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하나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적이 있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의 도시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고 먼 순례길. 유럽 전역에서 이어지는 여러 길 가운데 프랑스 남쪽 국경마을에서 출발해 피레네산맥을 넘어가는 길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길이는 장장 800km.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체로 한달은 훌쩍 넘겨야 순례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대성당에 닿는다. 친구와 나는 둘 다 영화판에서 촬영팀 일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서로의 일정을 맞춰보니 한달 남짓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조금은 모자란 일정이었다. ‘빨리빨리’가 온 사방에서 난무하는 한국에서의 황망한 삶을 잠깐 멈추고 영혼의 안식을 위해 떠나는 여행인데, 거기 가서도 서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자전거 여행이었다. 아무리 천천히 페달을 굴려도 걷는 것보다야 빠를 테니까. 지금도 딱히 부자는 아니지만, 10여년 전 여행할 당시 친구와 나는 영화판에서 번 돈으로 빠듯하게 객지 생활을 하는 가난한 처지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알베르게’라는 순례자를 위한 숙소가 마을마다 있어 저렴하게 잠자리와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무슨 유난인가 싶게 자전거에 캠핑 장비를 싣기로 했다. 숙식 비용을 조금 더 아낄 수 있다는 명분에서 시작했지만 온몸으로, 자족적으로 순례를 다녀오는 것은 무언가 조금 더 우쭐해지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으니까. 물론 무겁고 시간은 더 걸릴 테지만, 순례 여행이니 부러 불편함을 선택해도 지나친 일은 아닐 테지.
나는 오래도록 자전거 여행을 동경해왔다. 치명적으로 매혹적인 자전거 여행자를 몇번 보아서다. 이란의 지방도시에서 만났던 여행자 하나. 덩치가 아주 큰 백인 청년이 내가 머물던 숙소로 한국 브랜드의 자전거를 끌고 들어왔다. 사연을 물으니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2년을 일하고 이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집이 도대체 어디냐 물으니, 영국이랬다.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이란까지 오는 데 1년이 걸렸고, 앞으로 1년을 더 보내면 집에 도착할 거 같다고. 이보다 아름답고 긴 귀갓길이 있을 수 있을까. 다음은 시리아의 팔미라에서 만났던 어떤 커플. 사방이 황무지이자 허허벌판인 고대 유적지를 자전거 두대가 나란히 지나고 있었다. 눈 내리는 한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이 무슨 비현실적인 풍경인가 싶어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달려가 물으니, 스위스의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발해 예정 없이 여행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길이 나 있으니 계속 가보겠다고. 어디를 거쳐갈지도 모르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지만 남아공의 케이프타운까지 가보겠다고. 사방으로 국경이 막힌 한국에서 온 청년은 생각하기 힘든 방식의 여행이었다. 이 정도 여행을 함께하면 저 커플은 헤어지려야 헤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동안 부러워하기만 하던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드디어 나서게 되었다. 자전거 타기는 몸을 써서 정직하게 나아가는 순수한 즐거움이 있었고, 그저 걷는 것과 달리 도구를 사용하는 재미가 함께 있었다. 순례길 위의 자전거는 어쩐지 종교적 의식을 연상시켰다. 하루 종일 반복적으로 돌리는 페달은 천주교에서 묵주반지를 돌리는 것이나 티베트 불교의 수행 도구인 마니차를 돌리는 것과 닮았고, 튀르키예에서 흰 치마 옷을 입은 수행자가 뱅글뱅글 도는 세마 의식과도 같았다. 실제로 하루 종일 페달을 밟는 지난한 일은 나를 무아지경에 데려다놓았으니, 그 기분은 ‘접신의 환희’라 이름 붙일 만했다. 힘들긴 했어도 자전거 위에서 몸과 마음이 정화되었고, 온 감각은 세계를 맞이하기 위해 활짝 열렸다. 5월의 스페인은 오후 9시가 넘어서 해가 졌으니 6시에 주행을 끝내고 텐트를 설치하고 식사까지 마쳐도 남은 햇살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먼 산 너머로 꼴깍 넘어가는 해를 배경으로 좁다란 캠핑 의자에 앉아 마시던 싸구려 와인의 맛을 어찌 잊을 텐가.
한번은 어떤 고개를 넘을 때였다. 걷는 사람에게도 힘든 고갯길이겠지만 자전거를 탄 사람에게는 더없는 고행길이었다. 가파른 길이 아주 길었으니 자전거에서 내려 한참을 끌어야 했다. 기어이 고개 끝에 닿자 바람이 몰려와 더위에 지친 순례자를 안아주었다. 탁 트인 풍경은 덤이었고. 그리고 지척에 푸드 트럭 하나가 성업 중이었다. 몇 시간째 인가가 없는 고갯길이었으니 상점이 없는 것은 물론이었다. 아무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명당에 놓인 푸드 트럭. 가쁜 숨을 몰아쉬며 콜라 하나와 물 두병을 주문했다. 워낙 저예산 여행을 할 때라 조금은 걱정스레 얼마냐고 물었다. 서너배쯤 부풀린 가격을 부르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장소였으니. 하지만 회신은 그저 3유로였다. 세속의 상술이 침투하지 못하는 은혜로운 길. 푸드 트럭 주인은 순례자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경관은 내내 아름다웠고 사람들은 경건한 선의로 가득했다. 그러니 순례자들은 안정과 여유 속에서 무탈하게 여정을 마칠 수 있었다. 친구의 말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잘 지켜져 오래도록 남았으면 좋겠다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의 환희를 맛볼 수 있도록. 나도 간절히 바랐다. 이곳을 다녀간 모든 이들의 기도가 차곡차곡 쌓여 세상이 조금만 더 평화로워지기를.
오래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다녀온 친구는 나의 연인이었다. 동시에 아주 훌륭한 동료이자 후배이기도 했고. 그 좋은 곳을 함께 다녀왔으니 헤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우리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도 헤어져야만 했다. 서로의 앞날과 각자의 창작을 위해. 지금은 각자 새로운 연인을 만나고 있어 연락을 주고받기 조심스럽다. 순례길의 어느 고개 끝에 닿았을 때 불어온 바람처럼, 얼마 전 그녀가 촬영감독 데뷔작을 무탈하게 마쳤다는 소식이 풍문으로 전해졌다. 사랑의 시효는 다했을지라도 여전히 그녀를 존경하고 지지한다. 부디 앞날에 무운이 가득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