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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 바람을 보여다오, 침묵을 들려다오 - 현대 다큐멘터리가 풍경을 도입하는 방식의 진화

장병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래머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소녀가 배고픈 갈매기 떼에 생선을 던져주고 있다. 가오리의 움직임을 닮은 연의 그림자가 이끼로 덮인 바위 둔덕 위를 어른거린다. 죽마(竹馬)에 오른 소년이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놓인 붉은색 오두막 앞길을 뒤뚱거리며 이동한다. 샤론 록하트의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Windward, 2025)에 등장하는 기나긴 풍경숏들은 엄정한 일관성하에 연출된 타블로의 행렬을 보여준다. 캐나다 뉴펀들랜드 래브라도주 연안에 있는 포고섬의 지형과 그곳의 아이들을 모티프로 한 12개의 타블로로 구성된 이 영화는 문자 그대로 ‘바람의 형상화’를 위한 풍경다큐멘터리이다. 수분여에 달하는 롱테이크숏들은 모두 섬의 지질학적 특성을 초점으로 하여 먼 거리에서,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시간의 지속을 통해 탐구한다. 아이들이 발견하고, 성장한 장소들로부터 시작하여 섬의 다양한 공간을 이동하며 지리와 지질학에 대한 명상을 제공하는 이 영화는 시간성을 초월하여 장소의 의미와 맥락을 변형하고 시네마의 언어 관습을 통해 풍경의 함의를 조사하는 현대 다큐멘터리의 쟁점을 호기롭게 제시하고 있다.

샤론 록하트의 접근은 기록매체로 출발한 시네마가 풍경 경험과 맺어온 관계, 요컨대 지형에 내재하고 있는 정체성과 집단의 기억을 끌어내면서 장소, 위치, 인간 주체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성하는 매체로 진화해온 영화의 역사를 환기한다. 그녀의 초기작 <런치 브레이크>(Lunch Break, 2008)는 초기 영화의 원시성에서 아이디어를 취해 장소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표현하였다. 길고 완만한 트래킹숏으로 83분간 진행되는 이 영화는 해군 조선소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점심 식사와 휴식 시간을 수직의 복도를 따라 이동하면서 기록하였다. 여기서 록하트의 방법론은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Employees Leaving the Lumiere Factory, 1895)에서 뤼미에르가 했던 것과 유사한 것으로, 사전에 세워둔 계획에 따라 촬영하여 우연과 실재성을 가장(假裝)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사전에 촬영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고 있었고, 뤼미에르의 영화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으며, 그들 스스로 영화 역사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는 점심시간 동안 노동자들이 식사 외에도 독서, 수면, 대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본다. 환경이 그들의 삶과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끈기 있게 관찰하면서 록하트는 노동자들이 움직일 때마다 그들의 몸이 마모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한다.

장소와 사람들이 풍경과 교감하는 방식을 의제로 하여 장시간의 정적인 촬영을 통한 시청각적 주의 집중, 그리고 렌즈 앞에 나타나는 사람들에 대한 온전한 헌신이라는 샤론 록하트의 미학 경향은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에서 다시 한번 확인된다. 광활함과 자연의 힘에 대한 이 이야기에서 인간은 그들이 놓인 장소와 환경의 일부가 되어 완벽하게 짜인 액션을 연기한다. ‘바람’을 감각하는 시청각 경험은 신비롭다. 바람은 눈에 보이는 사물이 아니지만 카메라는 비(非)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는 권능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과 풍경의 상호작용과 유희, 움직임, 규모, 활동, 시간의 변화를 기록한다. 록하트는 시간의 지속과 풍경의 변화를 포착하며, 포고섬의 일상을 규정하는 바람과 함께 밀려오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하는 양상을 특유의 인내심을 가지고 묘사한다. 섬세하게 구성된 장소의 특질을 가시화하고 인상의 지속과 무드를 형성하는 고정 카메라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부터 전달되는 보이지 않는 힘, 즉 북쪽에서 줄기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일상과 분리될 수 없는 성분으로 육지에 도달하는 모습을 기록한다. 환경에 대한 유전적 조율, 그리고 그것을 읽고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은 록하트의 피사체들이 주변 환경과 긴밀하게 교류할 수 있도록 한다. 시야 안팎으로 움직이며 프레임을 가로지르는 아이들은 작지만 프레임 전체를 장악하며, 카메라를 위해 구성되고 연출된 장면 속에서 그들의 지형을 정복하고 영향을 미친다. 멀리 있는 사람들을 전경이 아닌 풍경의 일부로 보여준 전작 <황혼>(Eventide, 2022)에서 록하트는 환경과 그에 새로운 반응으로 이어진 인간을 촬영하였다. 그의 프레임 안에 놓인 인물들은 매우 작고 구체성이 사라진 모습으로 제시되지만, 도전적인 상황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것 같은 그들은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땅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기대하지 않았던 액션을 보여준다.

<언더그라운드>

그리하여 이 글의 초점은 다큐멘터리의 전통적 화두인 ‘가시성’이다. 무엇을 가시화할 수 있는가?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할 수 있는가? 들리지 않는 것을 청취할 수 있는가? 풍경 경험을 재구성하는 현대 다큐멘터리는 세계의 상태와 장소 감각, 그 안에 내재한 인간의 활동, 시간, 목소리를 위한 발화 공간을 제공하는데, 이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는 실험다큐멘터리 작가 오다 가오리다. 공간과의 상호작용에 대해 묵상하기 위해 장소의 의미 맥락을 변형하는 오다의 영화들은 지하공간, 집단기억, 그리고 영화의 자기 반영성(어둠과 빛, 그림자)에 대한 것이다. 오키나와 전투에 관한 기억이 새겨진 동굴을 실험적인 시청각 언어로 조형한 근작 <언더그라운드>(Undergroud, 2024)에서 오다는 전투 기간에 발생하였던 지비치리가마 집단 자살을 중심 모티프로 제시한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는 동굴에 관한 영화가 아니며, 집단기억과 잠재의식, 무형의 것을 만들어내는 누군가 또는 무언가의 기억에 대한 것이다. 오다는 여기서 일본에 산재한 여러 지하공간의 퇴적된 기억의 장소 경험을 통합한다. 대부분이 어둠 속에서 진행되는 <아라가네>(鉱, 2015)는 보스니아의 탄광 갱도를 강렬한 시청각 이미지의 집적으로 전환하여 몰입적이고 최면을 거는 듯한 화면효과를 유발한다. 오다의 필터는 장소의 구체성을 말소하고 두개의 분리된 작업장을 하나의 장소로 통합하고, 시간과 기억이라는 쟁점을 도입하며, 장소의 의미 맥락을 변형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초현실적인 사운드스케이프가 감싸는 68분 동안 귀를 얼얼하게 하는 기계소음에 휩싸이거나 이따금 침묵의 순간이 찾아온다. <아라가네>는 탄광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조건에 대한 기록이 아니며 풍경과 장소의 경험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에 관한 영화이다.

외계 공간과 추상적인 지형을 더듬고, 장소의 성질을 변형하는 오다의 관심사는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천연 우물을 촬영한 <세노테>(Cenote, 2019)를 이어 <언더그라운드>에서 장소에 내재한 기억과 시간의 통합으로 이어진다. 기억의 퇴적층을 더듬는 <언더그라운드>는 영화의 두 영역, 즉 뼈와 벽에 닿는 물질적인 측면, 그리고 그림자가 되고자 하는 행위로 구성된다. 각각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 또는 영화사의 진화 경로를 예시하면서, 영화 혹은 동굴의 은유를 수천년에 걸친 지질학적 과정에 의해 생성된 비인간적 존재와 인간의 활동과 역사가 남긴 존재의 흔적으로 전환한다. 지하 세계와 그 안에서 불러일으키는 과거는 오다가 걸어온 여정의 연장이기는 하나 전작들과 가장 큰 차이점은 안무가이자 무용가, 영화감독인 요시가이 나오를 ‘그림자’로 캐스팅한 것이다. 요시가이는 자유롭게 움직이며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을 연결하는 환영적인 캐릭터이지만 그 함의가 명쾌하진 않다. 동굴 벽을 더듬는 요시가이의 제스처는 하룬 파로키의 <전송>(Transmission, 2008)을 떠올리도록 한다. <전송>에서 파로키는 사람들이 기념관과 종교 유적지의 벽, 조각상, 암벽을 더듬는 의례적인 손동작을 몽타주로 기록하면서 덧없는 몸짓과 조각된 사물의 영원불멸성 사이의 시간적 거리를 병치한다. 한편으로, 배우와 연기라는 픽션 요소의 삽입은 오다의 다른 영화에서 거의 없는 연행의 특질을 부여하는 것 외에 장소의 성질을 새로운 방향으로 굴절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어둠과 빛, 그림자로 표현되는 동굴의 장소성은 시네마의 메커니즘과 본질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자기반영적 제스처이다. 명백하게 동굴은 영화의 메타포이다. 동굴은 사방이 어둠이지만 한점 또는 구멍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는 점에서 시네마의 장치 메커니즘을 본질적으로 구현한다. 셀룰로이드(<언더그라운드>는 16mm 필름으로 촬영되었다)는 그 자체로 지질학적 매체이며, 빛과 현상액의 상호작용을 통해 과거의 이미지를 보존하는 잔여물을 만들어낸다. 다수의 시퀀스에서 필름 영상은 동굴 벽에 투사되어 시네마의 물질적 과정을 강조한다. 빛이 조형한 이미지는 인간이 걸어온 길, 그들의 활동, 역사를 보여주며 오다는 이러한 유비를 동굴과 극장(영화)의 유사성이 암시되는 한신으로 표현하고 있다. 극장으로 추정되는 공간에서 커튼이 열리면서 스크린이 나타나고, 시장을 오가는 행인들의 모습을 찍은 장면이 영사되고, 필름을 이어붙이는 작업을 하는 숏에 이어 영사기사가 필름을 돌리면 극장 안이 푸르스름하게 변하면서 동굴 안에 들어온 느낌을 자아낸다. 어둠에 빛을 비추는 행위는 빛으로 공간을 조각하는 행위와 겹치며 빛과 어둠의 유희, 인공과 자연의 중첩(필름의 중첩으로 표현된다), 필름으로 촬영한 이미지의 물질성은 사운드와 웅장한 평행선을 이룬다.

오다 가오리의 스타일은 풍경 경험을 조직하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적 진화를 예증한다. 오다의 연작들은 다양한 시각적 층위를 축적하여 시간의 지표적 현실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다의적 시간성을 창조한다. 그의 접근은 미지의 정치사 영역을 파헤쳐 그 비밀을 밝히는 대신, 표면을 추적하는 잠재력을 가시화한다. 동굴 벽은 추측의 장소이자, 완전히 드러나거나 표현할 수 없는 과거를 가시화하는 평면이다. 오다의 지하 지향은 포착을 거부하는 공간을 촬영할 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형식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명확성을 폐기한다. 예를 들어보자. 동굴 가이드 미쓰오 마쓰나가는 1945년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한 후 오키나와 전투에서 동굴에 숨어 생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문처럼 읊는다. 요시가이는 미쓰오의 그림자 역할을 하며, 몸짓으로 오키나와의 숲, 해변, 그리고 동굴을 안내한다. 미쓰오가 암기된 공식적인 역사를 제시하는 반면, 요시가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의 에테르로 기능한다. 오다는 시청각 후렴구에서 요시가이의 손그림자를 촬영하였는데, 손은 지하 표면의 험준한 바위와 틈을 가로질러 바위 표면에 얹어져 수백만년에 걸쳐 지질학적 과정에 의해 형성된 장소에 인간의 야만성이 남긴 상흔을 더듬는다. 미쓰오의 증언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는 동굴의 유일한 광원인 횃불을 간헐적으로 꺼버리고 우리들을 어둠 속으로 몰아넣고 빈 화면에 잔상만을 남긴다. 이는 가시성이 곧 이해라는 생각에 의문을 던진다. 오다는 지하와 지상 세계를 병치하여 풍경을 통제의 장소로 만들기 위한 수직적 시각 감시 체제에 도전한다. 지하 세계는 풍경을 통제하는 기계화된 메커니즘의 손길이 닿지 않는 한계 공간이다. 문자 그대로의 ‘언더그라운드’는 감시와 강압적인 가시성 도구에 저항하면서 이미지에 대한 통제에 대한 대안을 찾는다. 내처 오다는 인간을 중심에 둔 시청각 체계는 빛과 시각을 특권적인 재현 방식으로 여기는 관념을 넘어서려 한다. 가시화하려는 의도에 저항하고, 대안적 가시성을 획득하는 것은 현대 다큐멘터리의 핵심 의제이다. 풍경의 제어될 수 없는 에너지, 고대와 현대의 삶의 흔적을 발굴하려는 고고학적 탐사는 지질학적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는 잠재력, 인간과 비인간의 긴장을 가시화하는 어휘들을 지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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