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어 W. 아도르노 지음 홍승용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예술에 관해서는 이제 아무것도 자명하지 않다는 것이 자명해졌다”라는 첫 문장의 울림을 다시 만난다. 현대 미학 논의의 출발점. 1984년 아도르노 연구자 홍승용의 번역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처음 출간된 <미학 이론>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기존 번역을 수정하고, 초판에 누락되었던 ‘부록’과 ‘서론 초고’, ‘독일어판 편집자 후기’를 추가로 번역해 수록했다. <미학 이론>은 아도르노 사망 1년 후인 1970년 출간됐으며, 그의 미완성 원고와 편집 메모를 정리한 책이다. 아도르노는 1950년부터 1968년까지 미학 강의를 여러 차례 진행했다. 강의를 토대로 1961년부터는 <미학 이론>의 구술, 초고 작업을 시작했다. 편집자의 말에 따르면 아도르노는 지금의 형태로 이 책의 인쇄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목차의 제목들은 아도르노가 초고 페이지에 붙인 핵심어들을 참고해 편집자들이 붙인 것이다. 어쨌거나 글이 쓰인 시점으로부터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반백년. <미학 이론>의 사유는 그렇기 때문에 더 빛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데, 이 책이 시도하는 이데올로기적 분석은 당대와 이후의 예술작품에 고루 적용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분석이 부족한 것이야말로 그 시대의 철학자였기 때문에 생기는 본질적인 약점이다. 구체적인 작품의 언급은 연극, 소설, (고전)음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관련한 사유는 현대의 작품에까지 적용된다. 예를 들어 괴테와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를 언급하며 아도르노는 썼다. “부르주아 의식의 검열적인 두 가지 기본 입장, 즉 예술 작품이 변혁을 의도해서는 안된다는 생각과 예술 작품은 만인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의 공통점은 기존 상태를 옹호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세계와 예술 작품들의 평화로운 관계를 옹호하며, 후자는 예술 작품이 공인된 형태의 사회적 의식을 지향하도록 감시한다.” 또한 막연하게 논해지곤 하는 예술 작품의 ‘무목적성’에 대한 주장을 펼칠 때는 칸트와 베케트를 인용한다. 예술 작품들은 경험적 현실과 분리되어 있으며 생활에 유익한 의도를 따르지 않는다. 베케트의 연극들이 부조리한 까닭은 그것이 아무 의미도 지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의미에 대해 심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연극들은 의미의 역사를 전개한다. 밑줄을 그으며 한참 책을 읽다가 내가 이해하고 좋아하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지, 이해하는 기분은 들었지만 이해했다는 확신이 없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지 고민에 잠겼다. 다만 확실한 것은, 당분간 가까이 두고 거듭 읽어봐야겠다는 것이다. 문학과지성사 ‘우리 시대의 고전’ 두 번째 책이다.
키치는 카타르시스를 패러디한다. (중략) 미적 허구와 키치의 감정 쓰레기를 추상적으로 구분하는 일은 헛수고다. (중략) 통속적인 것 속에서는 억압된 요인이 억압의 흔적들을 지닌 채 다시 나타난다. 54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