 시간을 걸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내 필모그래피의 총합으로 나를 이해한다. 그렇기에 이제 연기는 기본이 되었다. 연기적 기대나 호기심 외에 사람들이 내게 무엇을 더 궁금해할까? 나는 뭘 더 할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좋은 작품을 선택하는 힘일 것이다. 작품을 보았을 때 “연기 잘하는 건 알겠는데 작품은 재미가 없네…” 하는 순간, 모든 게 치명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배우가 세상을 통찰하는 연기를 보여주는 것만큼 그 감각이 작품 선택으로도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영화를 너무 사랑해서 배우가 된 사람이다. 그래서 계속 하고 싶다. 내가 여유로워지는 순간 팬들은 바로 알아차린다.
- <모범택시>처럼 한 작품이 시즌3까지 거듭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김도기와 오랜 시간을 보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때 주인공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친숙한 면을 계속 이어갈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억울한 피해자가 등장하고 무지개 운수 가족들이 나쁜 놈들에게 복수 대행을 해주는 게 <모범택시>의 공식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모범택시>를 사랑해주시는 이유는 명확하다. 다만 나 또한 어릴 적부터 미국 드라마를 보고 자라면서 시즌을 거듭한 드라마의 근간이 흔들려 실망했던 경험을 여러 번 했다. 따라서 <모범택시>가 앞으로 확장된 즐거움을 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게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는 아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온 방향성과 메시지, 통쾌함과 대리만족 등을 지켜가는 게 더 중요하다. <모범택시>가 계속해 다음 시즌을 내는 것. 나는 그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