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도서
씨네21 추천도서 - <엇박자의 마디>
김송희(자유기고가) 사진 백종헌 2025-11-18

내털리 호지스 지음 송예슬 옮김 문학동네 펴냄

과거를 바꾸고 싶으면 과거에 일어난 일을 기록해보기만 하면 된다. 이 책의 첫 문장을 만나고는 바로 알았다. 이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다섯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운 호지스는 매일 5시간씩 악기를 연습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를 둔 덕분에 이 책의 머리글에는 그의 외조부모가 어떻게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고, 어떤 계기로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는지를 상세히 소개한다. 그는 음악이 꼼짝없이 자신을 한국인다움과 이어준다고 설명하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한다. 호지스와 형제들은 어머니의 바람에 의해 악기를 배웠는데, 금요일에 연주가 끝나면 온 가족이 ‘신라’라는 이름의 한국 식당에서 갈비와 물냉면을 먹곤 했다. 저자는 자신을 바이올린 솔리스트로는 실패했다고 여긴다. 평생 바이올린 연주에 매진했지만 그는 연주 여행을 다니는 바이올리니스트는 되지 못했다. 그의 글들은 사랑했지만 끝내 실패한 일에 대한 기록이다. 첫 문장에서 얘기했듯이 호지스는 끝없이 과거를 되감기하고 재생한다. 그토록 맹목적으로 퍼붓고 지겹게 매달렸던 음악에 대한 짝사랑을 저자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담백하게 서술한다. 살던 지역에서는 촉망받는 천재였지만, 뛰어난 청소년 연주자들이 모인 여름 캠프에서 그를 가르친 선생은 겨우 열일곱 소녀에게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실력이 나쁘진 않지만 연주자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니 지금부터라도 학교 공부에 집중하는 게 낫겠다”고. 너 정도의 실력으로는 작은 오케스트라 자리도 잡기 어려울 거라고. 특히 선생은 그에게 “샤콘은 연주하지 마. 너에게는 너무 어려운 곡이야”라고 선고를 내린다. 그러나 어른이 된 호지스는 샤콘을 다시 시도한다. 그것은 교사에게 인정받기 위함도 아니고, 기교를 뽐내 오디션에 통과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샤콘을 연주하는 시간 속에서 현들의 선명한 소리를 들으며 목과 어깨로 악기의 울림을 느끼는 일, 바이올린의 목소리를 들으며 음악의 아름다움을 만나는 것. 이 책과는 별로 상관없는 얘기지만 사실 취미로 바이올린을 배웠었다. 샤콘은커녕 스즈키 책도 마무리 못했지만 악기를 드는 순간만큼은 누구나 자기만의 장막을 연다. 현 위에 활을 댄 채 다가올 음들을 기다리는 장면을 읽으며 선율이 종이 위를 활보하는 것을 듣는다. 그토록 사랑했던 대상은 끝내 나를 봐주지 않았고, 우리는 언제나 배신당하거나 보답받지 못하는 애정을 무언가에 퍼붓는다. 그것은 절대 헛된 일이 아니다. 언제나 과거의 시간은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고 우리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 불운한 과오를 지워낼 것이다.

음악의 형식은 본질적으로 시간과 관련 있다. 그것은 시간에 형태를 부여하거나 적어도 해당 곡을 진행하는 속도와 방식을 지정한다. 어디서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돌아가지? 어느 순간이 팽창하고 어느 순간이 수축하지? 마찬가지로 기억은, 가장 보편적이되 지극히 개별적인 시간 구조로서, 한 인생의 시간 속 경험에 형식과 형태를 부여한다. 1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